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誌에 게재된 어느 의사의 글

제목:의사들은왜죽음을쉽게맞이할까
-나는암이고맙다BY홍헌표기자-

오늘아침페이스북에서대학선배의글이떴다.어느카페에포스팅된‘의사들은왜죽음을쉽게맞이할까’란제목의글이었다.미국시사주간지타임9월에실린미국의사의칼럼을번역한것이다.

글을읽는동안어쩌면내생각을이렇게똑부러지고확신에찬어조로쓸수있을까,생각했다.그가의사였기에더욱더공감이컸다.나는의사가아니라서공적인글이나강의에서이같은주장을쉽게펴기어려울지도모른다.수많은의사를인터뷰한기자들의글을데스킹하면서답답한때가한두번이아니었다.업무로접하는의사들,우리기자들이의학기사를쓰기위해도움을받는의사들은모두전문가다.자기전공분야에선국내최고라는자부심을가진엘리트다.그런데도그들의진단,처방,치료해법은울림이없다.네이버검색만찾아봐도알수있는,소위표준치료법의틀에서거의벗어나지않는코멘트만있다.환자입장에선그냥권위적인의사의기계적인진단과처방일뿐이다.

암체험자로서나는암세포를잘라내고화학요법으로공격하고방사선으로쪼여죽이는현재의일반적인암치료법과환자가겪어야하는고통사이에서갈등을많이했다.거의매주이메일이나특강이나,모임에서만나는암환우들의입장에서보면현재의치료법에는뭔가빠져있다는느낌을지울수없다.사람,인간자체에대한사랑이다.우리몸의생명력,본능에대한존중이기존병원치료에서는빠져있다.기기에의존해병을찾아내고기기로치료하고수치로환자의상태를점검한다.컴퓨터모니터만보며환자와몇마디주고받는게진료의전부인경우가허다하다.누구를탓할것도없이환자스스로가자기몸의주인이될수밖에없지않을까싶다.스스로깨어있어어삶의질을유지하면서병을극복할수있지않을까싶다.이런저런고민에계속되는가운데좋은글을읽게돼가슴이좀후련해졌다.아래에전문을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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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평판이상당히좋은정형외과의사면서나의친구이기도한찰리가위에서종양을발견했다.그는그부분을외과진찰하였다.진단은췌장암이었다.외과의는우리나라최고명의중의한분이었다.외과의는바로이런암환자의5년생존가능성을5%에서15%로3배나늘릴수있는–비록삶의질은나쁘지만–새로운치료법을개발하기도하였다.

그러나찰리는심드렁했다.그는다음날병원문을닫고는집으로가서다시는병원에발을들여놓지않았다.그는가족과함께시간을보내는데주력하면서가능한기분좋게지내려하였다.몇개월후그는집에서세상을떠났다.화학요법도방사선요법도외과치료도하지않았다.그는병원치료에많은돈을쓰지않았다.
자주다루는주제는아니지만,의사들역시죽는다.그리고의사들은우리들처럼죽지않는다.대부분의미국인들과비교해볼때특이한것은의사들이얼마나치료를많이받는가가아니라얼마나적게받는가하는점이다.의사들은평생을다른사람들의죽음을막기위해살아왔지만자신들의죽음에직면해서는꽤평온한경향이있다.

그들은어떤일이일어나고있는지정확히알고있고어떤선택들이있는지안다.그리고자신들이원하는의료치료는일반적으로얼마든지받을수있다.그러나그들은점잖게떠난다.

물론의사들도죽고싶지않아하고살고싶어한다.그러나그들은현대의학을잘알고있고그한계도알고있다.그리고모든사람들이가장두려워하는것이고통속에서홀로죽어가는것임을알정도로죽음에대해서잘알고있다.이러한점을두고의사들은가족들과도함께얘기를해왔다.

그들은때가되면,어떤영웅적인조치도취해지지않기를분명히해두고싶어한다.지상에서의마지막순간에누군가가자신을심폐소생술(CPR)로살리기위해갈비뼈를부러뜨리는일(심폐소생술을제대로하면일어나는일)을당하고싶지않다는것을분명히하길원한다.

거의모든의료전문가들이사람들에게행해지는소위“헛된치료”를목격해왔다.의사들이임종에이른중환자들에게첨단기술을사용하면서하는치료가그것이다.환자는수술을받고튜브를삽입하고기계에매달려약물세례를받는다.이모든것이하루에도수만달러의비용이드는중환자실에서일어나는일이다.돈으로산것은테러리스트에게물을수도없는비참함이다.

동료의사들이,말은조금씩다르지만,얼마나자주내게이런얘기를했는지모른다.“내가만약이런처지에놓이게되면차라리나를죽여주겠다고약속해줘.”

어떤의료인은자신에게심폐소생술(CPR)을하지말라는뜻을새긴메달을갖고다닌다.나는심지어문신으로새긴사람도보았다.사람들을고통스럽게만드는의료처치를한다는것은고민스런일이다.

의사들은어떤감정도드러내지않으면서정보를모으도록훈련을받아왔다.그러나개인적으로다른동료들과함께있으면“가족들이라면누가그렇게할수있겠느냐?”고.토로할것이다.나는의사들이다른분야전문가들보다과음하고우울증비율이높은이유중의하나가거기에있다고생각한다.

환자들을돌본지난10년동안,내가병원처치에는참여하지않은데에는그러한이유도있었다.어떻게의사들은스스로에게는원하지않은치료를사람들에게그렇게많이행할수있는가?단순하지만,또는그리단순하지않을수도있지만해답은이것이다.환자,의사그리고시스템에있다.

환자들이하는역할을알기위해서누군가의식을잃고응급실에실려온장면을떠올려보라.너무나흔한일이지만누구도이러한상황을계획한것이아니다.충격을받고놀란가족은미궁과도같은선택의기로에놓여있음을알게된다.

그들은주눅들어있다.의사가“모든것”을하기를원하느냐고물으면그들은좋다고대답한다.그리고는악몽이시작된다.때때로가족이“모든것을해달라”라고하는말이의미하는것은종종“합리적인모든것을해달라”라는의미이다.문제는무엇이합리적인것인가를그들이모를것이라는점이다.또한그들은혼돈스럽고슬픈나머지그런것을묻지도못하고의사가해줄수있는말을듣지도못한다는점이다.

“모든것”을하겠다고말한의사들로서는그게합리적이든아니든간에그렇게할것이다.이상의시나리오가흔히있는일이다.이문제를심화시키는것은,의사들이해낼수있는것에대한비현실적인기대이다.

대부분의사람들이심폐소생술을의지할만한구명조치라고생각한다.그러나실은대개그결과가좋지않다.응급실에있을때나는심폐소생술을거친후내게데려온수백명의환자를보았다.딱한사람,전혀심장문제가없었던건장한남자(정확히말하자면그는“긴장성기흉”이었다)만병원을걸어서나갔다.만약중병이면서나이가많거나말기환자라면심폐소생술로좋은결과가나오기가극히어렵다.오히려고통을겪을가능성이압도적이다.지식의부족과잘못방향잡은기대가많은그릇된결심에이르게한다.

그러나물론이러한일들이일어나도록만드는것은환자만이아니다.의사들도권한있는역할을한다.어려운점은,헛된치료를행하기싫어하는의사조차도환자와가족들의소원을들어줄방법을찾아야한다는것이다.다시한번생각해보라.응급실은히스테리가능성이있을수있는,
슬픔에젖은가족들로차있다.이들은의사를모른다.그러한상황에서신뢰와믿음을구축하기란여간어려운일이아니다.

사람들은의사가시간이나돈이나노력을절감하는,기본적인동기에서비롯된행동을하리라고생각할준비가되어있다.특히의사가더이상의치료에반대하는입장을권하고있다면.어떤의사들은다른의사들보다커뮤니케이션에능하다.또어떤의사들은매우단호하다.그러나의사들이직면하는압박감은비슷하다.

나는임종시선택을해야하는환경에처했을때,내생각에합리적이라고여겨지는안만,가능한치료초기에제시하는방법을취했다.환자나가족들이비합리적인선택을제기했을때나는일반인들이알기쉬운용어로그이면을분명히설명해주곤했다.내가생각하기에의미없거나해로운처치를환자나가족이계속고집한다면다른의사를소개하거나병원을옮기도록제안하곤했다.

때때로내가더강한입장을취했어야했을까?내가이전(移轉)조치를내린결정중몇몇이아직도나를괴롭히고있다는것을안다.내가가장좋아했던환자중의한분은명문가정의변호사였다.그녀는당뇨가심했고순환계가좋지않았다.그러다가어느땐가발에고통스런상처가심해지게되었다.병원의위험에대해알고있던나는그녀가수술을피할수있도록온갖노력을다했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녀는나와아무런관계가없는전문가들을찾고있었다.그녀에대해나만큼알지못하는전문가들은만성폐색을일으키는두다리에바이패스(우회)수술을하기로결정하였다.이수술은혈액순환을회복시키지도않았거니와수술한상처도치유되지않았다.그녀의발은썩어들어갔다.그녀는두다리절단수술을해야만했다.2주후,이모든일이벌어진그유명한병원에서그녀는사망했다.

이러한얘기속에서의사나환자의과실을찾기란쉽다.그러나많은경우,모든당사자가과잉진료를권장하고있는더큰시스템의희생자일뿐이다.어떤불행한경우에는,의사들이자신들이할수있는모든것을하기위해“진료행위별지불”모델을이용한다.그것이아무리의미가없다할지라도돈을벌기위해서.그러나더욱일반적인것은,의사들은소송이두려워요청되는것은뭐든지한다는것이다.

거의피드백도주지않으면서곤경에빠지지않으려하는것이다.절차를제대로했다하더라도시스템은여전히사람들을삼킬수있다.내환자중의한분은잭이라는이름의남자였다.

78세인데몇년동안병을앓았고15차례나큰수술을받았다.그는나에게어떤상황에처하더라도다시는생명연장장치에맡기고싶지않다고하였다.그러나어느토요일잭은심한뇌졸중으로의식을상실한채아내도없이응급실에실려갔다.의사들은그를소생하기위해모든것을다했고그를중환자실에입원시켜생명연장을하였다.이는잭에게는너무나나쁜악몽이었다.내가병원에도착하여잭을담당하게되었을때나는그의당부가적힌내사무실노트를가지고와서그의아내와병원스태프에게말했다.그리고생명연장장치가동을멈추고는그의옆에앉았다.그는두시간후사망했다.

잭은자신의소원을문서화했지만희망한대로죽지못했다.시스템이관여했던것이다.간호원중의한분은,나중에야알게되었는데,잭의장치를뽑아살인가능성이있다며당국에보고하기도하였다.물론그이후아무런일이없었다.잭의소원은명시적으로기록되어있고잭은그것을증명하는서류도남긴것이다.그러나예상되는경찰조사는어떤의사에게도공포스럽다.내가쉬우려면잭의소원에반하여그를생명연장장치에맡겨두어그가몇주더고통을받게할수도있었다.아마나는돈도더벌었을것이고의료비로50만달러정도가청구되었을것이다.

많은의사들이과잉치료의측면에서잘못을범하고있는것이전혀이상하지않다.그러나의사들은그래도자신들을과잉치료하지않는다.그들은그결과들을끊임없이보고있다.거의누구나집에서평화로이죽는방법을찾을수있고,통증도이전보다더잘다스릴수있다.헛된치료를하기보다임종환자들에게편안함과존엄성을제공하려고애쓰는호스피스간호는대부분더나은임종을맞게한다.

연구에의하면놀랍게도호스피스간호를받는환자는적극적인간호를찾는같은질병의환자에비해더오래산다는것이밝혀졌다.나는최근에라디오에서유명한리포터탐위커가“집에서가족들이지켜보는가운데평화롭게죽음을맞이했다”는소식을듣고놀랐다.감사하게도그러한얘기들은점점흔하게들리고있다.
몇년전나의사촌형토치(집에서횃불아래서태어나서붙인이름이다)가발작이왔는데폐암이뇌로번진것임이판명되었다.나는그에게여러전문의를주선해주었다.우리는화학요법을위해일주일에3-5회병원방문을하는등공격적으로치료하더라도4개월정도밖에살수없다는것을알게되었다.결국토치는어떤치료도거부하고뇌부종약만복용하였다.그는이사하여나와함께지냈다.우리는그가좋아하는것들을하면서8개월을지냈다.수십년동안누리지못했던즐거움을함께누리면서.우리는디즈니랜드에갔는데그는처음이었다.우리는집에서놀았다.그는스포츠팬이었다.내가해준요리를먹으며스포츠보는것을너무나좋아했다.그는심한통증이전혀없었고늘활기가넘쳤다.

어느날그는일어나지않았다.그리고는삼일동안뇌사상태환자처럼잠을자더니세상을떠났다.8개월동안그의의료비용은복용하고있던약값뿐이었는데20달러에불과했다.

토치는의사가아니었지만자신이원하는것은삶의양이아니라삶의질임을알았다.우리대부분이그렇지아니한가?만약최첨단임종간호가있다면그건바로존엄사이다.나로서는내의사가나의선택이다.그들은대부분의의사들에게하듯이쉽게해줄것이다.어떤영웅적인것도없이그저굿나잇의세계로나는점잖게떠날것이다.찰리처럼.나의사촌토치처럼.그리고나의동료의사들처럼.

“타임”誌2014.9.2일호에게재된이글의저자
켄머레이(KenMurray)는서던캘리포니아대학가정의학과임상조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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