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이 있던 자리
깊어가는가을밤

풍금소리가아련히먼저편에서들려오는데

아..그때가언제였더라?

그래맞어

국민핵교5학년2반교실에서였어

연꽂이많이피던동네연방죽에사는*정이라는

서울서전학온계집아이가있었어

맨날뜨개질로뜬분홍쉐타를입고댕겼는데

그모습이어찌나숙성해보였는지

마치작은누이또래같았어

길다랗게양갈래로땋아내린머리에

새초롬히눈을내리깔고는

서울깍쟁이표정이었어

명색이반장인데내말은전혀듣지를않고

부반장인단짝*순이랑맨날팔짱을끼고댕기면서

무소불위가깝게교실을휘젓고다녔지뭐여

한날은책걸상모두뒤쪽으로밀쳐놓고

하교청소를하는데

청소는안하고풍금만켜는두아이에게뭐라고하니

덩치큰*정이짝꿍*순이가나를뒤로떠다박질러설라므네

내가매칼없이마루바닥으로넘어졌지뭐야

내가에이씨!~하며

*순이를째려보면서화를삭히는데

글쎄*순이랑나란히허리춤에양손을얹고

나를상대하여눈을흘키는것이아니것어?

청소를안하고가을볕따사롭게들어오는교실한켠에서

풍금뚜껑을열고둘이가을밤이란노래를부르면서

나란히앉았기에

가라고치질말고어여청소마치고

낭중에풍금을켜라는내말에그만화를발칵,내면서

*순이가나를마루바닥으로밀쳐쓰러뜨렸는데

짝꿍인*정이도한편이돼서

나를곱게눈을흘켜가면서

넘어진나를바라보며

우뚝서있는데

그아이들뒷편교실창문으로가을볕이

역광으로어찌나따사롭고아름답던지

청소하는먼지가희뽀얗게

아른거리면서

마치꿈결같이어른어른

몽환적분위기를자아내는것이었어

뒤로손을짚고철퍼덕앉아

그만일어날생각조차

나질않는거야

서울아이라서

얼굴도하얗고

손가락도길쭘하니하얗고

역광에비친그애모습도하얗고

……

그만모든사위가정지된듯했어

그러더니만다시풍금뚜껑을열고

가을밤이란노래2절을마져부르는게야

가을밤외로운밤

벌레우는밤

초가집뒷산길

어두워질때

엄마품이그리워

눈물나오면

처마끝에나와앉아

별만헵니다

어라?그런데희정이가그만

풍금옆에쪼그리고앉아

손바닥으로얼굴을가리고선에

어깨를들썩이며흐느껴우는것이아니것어?

나는저으기당황스러워어찌할바를모르고

그만머쓱해져서담임선상님께

청소검사를맡으러

교무실쪽골마루를향해

까치발을하고걸어가는데

다시풍금소리가아련히들려오는데

가던발걸음을멈추고선에

긴골마루끝을바라보고섯는데

괜히코구녕이맹맹해지는것이아니것어?

며칠후

첫눈발이희끗희끗날리던어느초겨울

3교시가막끝나면서쉬는시간에

담임께서*정이를교단으로

불러내더니만

작별인사를

우리들에게하라고시키셨어

그날도

그풍금이있던자리

그옆댕이서손바닥으로얼굴을가리듯

며칠전청소시간과똑같은동작을하면서

바부팅이마냥인사도못하는것이아니것어

외할머니집에잠시내려와

핵교를댕겼는데

다시엄마를따라서울로전학간다고했어

뭔소리인지모르지만서도

엄마하구아부지가이혼을했대나뭐래나

그래서외갓집으로전학을왔었데

그아이가인사를하고

빨간가방을메고

철랑거리는긴쌍갈래머리

뒷모습을보이며

교실문을

드륵륵,열고나가고난후

담임선상님지시로

왕겨난로에왕겨를더붓고

막돌아서는데

창밖으로

희끗희끗흩날리던눈발이

점차굵은눈발로변해쏟아지기시작했어

지금사생각하니

예쁘장하니그리운옛친구가아니것어?

하마그아이도

이맘때쯤이면내기억저편에앉아서

손주재롱에입이함지박같이벙글어지면서

전학가던날희끗희끗쏟아지던첫눈발같이

희끗희끗귀밑머리하얗게변해가면서

귀여운손주의

할머니가돼있것쟈?

아,

해맑갛게

그리워지는

유년의

초겨울어느날에

서울로전학을갔던

그아이도

혹시

풍금이있던그자리를기억이나할까?

풍금이있던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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