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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순창고추장을 맛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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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마케팅’이란 게 있다. 연기자나 가수 등 유명인사가 먹거나 입거나 쓰는 물건이라고 홍보하고 광고하는 것이다. 스타의 유명세를 이용해 상품을 더 쉽고 빠르게 대중에게 알리고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기법이다. 한국만의 현상도, 최근 현상도 아니다. 서양에서는 더 오래 전부터 스타 마케팅을 활용해왔다.

유럽 요리업계는 스타 마케팅을 특히 활용해왔다. 서양요리 체계를 확립한 프랑스의 전설적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Escoffier·1846~1935)를 포함한 여러 요리사들은 새로 만든 요리를 유명인사에게 ‘헌정’한다며 그들의 이름을 요리에 붙였다. ‘피치 멜바(Peach Melba)’는 에스코피에가 당대 최고 소프라노 가수였던 넬리 멜바를 위해 1892년 창조한 디저트이다. ‘투르느도 로시니(Tournedos Rossini)’는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 활동한 프랑스 요리사 앙투안 카렘(Careme)이 작곡가 로시니를 위해서 만든,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넣은 스테이크 요리이다.

와인업계도 스타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샴페인과 돔 페리뇽(Dom Perignon)이 스타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샴페인은 가톨릭 사제로 오비에(Hautvillers) 수도원 와인저장고 책임자였던 돔 페리뇽이 처음 만들었다고 흔히 알고있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고급 샴페인도 있다. 하지만 페리뇽 신부는 샴페인을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가 샴페인 발전에 기여하기는 했다. 두꺼운 유리병을 도입하고 코르크 마개를 끈으로 고정시켜 기포로 인한 압력 증가로 터지기 일쑤였던 샴페인병 파손을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병이 계속 터져 페리뇽 신부가 관리하는 샴페인의 절반을 버렸다지만.

프랑스 샴페인업계 돔 페리뇽이 샴페인을 처음 만든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려고 나서지 않는다. 가톨릭 수도사가 와인에 기포가 생기게 했다는 전설이 샴페인의 탄생배경에 신비함을 더하기 때문이다. 홍보대사를 선발하거나 마스코트를 일부러 만들기도 하는 마당에, 페리뇽 신부만큼 샴페인을 대표하기 적합한 인물을 다시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순창고추장에서 요즘 스타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것도 일개 연예인이 아니라 임금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순창고추장을 맛보고 극찬했단 거다.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마을 홈페이지는 ‘순창고추장의 유래’를 이렇게 소개한다. “고려 말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고 있던 순창군 구림면 만일사를 찾아가는 도중,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에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하다가 조선을 창건,등극한 후 진상토록 하였습니다. 이후에 천하일미의 전통 식품으로 유명해졌으며 지금까지 그 명성과 비법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안정마을뿐 아니다. 인터넷에서 순창고추장을 검색하면 이런 내용이 무수히 뜬다. 많은 순창고추장 제조·판매업체가 이 설화를 내세운다. 언론에서도 사실처럼 전한다. 최근 한 일간지는 ‘순창 장류 축제’ 기간 열리는 ‘순창고추장 임금님 진상행렬’을 소개하면서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던 순창군 구림면 만일사를 찾아가는 도중 농가에서 먹은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진상하도록 해 유명해졌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그럴듯하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성계는 고려말인 1335년 태어나서 1392년 태조로 즉위했고 1398년까지 조선을 통치하다 1408년 사망했다. 설화에 따르면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찾아오다 고추장을 맛본 건 늦어도 고려가 아직 망하지 않았던 1391년 이전이라야 한다. 고추장의 주요 재료인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온 건 이성계가 사망하고 200년이 지난 17세기초 일본에서 전해졌다고 추정된다. 고추장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건 이보다 훨씬 뒤인 18세기인 1766년 발간된 ‘증보산림경제’로, ‘만초장’이라고 기록돼 있다.이성계는 고추장을 맛보기는 커녕 고추장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계가 순창고추장을 맛보고 극찬했다는 설화의 진실은 무엇일까. 순창군청 웹페이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만나러 만일사에 오다가 농가에서 맛있게 먹은 건 고추장이 아니라 ‘초시(椒豉)’라고 순창군은 설명한다. 초시는 산초(山椒)나 호초(胡椒·후추나무 열매껍질)을 넣은 된장류로, 고추장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순창에서는 이성계가 고추장을 맛보지 않았다는 걸 아는 듯하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수정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굳이 바로잡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일개 연예인이 아니라 임금님이 맛있게 먹었다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스타 마케팅 소재가 또 있겠는가. 그래도 어느 정도라는 게 있다. 돔 페리뇽은 샴페인 발전에 실제로 기여했고, 에스코피에가 만든 요리는 이름을 붙인 유명인사가 적어도 맛이라도 봤다.

/올해부터 ‘김성윤의 맛 세상’이라는 칼럼을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매달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첫 회로 순창고추장과 이성계 설화에 대해 썼습니다. 1월27일자에 실렸습니다. 신문에 실린 내용과는 결론이 약간 다르지요. 전통이라고 하면 무조건 오래됐다는 착각, 그걸 마케팅에 활용하는 업체, 굳이 정정하려 하지 않는 지자체, 사실확인 없이 옮기는 언론…모두 아쉬웠거든요. 앞으로 이런 아쉬움 그리고 음식과 사회, 문화, 역사의 관계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일러스트는 이철원 기자(burbuck@chosun.com)의 작품입니다. 구름에

3 Comments

  1. 황학

    2012년 1월 27일 at 6:41 오후

    그건 산림경제가 무슨 백과사전이라도 되는 양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왜 일본에선 조선전래설이 있는지? 왜 우리는 일본전래설만 믿는지? 고추는 조선고추가 있고 더 매운 고추가 남쪽에서 전래된 것은 아닌지?중국은 언제부터 음식에 쓰였는지?당시는 문화가 중국에서 왔으니까 이미 중국은 더 오랜 옛날부터 쓰여오고 있은 것으로 보여진다.그렇다면 일본보다 가까운 조선을 거쳐서 일본으로 간 일본의 조선전래설이 타당하다고 본다.유럽에서 오더라도 중국이 먼저지 우케 일본이 먼저냐?좀 신경써라 이 아저씨야.   

  2. elan

    2012년 1월 27일 at 7:37 오후

    고추의 일본 전래설은 정설이 아닌 여러 가설중 하나일 뿐입니다.    

  3. 유머와 여행

    2012년 1월 29일 at 12:57 오후

    그러네요. 어쩌면 전설이 진실일지도 모르겠어요.
    훨 오래전에 한반도에 고추나무가 있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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