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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소믈리에는 머리카락도 열 가닥으로 쪼개는 사람들” - 김성윤의 맛
“소믈리에는 머리카락도 열 가닥으로 쪼개는 사람들”

잔벽을 흘러내리는 눈물이 부드럽고 유연합니다. 이것만 봐도 어린 와인임을 알 수 있지요. 부케(boquet)는 열려있으며, 부드럽고, 우아하고, 라운드(round)합니다. 신선한 버터, 오크(oak)의 뉘앙스가 느껴지네요. 나무향이 나지만 과도하지 않아요. 감귤(citrus) 계통 과일향이 가뿐하게 올라옵니다.  이제 와인을 맛봅니다. 감칠맛이 우아하게 다가옵니다. 산미가 너무 강하거나 날카롭지는 않습니다. 풍성하면서도 부드럽게 입안을 어루만집니다.  와인을 삼키니 봄꽃이 목젖을 타고 올라오네요. 소비뇽블랑(포도품종)의 속성이지요. 섭씨 2~8도, 신선하게 서빙하는 게 좋겠습니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와인의 맛과 향이 차츰 진화하는 과정을 음식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요.

마시지 않았는 와인의 맛과 향이 입안에 맴도는 듯했다. 당장 잔을 집어 와인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세르주 둡스(Serge Dubs·56)의 와인 묘사는 섬세하고 매끄럽고 우아했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천재 소믈리에 토미네 잇세가 현실로 걸어 나온 느낌. 차이라면 토미네만큼 잘 생기지 않았고 훨씬 나이가 많다는 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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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알사스 ‘오베르주 드 릴’ 소믈리에 세르주 둡스.

김승완 기자 사진입니다.

알사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둡스는 1974년 알사스 베스트 소믈리에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1983년 프랑스 베스트 소믈리에, 1988년 유럽 베스트 소믈리에를 차례로 석권한 그는 1989년 마침내 월드 베스트 소믈리에라는 지존(至尊)의 자리에 오른다. 지난 20일 서울 63빌딩 터치 더 스카이에서 열린 지네스테(Ginestet) 와인 시음행사에서 그를 만났다. 둡스는 이 와인업체에서 나오는 마스카롱(Mascaron) 시리즈 홍보대사이다.

둡스는 알사스에 있는 오베르주 드 릴(Auberge de lIll) 수석 소믈리에다. 1972년부터 일하기 시작, 파리 라세르(Laserre)에 근무한 기간(1974~1976년)을 빼면 올해까지 37년을 오베르주 드 릴에서 와인을 책임지고 있다. 하나도 받기 어렵다는 미슐랭가이드 별 셋을 1967년부터 43년 동안,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오래 유지해온 전설적 식당이다.

둡스는 소믈리에의 최종 임무는 손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소믈리에를 뽑는다면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겠어요. 자신을 통제 못하면 손님을 잃죠. 소믈리에는 와인 지식도 있어야 하지만 손님의 성격이나 특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이 레스토랑 와인리스트에 수록된 와인은 1020가지. 프랑스 와인이 80% 넘고 다른 국가 와인이 10%쯤 됩니다. 알사스에 있지만 부르고뉴, 보르도, 론 등 다양한 프랑스 지역 와인을 갖췄죠. 알사스는 열린 지역이거든요. 열정적인 소믈리에라면 더 다양한 국가 와인을 갖추고 싶어하지만, 손님의 취향을 가장 고려합니다. 물론 레스토랑 예산도 생각해야겠죠.

와인은 보관과정에서 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코르크됐다(corked)고 한다. 오베르주 드 릴 같은 고급 식당에서도 코르크된 와인을 내는 경우가 있다. 손님이 와인을 맛보고 바로 코르크된 와인이라고 하면 상했을 확률이 99%입니다. 이럴 경우 바로 바꿔드립니다. 그리고 와인 감별 능력이 뛰어나시군요.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죠.

전혀 문제 없는 와인을 바꿔달라는 손님도 있다. 예를 들면 알사스 리슬링 와인은 특유의 휘발유향이 있어요. 이 특성을 모르는 손님이 와인에 문제가 있다며 바꿔달라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특성을 설명하면 손님 열 명 중 아홉은 그렇군요라고 넘어갑니다. 그래도 와인이 이상하니 바꿔달라는 손님이 있어요. 어차피 설명해도 안 듣는 손님이니까요. 이런 손님에게는 비슷하지만 다른 와인으로 바꿔줍니다. 그래야 고객을 잃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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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둡스./김승완 기자

둡스는 손님이 퇴짜 놔서 바꿔준 와인 중 가장 비싼 와인은 1959년산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라고 했다. 25년쯤 전이었죠. 단골께서 최고의 와인을 달라고 해서 갖다드렸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 저를 부르더군요. 와인이 상했다고 하시더군요. 와인을 맛봤습니다. 완벽했습니다. 손님은 와인이 상했으니 바꿔달라고 하더군요. 린치바주(Lynch-Bage) 1970년산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시더군요. 맛있다고 기뻐하시더군요. 라피트 로칠드는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그 손님이 다시 식당에 왔어요. 게부르츠트라미네(알사스 화이트와인) 1961년산과 1966년산을 사가겠다고 하시더군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왜요? 전에는 사갔는데? 이제부터는 안됩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이후로 다시는 제가 그 손님에게 와인을 서빙하지 않았습니다.

둡스는 모르는 와인은 그냥 맛보라고 했다. 지식이 아닌 자신의 본능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정보가 때론 도움보다 방해가 되니까요. 저도 새 와인은 사전지식 없이 시음합니다.

이날 시음행사에는 와인 다섯 가지와 한식 코스요리가 매칭돼 나왔다. 둡스는 한식을 미리 맛보지 않은 상태에서, 눈으로 보기만 하고 와인과 매칭했다. 주방장을 만나 음식에 대한 설명은 들었죠. 그리고 와인에 대한 내 머리 속에 든 지식을 꺼내 맞춰봤지요. 둡스는 새우, 가리비, 오골계, 브로콜리 따위를 쇠고기와 오골계 육수에 끓인 신선로가 보르도 레드와인과 특히 잘 어울린다며 기뻐했다. 이 국물은 맛과 향이 아주 풍부합니다. 와인의 떯은 타닌이 국물과 만나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와인도 열려서 풍부한 맛을 내는군요. 훌륭한 궁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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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쇠고기와 오골계로 끓인 신선로 국물과 레드와인이 잘 어울렸습니다./김성윤

이날 시음행사에는 엄경자씨를 포함 국내 정상급 소믈리에 넷이 참가했다. 한국 소믈리에들은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것보다 어떤 와인이 장기 숙성 가능한지 판단하기가 더 어렵다고 물었다. 소믈리에는 와인을 손님에게 추천하는 능력만큼이나, 앞으로 가격이 오를 잠재력을 지닌 와인을 골라내 구매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와인 맛은 산미, 당분, 타닌, 알코올로 구성됩니다. 좋은 와인은 이들 요소 중 어느 하나가 너무 튀거나 부족하지 않고 적적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라운드하다는 표현이 여기 적용됩니다. 이중에서 숙성력은 산미와 타닌의 품질로 판단합니다. 그럼 어떤 산미와 타닌이 좋은가? 그걸 판단하려면 경험이 필요합니다. 가능한 다양한 와인을 열심히 맛보세요. 그리고 마신 와인을 머리 속에 기억해 데이터베이스화 해야 합니다. 머리 속에 넣었다가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테이스팅한 와인을 조직적으로 기억할 수 있어야 소믈리에로서 실력이 늡니다.

둡스는 소믈리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귀 기울이라고 덧붙였다. 저는 와인을 고를 때 항상 아내 의견을 물어요. 아내가 나중에 다시 마시고 싶다고 하면 괜찮은 와인이라고 생각해요. 소믈리에는 머리카락도 10가닥으로 쪼개는 사람들이니까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항상 중요합니다.

/지난 2월20일 세르주 둡스를 만났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분들을 많이 만나봅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 분야나 일에 대해서 간단하고 짧게 압축해서 정의해준다는 겁니다. 뭔가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갖기 어려운 통찰력(insight) 같습니다. 둡스에게서 소믈리에 그리고 와인에 대해 그런 통찰력을 느꼈습니다. 기사에 나가지 못한 원본을 그대로 올립니다.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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