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지휘의 두 마에스트로, 음식으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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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가녜르가 자신을 위해 즉석에서 만든 요리를 맛본정명훈 지휘자가 박수를 칩니다. 브로콜리로 만든

무스가 절묘합니다. 살짝 뿌린 커리 가루가 흥미로운 맛의 액센트를 줍니다. 가리비 구운 정도는 완벽합니다.

프랑스의 세계적 요리사 피에르 가녜르(Gagnaire·59)씨가 지난 14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있는 자신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아 서울(Pierre Gagnaire Seoul)’로 지휘자 정명훈(56)씨를 초대했다.

가녜르씨는 “정명훈씨가 프랑스에서 명성 높은 분이라 예전부터 알았고, 그를 초청해 나의 음식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파리에서도 운영하는 가녜르씨는 작년 10월 서울점을 낸 뒤 매년 두 차례 한국에 와 음식 맛과 서비스 등 식당을 전반적으로 조율한다. 그의 파리 레스토랑은 미슐랭 가이드 최고점인 별 세개를 받았다.

가녜르씨는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젊어서는 재즈를 주로 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재즈는 뭔가 일부러 추가한 듯한, 가식적이란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 클래식에 점점 끌리더군요. 하지만 침묵도 즐깁니다.”(가녜르)

“그렇죠. ‘웅변은 은(銀), 침묵은 금(金)이란 말도 있잖습니까.”(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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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몇 해 전 요리책을 냈을 정도로 요리 솜씨가 수준급이다. 정씨는 “요리를 하면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음식은 못하고, 한국음식이나 이탈리아 파스타 정도죠. 프랑스 요리는 도전해보고 싶지만 대충 하는 게 아니라 레시피를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 내지 못하고 있어요.”

음식과 음악, 요리사와 지휘자는 공통점이 많았다. 가녜르씨는 “처음에는 요리에 흥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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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업을 이은 거죠. 그런데 10년쯤 지났을까? 음식이란 기술보다 어떻게 감정을 담아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요리에 매력을 느꼈죠.”(가녜르)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청중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테크닉보다 감정 전달을 해야 하는 거죠.”(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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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알던 사이처럼 대화가 술술 이어졌다. “지휘자는 14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야 합니다. 리더로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정명훈)

“주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요리사들이 함께 일하다 보면 불협화음이 나오게 마련이죠. 음악에 비교하면 이런 작은 문제들을 잘 처리해야 연주의 품질이 높아진달까요.”(가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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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녜르씨가 “요리 과정을 보여주겠다”며 정씨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가녜르는 브로콜리로 만든 연두색 소스를 접시에 바르고 버터를 둘러 살짝 볶은 가리비를 얹고 커리 가루를 뿌린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 정씨 앞에 놓았다. 숟가락을 정씨 손에 쥐어주며 “맛보라”고 권했다. 이어 가리비와 소스를 버무리더니 새 접시에 담아 냈다. “이렇게 먹어도 되요. 비빔밥처럼요.” 통역을 맡은 오세영씨는 “가녜르씨가 ‘한국음식은 서로 대비되는 다양한 맛이 공존한다는 점이 참 재미있다’고 종종 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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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가녜르의 음식을 먹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프랑스 사람이 만드는 프랑스 음식이라서 그런지 드뷔시(Debussy), 라벨(Ravel) 같은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이 떠오릅니다. 입은 물론이고 오감(五感)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신경 쓴다는 인상입니다.” 요리계와 음악계 두 마에스트로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2월17일자 신문에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지면사정상 마지막 문단이 삭제돼 약간 어색했거든요. 어떤 분야건 정상에서는 통한다는 걸 느끼게 해준 거장들의 만남이었습니다. 사진은 최순호 기자가 찍었습니다. 구름에

저의 홈페이지 구름에클럽 cafe.chosun.com/gourmet 에 올린 글입니다. 앞으로 구름에클럽 글을 ‘김성윤의 맛’에서도 볼 수 있도록 올려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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