하회마을에서 쓰는 편지

대구에서밤길을돋아

하회마을로향하는

고속도로에서의

하현달

팔월스무날의달빛이

밝았습니다

달빛어린하회에당도하니

예약하고찾아든

감나무집에

늦은달빛이

봉창에어리었습니다

생각하면

참먼길을달려왔습니다

오르막길에서

다시내리막길에서

많은단상들이지나갔습니다

가뭇없이저윽히멀어지며

지나온한생애

생각사록

슬픔어린길에서

모든사방이

어둑한노정에서

홀로가느다란불빛에의지해가며

먹먹히달려온밤길

사람의길에서는

슬픔도괴로움도기쁨도

모두가슴깊이안아들여걸어가야한다는것을

이리도

늦은나이에야

비로소새삼스레깨닫게되었습니다

며칠여의추석밑

둠벙같이깊어지는우울한심사로

외론마음이어둔산을넘었습니다

여장을풀고

그윽한달빛아래

뜨락을이리저리거닐면서

추녀밑봉창아래섰습니다

어두운하회마을낙동강강뚝까지

뒷짐을지고걸었습니다

내천륜들이

시절운이다하여아득히멀어지는

귀밑머리반백이되어지는

이제쯤의

황혼에물든

서산마루에서서

어디로가야하느뇨

부귀영화를

한껏누리고살아간들

어디에뜻을세워나살아갈꺼나

목울대가먹먹해지는

홀로된心思

이모두

헛되고헛되도다!

낙동강변밤바람에

마음축축히젖어돌아와

이윽히

깊어지는

쉬잠을이루지못할것만같아

불을환히밝혀놓고

하염없는마음으로

앉았습니다

길이끝난곳에서

또다른길로연하여이어지는

우리네사람길

그길에의

부침

돌아다보면

달빛아래

고무신짝이끌며

밤이슬에댓님이축축하니젖어드는

멀고도먼밤길이었습니다

이부자리를깔아놓고도

옛시집한권을

다읽고도

방안을

몇바퀴돌아도보지만

가여운심사가그치질못합니다

안해없이

홀로떠나온여행지에서의

쓸쓸한마음으로

잠에쉬들지를못하고

이리저리생성되었다가소멸되어지는단상들로

깊은밤달아래

자정넘어삼경으로깊어갑니다

생각사록에

이모두가

헛되고헛되도다!

늦은잠자리로

아침아홉시에야눈이떠졌습니다

봉창을열고내다보니

앞산머리로아침안개가자욱하니

예스럽고아름다운하회마을이밝았습니다

토담아래로갈꽃

문창살에맑은아침

세안을마치고

엊저녁봉창아래에나앉아

오래도록앞산을무연히바라봅니다

마당에아침상을차려놨다는

주인장의부름에

퍼뜩,

정신을모읍니다

간소하니

소박한밥상을대하고앉으니

엊저녁무거웠던마음들이일거에걷히고

시원한북어국으로거뜬히맛나게

뚝딱,밥한공기의따순밥을

말끔히비웠습니다

하화마을의아침공기가

청랭하니맑아서

크게들숨날숨으로

가슴속폐부깊숙히까지훑어

긴여독을씻어줍니다

잊고지냈던제비가

하회마을에는지천으로날아다닙니다

강남같던제비가

고향을찾지못하고삼천리를방황타가

하회마을초가집추녀로찾아드는그제비된마음으로

오오래그리워하던고향에돌아왔습니다

아침하늘높이날아올랐다가

초가처마로날아드는제비들의지저귐을

이얼마만에들어보는지모릅니다

내고향에돌아왔습니다

먼타관에서그토록그리워하던

내옛고향유년의뜨락에앉아서이러저러

마음이

안온해집니다

할아부지

할무니

아부지

어무니

저돌아왔어유!

흑,

3:05너와나의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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