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의 생애 (9) : 한계령

그해

초겨울

혼자만이

절기를쫓아가지못하는

안타까운심사로홀여행을떠났다

산구비를돌아넘는내내

[한계령]이라는노래를듣고또들었다

첩첩산중어둔길을구비구비돌아

정상쯤의산마루에차를세웠다

서산을넘는

황혼에더욱붉은빛을띤산은

발아래로산그늘을남겨놓고사위어가고
이내어둠이산을에워싸면서

골짜기아래쪽에서

휘몰아쳐올라오는서늘한골바람을맞으며

망연히팔짱을끼고서있었다


멀리산아래

불빛들을따라내려가니

東海市

거기서더이정표를따라서

묵호로들었다

묵호항으로들어가다

오징어건조대가달빛에희끄므레보이는

막다른골목길에섰다

어디로갈것인고

여기서더나아갈길은이렇게끝이났는데

나이제어디로갈것인고

희미한불빛아래

[민박]이라는글씨가써있는

옹색한구멍가게로들어가니꾸벅이며졸다가일어난

불편해뵈는노인장께서어둔한말투로떠듬거리며

묵었다가라며앞장서서열어준방에는

온기라곤하나없는썸썽함만냉냉하고

겁없이털어넣은독한술기운에온방이빙빙돌았다

추운골목길을

아무리헤메어도

변변한식당조차눈에띄지않고

독한술에부대끼는빈속을

노인장이끓여다주는라면으로추스리고누웠다


온방을헤매면서

괴롭디괴로운배앓이를하면서

시계를들여다보니자정을막넘어서고있었다

시계를의심하면서

다시금들여다봐도

아침은멀리있고

불을들였는지방바닥은쩔쩔끓는데


내가슴은점점서늘하여져

베갯머리로차가운눈발이흩날리고있었다

아스라이닭우는소리와

목이타는심한갈증에깨어일어나

해돋이를보러나갔다

새벽달빛아래

그물에걸려넘어지고

오징어건조대에부딪고비틀거리며

백사장으로나가

다리사이에머리를묻고쓰린속을달래며앉았으려니

아침바다갈매기들이백사장가득내려앉아있었다

어부들이피우는모닥불이

물빛으로흔들리고

거뭇한재티는하늘로올라

하늬바람을타고바다로바다로날아멀어지고

괭이갈매기한마리머리위에서아침바다를비상하고있었다

하품을하면서이쪽을바라보는

어선통제소의젊은순경만이

낯선이방인을

바라볼뿐


빨간색으로단장한등대불만이살아

방파제끝에서명멸하고

잠시후

멀리바다쪽에서뗏마선한척이

삐닥하게기우뚱하니들어와닻을내렸다

유자망을풀어헤치며

보란듯이포구사람들을부르는행복한귀항

포구를돌아

다시바다로떠나가는배

밀려왔다부서지는

파도의물보라

바닷물속을자맥질하는

물새들의유영

이한가한어촌의풍경을물끄러미바라보다가

인적없는아침바다를걸었다

그리고는

낙산사로가는해안도로를따라가다

보리수마을이라는곳에서차를멈추고들어간

남애초등학교

파도소리가들리는운동장에는

자전거를타는마을아이두엇과

뒤를졸졸따르는강아지와

발끝으로조개부스러기

그리고는
바다가보이는교실

책상은네개

창쪽으로나란히놓여겨울햇살을

쬐고있는화분몇

빈교실에는

벽시계의초침소리만울려퍼지고

가만히귀기울이면파도소리가들려오는
바다가보이는교실

교화(校花):해당화

푸른들흰모래톱에파도소리
벗삼아삶을누리며정열을
불태우는너의모습에서우리는
착실한배움의길을찾겠다


교목(校木):사철나무

아침해가뜬다.동해의
은물결에변함없는푸르른
자태네모습비추려오늘도
내일도영원히푸르러라

-남애초등학교-

신발장옆으로나란히놓인

치약과칫솔여덟개

뽀얀먼지가

얇게덮힌풍금

오리고접고

놀다가놓고간색종이

하얀바둑알검정바둑알로

하나둘셋넷

고사리손을꼽고있는

2학년교실에는

나른한초겨울햇살

유리창깨진금을따라붙인

색종이꽃무늬를타고내려오고있었다

파도소리에

고개를들어보면

어린소나무사이

하얀포말로부서지던

바다

가만히

눈을감으면
풍금소리아련히
바다가보이던교실

북북서로바닷가해안선을따라가다가

38선이라는경계표석을지나서

이름없는포구에들었다

아침바다에

뗏마선들이한가로이떠있고

방풍림둔덕위로갈대와대숲으로
늦가을햇살에흔들리고있었다

작은포구가너무도쓸쓸하여

거기서다시해안도로를따라

낙산사로올라갔다

낙엽이흩날리는도량

낙산사동종과7층석탑아래를돌아
대웅전뜨락에섰다

처마끝의풍경소리
암키와와흙을다져쌓은옛스런담장

고요한뒤란에서의높푸른하늘


사진찍는俗人들을

물끄러미내려다보고서있는

젊은女보살의해맑간눈길

단아한미간에서

부처님의미소가어리는데

無二堂툇마루에목탁

객승이머무르다간요사체에는

완자무늬문창살이방바닥에어리고

섬돌위에먼지쌓인흰고무신한켤레

절뒤를돌아

솔밭으로난오솔길을걸어내려갔다

성황당돌무더기아래

거북등같이갈라진노송을올려다보다가그만

컥,하고목울대가답답해지면서

예까지쫒아온

이노무묵직한서러움하나

흐려오는시야에

세월의무게를견디지못하고부러진

노송의한가쟁이

내가슴에서부러지는

마른등걸삭정이끝

한가쟁이

저산은내게

잊으라잊으라하고

설악동으로넘어와

해장국으로쓰린속을달랬다

창문으로다가오던

설악이

왈칵,눈앞으로

달겨들었다

꾸역꾸역밥술을떠넘기는데

어쩌자고자꾸한숨은넘어오는지

쓰디쓴커피를억지로넘겨봐도

왁,왁,소리를질러봐도
그저무심한

설악능선

돌아오는노상에서
지독하게막히는찻길

허기에지쳐
길가양천막집에들어수제비를말았다

가슴과

목울대를짓누르는

끝끝내쫒아오는서러움하나


창밖으론어둠이깔리고

점점서늘해지는가슴

그해

초겨울

혼자만이

절기를쫓아가지못하는

안타까운심사로

도저히

감당할수없는서러움하나안고서

홀여행을떠났다가

산구비구비를돌아넘는내내

헛한가슴을다독여

쓸어주던따스한

노래하나

한계령

저산은내게

잊으라잊으라하고

4:19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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