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의 생애 (5) : 꽃길

생애

첫사랑

이렇게가을이깊어

창가로햇볕바르게한가하니

좋은날

창가양지쪽에앉아

따순차한잔을마시는데

속눈썹으로오색무지개가떠오르면서

첫사랑이새록새록떠온다

오늘따라호젓한길을

멀리까지걸어서나아가고만싶다

참해맑간냇물에투영되어지는

한그루단풍나무와같이

속이훤히보이고

해살거리던

水色

첫사랑이었다

영국속담에첫사랑의이름자와자기이름자는

무덤까지가지고간다고했다

일제시대에지어졌던

허름하기까지했던신촌역에서

문산행기차를타고그니와데이트를떠나던날

안개가어찌나많이꼈던지

눈앞으로날파리가

날아다니는듯한

안개입자

그때그니는나를똑바로바라보지도못하고

만나면이내고개를숙이곤했다

예매좌석이서로떨어져멀찌기앉게됐다

차창가에기대어안개입자들을세다가

그니를건너다보면

마주치던눈빛

그니는부끄러움과어색함으로놀라

얼른시선을거두곤했다

그리곤지금은없어진

작은간이역에내려

무조건걸었다

그니는말이없고

망초대궁양켠으로빼곡히피어

나는손으로흝어가며뒤쳐져따라오던

그니를가끔씩기다려주었다

첫사랑의가슴에

울렁거리는매스꺼움을동반한허기

학이날아다니는다리께에서

그니와나란히앉았다

다가오지않고멀찌기앉아

학이날아가는하늘을손으로이마를짚어

시선을멀리더멀리에두었다

정훈희의노래를우리는좋아했다

흥얼리는내노래소리는그니에게닿지를못하고

산아래과수원집에서담장을고치는지

망치소리가꿈결인듯들려오다가

정작그옆을지나자

꽃길이라는노랫소리가가느다랗게

라디오소리를타고들려왔다멀어졌다했다

바람이내쪽으로불어오면

그니의인삼내음과함께달착지근풍겨오던꽃길

그니를만나고부터

나는

괴테의첫사랑

프로스트의첫사랑

그한줄한줄을손으로꾹꾹짚어가며읽었다

책과함께날이새고

책으로날이저물던그첫사랑의설레임으로

마구마구아름답던시절

우리는무엇을이야기해도

무슨노래를불러도

더깊은철부지개똥철학한줄에도

서로가딱맞아떨어지는

그칼칼한편린들을

함께공유했다

참으로스스로가신기했다

같은방향을같이서바라보고

같은생각으로깊어지는그앙징맞도록

자그마한우리의세상

그세상에서

생애처음맞이하는첫사랑

예뻤다

그니가예쁘니

세상이온통예뻤다

철뚝길넘어빨간집

나중에저런집을짓고함께살자던그니는

피천득의수필의아사꼬같이

맺어지지못하고

어느가을날

내게서멀어져서아주먼다른길

단풍나무숲속길의갈림길을따라가버렸다

나는그니와헤어지면서

한용운님의[님의침묵]을써서마지막편지를그니에게부쳤다

님은갔습니다

아아사랑하는나의님은갔습니다

푸른산빛을깨치고단풍나무숲을향하여난

적은길을걸어서차마떨치고갔습니다

황금의꽃같이굳고빛나던옛맹서는

차디찬티끌이되어서한숨의미풍에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첫키스의추억은

나의운명의지침을돌려놓고뒷걸음쳐서사라졌습니다

나는향기로운님의말소리에귀먹고

꽃다운님의얼굴에눈멀었습니다

사랑도사람의일이라만날때에미리

떠날것을염려하고경계하지아니한것은아니지만

이별은뜻밖의일이되고놀란가슴은새로운슬픔에터집니다

그러나이별을쓸데없는눈물의원천을만들고마는것은

스스로사랑을깨치는것인줄아는까닭에

걷잡을수없는슬픔의힘을옮겨서

새희망의정수박이에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만날때에떠날것을염려하는것과같이

떠날때에다시만날것을믿습니다

아아님은갔지마는

나는님을보내지아니하였습니다

제곡조를못이기는사랑의노래는

님의침묵을휩싸고돕니다


새파랗게

젊은시절의

생애

첫사랑

창가양지쪽에앉아

따순차한잔을마시는데

속눈썹으로오색무지개가떠오르면서

첫사랑이새록새록떠온다

왔다가갈길을

왜왔느냐고

울며불며걷던

그길에

꽃길

뜸부기날아오르고

강변으로포플라나뭇잎이

햇살에반짝거리던

작은교회당이

보이던

그곳

이렇게늙어가는데

어디서늙어가느뇨?

넌지금어디에있니?

오늘따라호젓한길을

멀리까지걸어서나아가고만싶다

  • 2:39정훈희-꽃길1977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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