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의 생애 (15) : 뗏목아리랑
일전에

단촐한송년회자리에서

그만술들이대취하여새벽3시를넘기며

아버님시절에끝나버린젓가락장단으로소리높여

옛노래를부르고또부르는곤드레만드레

아주흡족토록흥겨운자리

비록술이취하여

상다리를두드리기시작한누군가를따라

밥사발도두드리고국그릇도두드리고찌개그릇냄비도두드리고

현대와옛날을넘나드는노래들로

혀가엉켜드는폭탄주를마시고또마셔도

취기가오르기는커녕점차흥에겨움으로인하여

정신은말짱해져만갔다

물론노래반주가없는

여럿의어울림노래판이었지만

문득유년의어느날이떠올라아버지의젓가락장단이

노래소리에섞여환청으로들려왔다

고추와

담배주산지로유명한내고향에서는

일년내내땀흘려고생한보람을

담배를바치고그돈을읍내농협에서찾아

광목보자기에두툼한돈다발들을빙둘러전대로만들어서

허리에꼭동여매둘러차고잠시순대국안주에막걸리한잔씩

호기롭게걸치시고비척비척게스츰레마을로

돌아오시는아버지들이계셨는데

동네친구들아부지는죄돌아오시는데

유독아부지만돌아오지않으셨다

사랑방에서할아버지헛기침소리높아지시고

할무니는안방문풍지윗쪽앏은틈새로바깥마당만내다보시고

엄니는괜히부엌만들락날락안절부절이셨다

다른아부지들은읍내에서한잔씩걸치시고

마을로집으로들어오셨는데

아부지는친구몇양반과그만

동네가빤히건너다보이는주막거리에들어설라므네

거기서들어오시질않으셨다

엄니는나를불러방죽거리주막집으로가서

아부지를어여모셔오라는엄명을

가기싫어하는내게내리셨다

주막집가까운신작로미루나무뒤에숨어

아부지가이제나저제나소피보러나오시길기다렸다

하지만몇시간을기다려도아부지는나오지않으시고

견디다못해집으로들어가면엄니의불호령이

혹독한역정으로떨어졌다

다시주막거리로나가아부지노랫소리높은

방문을빼꼼히열고방안쪽이담배연기로자욱해

잘보이지않는방안에는

공단치마에입술을발갛게바른

기생들이까르르웃곤하는그속에아부지가

젓가락장단으로소리높여노래를부르시는데

목에핏대가굵게서고놋그릇밥사발을

젓가락으로두드리고계셨다

아..부..지!

기생의눈짓으로나를늦게보신아부지는

내게눈을부라리시며친구분들과의흥겨운술판이

나때문에깨질세라어여집으로가라고

턱으로눈짓으로하셨다

그때아부지가기생들과목청껏소리높여부르시던

흘러간옛노래들의애상

이제내가아부지나이가되었다

유일하게무반주로부르는

몇곡안되는가운데

노래뗏목아리랑

이노래를부르면고얀히아부지가생각나면서

아부지의한많고고단했던

막걸리한사발의

아부지에한생애가다가와앉는다

강물따라흘러버린꿈같은내청춘
사랑타령눈물타령모두가허사로다
젊음도가고꿈도가고꿈마져다털렸네
남은건저강물에서성이는달뿐일세

흘러가는강물속에옛꿈이남았는지
임자손에끼워주던은가락지생각나네
한때는이내몸도귀하신몸이였지
황혼에물든얼굴술사발로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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