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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조선일보 기자지망생 여러분, 걱정마세요. 저도 입사했답니다. - 김성윤의 맛
조선일보 기자지망생 여러분, 걱정마세요. 저도 입사했답니다.

출중한 선·후배들을 놔두고 입사기(入社記)를 쓰려니 부끄럽고 민망하다. 하지만 “너 같은 사람도 입사해 멀쩡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인재들이 조선일보 수습기자 시험에 응모하도록 고무하려는 의도”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추측에 용기를 얻어 나의 입사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수습기자 합격은 사실 의외였다. 입사 전까지 나는 언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길을 걷고 있었다. 고교 시절에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 프랑스로 유학가기 위해 불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동시에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재수로 들어간 대학에서는 미술사(美術史)를 전공했다가, 미술사가 너무 재미있어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언론, 신문 혹은 기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1999년 겨울 수습기자 시험을 본 이유는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었다. 11월 어느 날, 대학원 합격 후 빈둥빈둥 놀고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조선일보에 수습기자 공고가 났으니 시험을 한번 쳐보라”고 권했다.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일주일 후 어머니는 다시 시험을 보라고 말했다.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는지 보자”며. 뭔가 이상했다. 공부를 포함해 자식들에게 뭘 하라고 시켜본 적이 없는 어머니였다. 하다 못해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을 다니다가도 싫다면 그만두라고 하는 가풍(家風)이었다.

‘그럼 한번 볼까’는 가벼운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다는 발표에 신기했다. 국어와 영어시험을 어찌어찌 통과했다. 논술시험에서는 평소 관심이 많던 유교, 장자 등 철학과 관련된 주제가 나오는 운이 따랐다. 집단토론에 이어 최종면접이 다가오자 조금 긴장이 됐다. 신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떤 질문이 나올지 막막했다. 다행히도 면접관들은 이력서에 써넣은 ‘모 요리대회 수상’ 경력을 매우 흥미로워 하면서 20여분간 음식과 관련된 질문만 했다. 대답하기 무척 쉬웠다.

그래도 조선일보에 합격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내 주제에 감히…’가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합격했다는 전화가 왔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며칠간 곰곰히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은 ‘2년만 대학원을 휴학하고 일해보자’였다. 그런데 2년이 3년이 되더니 벌써 5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자가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시험을 보라고 강권했던 것도 이러한 나의 성향을 나보다 더 잘 알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만큼 소개했으면 웬만한 언론사 시험준비생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할 듯 싶다. 그렇다면 조선일보 시험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소위 ‘기출문제’라고 하는, 여러 언론사시험에서 출제된 문제들을 풀어보며 언론사에서 원할 것이라 지레짐작한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우리말로 글을 작성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기자(記者)란 ‘쓰는(記) 사람(者)’이 아닌가. 영어가 너무 중시되면서 상대적으로 국어가 등한시된데다가, 인터넷통신 등의 영향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문맹(文盲) 아닌 문맹이 너무 많다. 다음은 글이건 말이건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독자를 대신해 만난 수없이 많은 사람과 읽은 자료의 요점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에서 공부한 미술사에서는 기본적으로 미술품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글쓰기 공부를 알게 모르게 많이 했던 것 같다. 또 대학 시절 영어를 한글로 또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어 독해는 물론 한글 문법과 맞춤법을 단련했다고 짐작하고 있다.

작년부터 ‘기사작성’이 평가항목으로 신설되면서 취재와 기사 쓰기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내가 요즘 시험을 쳤다면 입사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기사작성의 주제는 ‘인간과 시장’이었다. 얼마나 기존 신문기사와 비슷하게 쓰느냐 보다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주제에 접근한 개성있는 글이 더 좋은 점수를 얻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마디. 조선일보 편집국에는 ‘매년 별종(일명 ‘또라이’)을 하나씩은 꼭 뽑는다’는 루머가 있다. 일부에서는 “너를 보면 이 루머가 사실인 것 같다”고들 말한다. 참고하시길.

/조선일보가 기자를 선발합니다. 입사기를 쓰라는 주문을 받고 위의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산업부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 다시 써달라는 재주문에 따라 아래 절반 정도를 수정한 글이 기자모집 사이트에 올라 있습니다. 즉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에 대한 내용은 빠지고, 대신 산업부는 무엇을 하는 부서이며 거기서 나는 뭐를 하는지가 들어갔습니다. 조선일보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립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저의 자화상입니다. 사이트에 올라 있는 사진이 너무 옛날 것이라 저같지가 않아서요. 구름에.

2 Comments

  1. 김남교칼럼

    2004년 10월 24일 at 8:07 오후

    어렵게 입사하셔서 잘 나가고 계신데 앞으로 조선과 동아가 이해찬과 그 일행에의해서 손바닥안에서 격파되고 나면 해직기자가 될텐데 복직 투쟁을 어떻게 생각하신지요 힌트 이해찬과 이부영 그리고 허성관과 정동채에게 공개질문 해 봐주셔요 기자양반!   

  2. 박민제

    2004년 10월 25일 at 4:58 오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조선일보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박민제라고 합니다. ^^ 올해는 나이가 안된나머지 지원을 못하지만 내년에는 꼭지원할겁니다 ^^ 선배님의 글을 읽으니막막했던 무언가가 조금은 해소되는 거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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