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프레, 빛 바랜 옛편지

누이야,

막내병기야,

오랫만에적토마라이름지은바이크를내다가

방죽둑할아부지와아부지산소를찾아가는길이여

그래누이가씨애틀에다큰저택을구입했다니참기쁘네

그것도막내와일,이층으로산다니

먼타국에서피붙이남매만한게없을터

인터넷이좋긴좋은가벼

미국에서도이글을읽는다니참좋은세상은세상인데

이리얼굴을못보고지낸세월이몇몇해인지모르겠구먼

엄니께서가끔씩막내를생각하시는눈치여

왜늦둥이에대한애착이그리깊으신지모르것어

내후년쯤에초대를한다구는허지만서두그땐엄니께서

그먼장도의길에함께나서주실지는모르것어

시방의엄니상태를지켜보메힘들지싶어

매일일어나면엄니방을살며시열어보곤하는데

매일같이가슴이서늘해야

이냥반이밤새안녕하신겐지

어디가갑자기편찮치는않으신겐지

옆에서모시는자식마음

알란가몰것어

저위사진속의산모롱이를돌아나가는길보이쟈?

그풍경속외길이시방내마음같어

산다는것이저물래방아같은겨

돌고돌아가는인생선

흘러간물로는물래방아를돌릴수도없는것

흘러간세월이안타까워도이미흘러간거란말이여

누이나막내나

흘러간지난세월에참으로회한이많을겨

이젠죄지나간과거사가되어버렸지만서도

잊으면않되지싶어

그곳미국생활이아무리바쁘게돌아간다손치더래두

가끔씩고국에계신엄니생각은하고살아야안되것어?

하다못해한달에한차례는엄니께목소리라도들려줬으면좋것어

어느땐내가야속한생각도들곤혀

안해와작은수령의느티나무그늘저평상에서

한식경은앉아산바람에시원히산림욕도하다가

또나는옆에서안해무릎을끌어다베고는

달콤한오수에빠져들기도했어

잠시잠깐의낮잠이지만서도

그꿈속에서보고싶고그리운사람들을만난다는것은

반갑고,서럽고,애끈하곤혀

살면서보고자픈사람들을못만나고살아간다는것은

참애슬픈일이아닐수가없는일이여

꿈에서깨어나면

손아귀를빠져나가듯멀어지는얼굴들

내마음알것제?

할아부지산소에저토록이쁘게도풀꽃들이만개허네?

봉분위에올라쑥부쟁이를뽑고

망초대궁도뽑다보니

더위에옷이훔뻑젖더만

그래도조상님산소를찾아가끔씩손으로어루만져드리는마음이

나는참좋아서생각나면퇴근길이라도훌쩍선영을댕겨오곤혀

아부지산소에는왠노무산딸기같은것이퍼져서

농약상에서약을사다가쳐도안되고

곡괭이를가져다가뿌리밑둥까지캐그끝에다농약을바르곤허는데도

끈질기게도죽질않으니속상혀

어버이날카네이션과엊그제가져다놓은담배갑을

까치란놈이물어다가봉분아래향나무밑으로가져다놨길레

다시가져다놨어

방죽거리호식이형네슈퍼에서소주를받아다가

할아부지산소와아부지산소위에부어드리고앉았자니

어허,목마르던참에참시원케마셨구나..하시는할아부지소리가들리지않것어?

내맘이다시원트만

그곳씨애틀의절기는어디쯤가는겨

이곳은벌써나마리가날아댕기네?

가을잠자리가벌써날아댕기니세월이참빠르게도가는것이느껴져

우주생성과소멸속에

지극히작은미물같은우리네生

이렇게살아가는것이어찌보면참허무한일이여

얼마나오래살고잘먹고산다고이러고살아야하는지원

선산옆쌍봉국민핵교여

아무도없는운동장에서이승복어린이옆에나란히서서

지난국민핵교적추억의짧은단상에들어봤어

그시절의윤택했던가정사와

할아부지와할무니의극진한손주사랑을받으며

공부와마라톤으로저운동장을누볐던

그아름다운시절을생각했어

저시절3년과

내전체인생에서30년과맞바꾸자면

망설임하나없이그리하것어

운동장에서제일우리가슴에남아있던

저능수버들

우리어린가슴에넓게자리잡았던나무였쟈

교실에앉아공부를하다가잠시눈길을주면

저나무위로뭉게구름이피어나고

비행기가지나가고

황새가날아넘고

동요를부르는음악시간이면

저풍경속에스르륵..잠이오곤했쟈

플라다나스나무가뺑둘러치던운동장에서

가을운동회는또얼마나우리를흥분케했어?

나무마다에만국기줄을

교장실위에스피커에서부터길게부채살같이늘여뜨리면

하늘로반짝이던우리들의가슴

그기분이지금도느껴져서마구가슴이설레곤혀

만국기아래에서서바라보던높디높은가을하늘

기억나?

고얀히쓸쓸한마음이되어

빈그네가보이는풍경속벤치에앉아

희미한유년속의운동장을내려다보는데

뜬금없이눈앞이희뿌여지네?

참아름다운시절이었어

정녕코저시절이다시는돌아올수없는겨?

저눈물없던시절

아름다운시절

후문으로가꿔놓은조경이포근허구먼

벤취가놓여있고

적당히그늘이있는풍경

까마득한후배님들이가꿔놓은풍경에

잠시앉아보는행복된마음

위안이되는구먼

2부제수업이실시되던

쌍봉국민핵교의최전성기의그때를기억해?

점심시간이면집으로뛰어와점심말아먹고후딱뛰어가면

5교시핵교종이치곤했쟈

저사진속을자세히들여다봐

방죽둑이보이고더멀리로마르택이가보이지?

시방미국땅시애틀에앉아이풍경을바라보는감회가새로울겨

저기가어디여

우리집터가아닌가베

저집은재열네집이여

아직안헐리고남아서우리형제들의생가터를가늠케허는구먼

전봇대오른편이순일네집이구

높다란애송낭구에그네를매고놀았던앞동산에는

나무는베어져없어지고

초가마을은현대식집들로썰렁허다못해생뚱맞구

지나가는꼬맹이들은나를타관사람대하듯

낯선사람취급을하는구먼

고향에찾아와도그리던고향은아니러뇨..라는옛노래가무색하구먼

저오동산을아침마다일어나마루에앉아바라봤쟈?

참그리운풍경이여

국수에다고추장을풀어먹어야직성이풀리던그때

할아부지불호령에저녁마다마루에나앉아

매운고추장국물에뜨거운국수를건져먹던생각

엄니가밭에서돌아오지않은초저녁

꼬로록소리가나는배를어루만지면서

마루끝에앉으면

하나,둘오동산위로뜨던초저녁별

마루기둥스피커에서어린이연속극을듣던생각이나?

시방두그어린이연속극노래가사가또렷하게기억나

외로히피어난꽃노란꽃하나

보고싶은우리엄마노란꽃하나

엄마,엄마멀리떠나외쳐부르면

메아리만들려온다노란꽃하나

연속극내용까지야기억이나진않지만서도

눈물도찔끔흘려가면서

어린가슴을손으로부여안고귀를기울이면

건너다보이던저오동산이있는풍경

우리집생가터여

옥수수대궁만키를재려하는구먼

우리형제들의탯줄을묻어놓은고향집언저리

여기가사랑방쯤이었고

여기가부엌이고안방이고윗방이었고

여기쯤이대문이고

여기담장쯤에는화단이참풍성했쟈

아부지가가꾸시고우리가풀을뽑곤했던꽃밭화단

이쯤의한여름이면마당에멍석을깔고아침밥을

그화단가미류나무그늘에서먹곤했쟈

할무니께서고시레를외치시며마당에밥알갱이를뿌리면

우리집닭들보다먼저옆집주열네닭들이달려오곤했지

허면나는그놈들을쫒아내고우리닭들이먹게끔

멍석가에벗어놓은검정고무신을냅다던지곤했쟈

그화단이여기쯤이었을테고

할아부지곰방대를헛간볏짚을뽑아다가

검은담배찐을청소해드리면흐믓하니나를바라보시며

웃으시던인자하신표정

누이에겐호랑이같은할아부지로기억에남을테지만

남아선호사상이깊으셨던할아부지께서는

우리손자들과공부시키는것부터차별을많이하셨지

누이는아직도할아부지한테서운혀?

무기장태성경핵교라도잠시댕기던것또한

그래두할아부지덕이아닌가베

이젠그만집으로넘어가여쓰것어

날씨가오도방정을떠네

비가오려고꾸므레하다간

여우가시집가듯맑은햇살아래빗방울이후두둑거리고

여여엄니계신집으로넘어가야쓰것어

헬멧쓴귓속에꽂아둔MP3음악속으로

우리즐겨부르던옛노래가유장토록길게길게흐르고있구먼

그음악속옛노래에는

찔레꽃이피고

황포돛대가흘러가고

아부지의쓸쓸한인생선이흐르고

외나무다리를건너가다가

엄니의한많은여자의일생이가고

남몰래서러운세월이가고있구먼?

저길이쌍봉핵교에서본대리로가는길이여

눈부시도록희뽀얀흙길이었쟈

시방은아스팔트가깔렸지만서도

국민핵교적에는신발을벗고가도자갈한톨안밟히던길이였잖어

구비구비얼마나아름다운길이었어

저길을걸어가면서풀냄새피어나는잔디에누워..라는동요를부르곤했쟈

세월이가노라면저렇듯

흙길도변해

사람도변해

얼굴도변해

인심도변해

시절도변해

사랑도변해

인정도변해

심성도변해

산천도변해

강산도변해

하지만누이야,

막내병기야,

세상이아무리변해도우리남매형제애는변치말자꾸나

먼이국땅

두남매지간만은

생활이어쩌드라두피붙이우애만큼은

단단히붙들고살아줘

이세상천지간에남매만한것이또어디있것어?

그려

가끔가다가엄니께전화나넣어줘

자..짧은편지속에고향마을이보이고

우리자란국민핵교운동장도보였쟈?

이만편지줄일께

모쪼록낯선땅에서몸건강히잘들지내길바래

다음에또편지할것이여

고얀히콧마루가시큰해야

그런내마음을아래저사진속에담아동봉혀

이만안녕.

엄니,

저세상에서잘기시는겨유

우째돌아가시구선에이불초자식을잊으셨나

여태소식한자없어유?

부디그세상에서는치매가없으시길

아주간절하게바라것시유

엄니,

보고싶네?

흑,

2:28따오기–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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