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와인 최초로 로버트 파커 포인트’란 기사를 11월 20일자 조선일보 경제섹션 B4면에 썼습니다. 기사가 나간 훈 꽤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로버트 파커 포인트를 받았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파커 포인트를 받았다는 와인 맛은 어떠냐’ 등등. 그래서 제가 아는대로 여기 설명할까 합니다.
23B 2007년산 라벨.
로버트 파커에게 80점을 받은 와인은 강원도 횡성에 있는 ‘디오니캐슬와인’이란 와이너리에서 만든 레드와인 ‘23B’입니다. 며칠 전 디오니캐슬와인에 일하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만든 와인이 파커에게 80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죠.
파커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 파커가 이 와인을 시음하고 평점을 매긴 건 꽤 됐습니다. 23B에 대해 평점과 평가를 올린 건 지난 5월이더군요. 웹사이트에는 이 와인을 “적당히 짙은 루비색에 강렬한 산딸기, 바나나 껍질, 으깨진 딸기 향 등이 난다”며 “입안에서 매끄럽고 부드러운 탄닌과 상쾌한 산도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웹사이트는 지난 2월 와인을 시음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파커가 어떻게 한국 와인을 맛봤을까,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디오니캐슬와인 김홍철 기획실장은 “지난 2월 파커가 방한했을 때 파커에게 서빙됐다”고 하더군요. 이후 파커가 와인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보내줬답니다. 파커는 와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디오니캐슬에 보내줬답니다. 하지만 디오니캐슬에서는 와인에 평점이 매겨졌는지 모르다가 최근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와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면 들어봤을 이름이죠. 이른바 ‘와인 권력’. 그의 말 한 마디에 와인 가격이 급등하기도 하고, 급락하기도 하죠.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와인시장을 끼고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요. 어쨌건 세계 와인업체들은 흔히 ‘파커 포인트(PP)’라고 하는 그의 평점에 전전긍긍합니다.
80점이면 어떤 의미일까. 와인 교육기관 WSET 대표강사 이인숙씨는 “80점이면 나쁘지 않은, 괜찮은 와인이라는 의미”라면서 “처음 만든 와인이 80점을 받았다면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죠.
웹사이트에 올라온 평가에도 “당장 마시라(drink now)”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기 숙성력이 떨어진단 소리죠. 숙성력은 와인이 얼마나 훌륭하느냐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23B는 나쁘진 않지만 오래 두고 마실만큼 좋은 와인은 아니란 의미죠. 그래도 이인숙씨 말마따나 처음 시험용으로 만든 와인 치고는 괜찮은 평가지요.
23B는 레드와인으로 식용 캠벨포도와 양조용 버팔로포도를 9대1로 섞어 만듭니다. 캠벨포도는 당도가 15브릭스입니다. 그냥 먹기에는 달지만 와인을 만들기에는 당도가 부족하죠. 디오니캐슬와인에서는 당도를 높이기 위해 수확한 포도를 자연 건조해 당도를 23브릭스로 높여 와인 생산에 사용합니다. 포도를 말리면 수분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당도가 높아지게 되죠.
하지만 와인용 포도로서 캠벨포도의 더 큰 단점은 특유의 향입니다. 와인의 향을 말할 때, ‘폭시(foxy)’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흔히 저급 와인에서 이런 냄새가 나죠. 캠벨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이 냄새가 납니다. 와인이 가진 복잡미묘한 향을 가려 고급 와인으로 평가받지 못하죠. 디오니캐슬에서는 이 단점을 보완하려고 버팔로포도를 블렌딩(blending)합니다. 캠벨과 버팔로를 9대1 비율로 섞는다는 것이죠. 이렇게 만든 와인을 프랑스 리무쟁(Limousin) 오크통에서 1년6개월 숙성시켜 병입합니다.
많은 분들이 23B이 어떤 맛이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죄송하지만 맛보지 못해 말씀드리지 못하겠네요. 23B 2007년산은 디오니캐슬와인에서 본격 와인 생산을 앞두고 시험 생산된 와인으로, 현재 판매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디오니캐슬와인은 현재 복분자와인, 다래와인, 배와인을 양산 판매합니다.
김홍철 실장은 “캠벨포도로는 양질의 와인 생산에 한계가 있어 2008년산부터는 MBA(Muscat Bailey A)포도로 주력 포도품종을 교체했다”면서 “첫 평가에서 호의적 평점을 받았으므로 새로 생산하는 와인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한번 평가를 받았으니 앞으로 생산하는 와인도 평가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에 캠벨로 만든 와인도 80점을 얻었으니 MBA로 만든 와인은 더 나은 평점을 받지 않겠냐는 기대입니다.
기대가 현실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