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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도쿄가 남아있는 거리, 야나카긴자상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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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도쿄 모습이 남아있는 야나카긴자상점가.우에노에서 멀지 않습니다. /사진=이경민 기자

동네 주부들이 저녁상에 올릴 반찬 재료를 사러 들리는 단골 채소가게, 몇 시간 전 만들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두부를 한 모씩 잘라 파는 두부가게, 남편이 갈치를 좋아하는지 딸이 고등어를 비려서 싫어하는지 훤히 아는 시장 입구 생선가게. 대형마트의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에 밀려 차츰 사라지고 있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동네 시장 풍경이다.

그 그립던 풍경을 일본 도쿄에서 만날 줄 몰랐다. 도쿄 북동쪽 다이토구(台東區) 야나카(谷中)에 있는 야나카긴자상점가(谷中銀座商店街).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우에노(上野)에서 멀지 않다. 길이 170m에 불과한 짧은 길이지만 양쪽으로 점포 70여 개가 빽빽하게 늘어섰다. ‘긴자’라는 단어에 속으면 안된다. 수수하다 못해 허름한 가게들이다. 서민들이 일상에 필요한 물건들을 판다. 채소가게 앞에는 토마토, 가지, 오이가 광주리에 수북하게 담겨있고, 맞은편 생선가게 주인은 “오늘 물이 좋다”며 전갱이를 단골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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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찬거리 사러 나온 주부와 단골 생선가게 주인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하네요. /사진=이경민 기자

1950년대 도쿄 모습 고스란히 간직한 거리

지난 24년 동안 야나카긴자상점가진흥조합 이사장을 맡아온 호리키리 마사아키(堀切正明·75)씨는 상점가 맨 끝에 있는 잡화점 하츠네야(はつねや)의 주인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1955년 상점가가 조성됐습니다. 아무 것도 없던 길이었죠. 주변 주택가와 전철·지하철역 한복판을 관통해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상점가가 들어섰습니다. 이 주변이 도쿄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재개발이 덜 돼 낙후하긴 하지만, 덕분에 50년 전 거리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동네 주민, 서민의 거리였던 야나카상점가는 최근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다. 호리키리씨는 “관광객들이 4~5년 전부터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평일에는 하루 5000명쯤 오는데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고, 주말에는 2만~3만 명쯤인데 대개 관광객입니다. 관광객은 외국인과 일본인이 반반쯤 됩니다. 외국 관광객은 진짜 도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고, 일본 사람들은 옛날 모습이 그리워서 온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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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됐지만 단정하고 누추하지 않은 모습, 이게 일본 같습니다. /사진=이경민 기자

55년 된 호리키리씨의 가게 하츠네야도 본래 침구류만 파는 가게였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가방이나 옷, 기념품 따위도 팔고 있다. 상인들은 이러한 변화가 달갑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일상용품을 쇼핑하러 대형마트로 가는 경우가 늘면서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 야나카의 상점들도 운영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대신 야나카의 정취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관광객을 위한 소소한 재미를 추가했다. 야나카가 도쿄 서민지역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온다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상호와 전등, 차양, 도로를 정비하면서 편리하지만 “촌스럽게” 분위기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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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포리역에서 나와5분쯤 걸으면 야나가상점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옵니다. 옆에 아파트가들어서기 전, 이 계단에는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이경민 기자

지난 2008년에는 고양이 조각상 7개를 거리 한복판은 물론 상가 지붕 등 의외의 장소에 설치해 찾아보는 재미를 느끼도록 했다. “고양이는 야나카의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JR선 닛포리(日暮里)역에서 상점가로 내려오는 계단 있잖아요? 그 계단에 원래 고양이가 많았어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사라졌지요. 근처에 있는 도쿄예술대학 교수에게 부탁했는데, 교수가 바쁘다고 학생 5명을 추천해줬어요. 이 학생들이 만든 고양이 조각상들이예요.” 고양이 조각상 말고도 고양이를 소재로 한 열쇠고리 따위 기념품을 가게마다 팔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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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가긴자상점가 곳곳에 보이는 고양이 조각상과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기념품들. /사진=이경민 기자

느긋하게 걸으며 이것저것 먹고 사는 소박한 즐거움

야나카긴자상점가에 대단한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느긋하게 걸으면서, 과자나 튀김을 사 먹거나 수퍼마켓에서 플라스틱잔에 파는 생맥주를 홀짝거리기 딱 알맞다. 튀김집 이츠후지(いちふじ)는 솥뚜껑처럼 큼직한 치킨가스가 190엔, 고로케가 30엔으로 무척 저렴해서 늘 사람들이 줄을 선다. 전통과자점 야키-가린토혼포(燒かりんとう本店)는 산마와 오키나와 이에지마(伊江島)산 흑설탕으로 만든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과자를 구워 파는데 큼직한 봉지 하나에 630엔이다. 각종 꼬치구이를 파는 꼬치집에선 꼬치 하나에 장어 230엔 소라 180엔 가리비 180엔씩 받는다. 꼬치집 옆 수퍼마켓에서 파는 생맥주는 한 잔(350㎖)에 250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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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카싯포야의 고양이 꼬리 모양 도넛. /사진=이경민 기자

야나카에서 가장 인기 높은 가게는 야나카싯포야(やなかしっぼや)로, 고양이 꼬리 모양으로 만든 도넛을 판다. 지름 2㎝ 정도에 길이 18㎝인 도넛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고양이의 꼬리처럼 통통하고 귀엽다. 일반 도넛 반죽과 초콜릿을 넣은 반죽을 섞어 만들어 줄무늬까지 살렸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개 130엔쯤. 야나카싯포야 맞은편에 있는 커피전문점 만만도(滿滿堂) 커피와 먹으면 궁합이 딱이다. 직접 볶은 커피원두를 쓴다.

일본인들에게는 어릴 적부터 먹던 친숙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매우 낯선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닛포리역에서 야나카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게에서는 ‘야키소바빵’이란 걸 판다. 볶음국수인 야키소바를 길쭉한 빵에 속으로 넣었다. 일본인 관광가이드는 “초등학교 간식으로 나올 정도로 일본에선 흔하고 누구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을 가진 빵”이라고 했다. 1개 157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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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소바를 넣은 빵. 볶은 국수를 빵에 넣다니,대단히 특이합니다. 맛은 뭐…저는 그냥 그랬습니다. 음식 맛이야 추억에 따라 달라지는거지요. /사진=이경민 기자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이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이 오래된 가게를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호리키리씨는 “작년에만 8개 가게가 바뀌었다”고 했다. “가게가 없어지고 생기는 것이야 상가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요. 관광객이 늘면서 작은 물건 하나 사더라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니 동네 주민 손님이 줄어 슬프기도 합니다.”

여행수첩

찾아가기_JR선 닛포리(日暮里)역이 가장 가깝고 찾기 쉽다. 역을 나와 이정표를 따라 5분쯤 걸으면 야나카에 닿는다. 지하철 치요다(千代田)선 센다기역에서 도보 10분, JR선과 치요다(千代田)선이 교차하는 니시닛포리(西日暮里)역에서는 걸어서 15분 걸린다.
환율_100엔=약 1500원
문의·참고_야나카긴자상점가 홈페이지 www.yanakaginza.com

/12월22일자 주말매거진에 쓴 여행기사입니다. 역시 일본은 디테일이 참 좋다는 생각을 재확인한 취재여행이었습니다. 다시 가보고 싶네요. 구름에

4 Comments

  1. 김수연

    2011년 12월 22일 at 6:19 오후

    도쿄에 이런 곳도 있었네요.
    일드 보다 보면 야키소바빵이 자주 나와서 궁금했는데, 정말 국수가 들어있네요.
    그저 그런 맛이라고 하셨는데 사진으로 봐도 확 끌리는 맛은 아닐 것 같아요. ^^   

  2. Quarantine

    2011년 12월 22일 at 10:22 오후

    야끼소바빵 맛있죠…..^^   

  3. 유머와 여행

    2011년 12월 24일 at 7:14 오전

    마아니 고풍스럽군요..   

  4. Old Bar^n

    2011년 12월 27일 at 5:10 오후

    정말 우리 옛스러운곳도 있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풍경이 잘 보존되었으면 좋으련만……

    다 인심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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