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김삿갓 북한 방랑기

수업은뒷전이고
4교시가막끝나면서
점심시간종소리가나는동시에
우리악동들은냅다집으로뜀박질을해야했다
교실뒤솔밭으로들어가철조망을
용감히넘어서면방죽뚝신작로가
눈부시게하얗다
집까지단숨에뛰어와
샘가에서두레박을올려
차가운물에머리부터담그면가랑이사이
마당으로장닭과암탉들이한가롭게모이를쪼다가
샘가로모여들었다
머리를대야에서확,들어올리면
닭들이놀래서마당가화단으로숨어들었다
그때면어김없이마루기둥에매달린
스피커에서흘러나오던노래
아무도없는집안한낮의고요한정적을깨고
김삿갓북한방랑기가흘러나왔다
이상하게도이노래만흘러나오면
맥이탁,풀려서마루에걸터앉거나
벌렁누워서눈을감았다
어느땐깜빡잠이들기도하는데
맞바로일어나부엌으로가
솥단지를열면
구수하니진동하던밥물냄새
부엌천장높이에매달아놓은
건진보리밥을한움큼손아귀에쥐어내려서
입안가득오물거리며찬장에서겅거니를꺼내고
텃밭에서상추도뜯어다가샘물에씻어
마루에늘어놓고보리된장종재기와
고추장을가져다놓고
보리밥사기그릇에써있는[福]자를
눈으로읽어가며상추쌈에된장을얹어
어걱,어걱입으로밀어넣을라치면
김삿갓북한방랑기가끝나면서
노래가또한번희뽀얀마당으로
낮게퍼져나아갔다
보리밥을밀어넣다가
괜히또가슴이벌름거리면서슬퍼졌다
꺽,꺽,목이맥히고
사발그릇하나가득샘물을벌컥벌컥마시면
노래는종반부가다끝나기도전에
뜻,뜨읏,뜨으으~~하는
시보가나오면서
멀리읍내에서
정오싸이렌이아득히들려왔다
그때들려오던
김삿갓북한방랑기시그널음악과
걸쭉한성우의목소리
세상모든사람들이
선하고아름다웠던그시절이
엄청그리워지면서
고얀히코끝이시큰해진다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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