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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한번도 안 먹어 본 81세 이탈리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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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카테리나(81) 할머니는 내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파르마에서 일 년 연수하는 동안 임대했던 집주인의 어머니이다. 카테리나 할머니는 “여태 피자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피자는 요즘이나 먹지, 내가 젊었을 때는 별로 먹지 않았다”고 했다. 카테리나 할머니는 물론 이탈리아인이다.

피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피자를 이탈리아 전역에서 먹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카테리나 할머니처럼 아직까지 피자를 먹어보지 않은 이탈리아인도 상당수이다.

피자라고 하면 얇고 둥그렇게 편 밀가루 반죽에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치즈를 올려 화덕에 구운 음식을 떠올린다. 우리가 아는 이런 피자는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다. 모차렐라치즈가 피자에 처음 사용된 건 공식적으론 1889년부터다. 그해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2세와 마르게리타 왕비가 나폴리를 방문했다. 나폴리의 피자집 ‘브란디(Brandi)’ 주인인 라파엘레 에스포시토는 국왕 부부를 위한 만찬에 올릴 피자를 개발하라는 명을 받았다.

마르게리타 왕비는 에스포시토가 만든 여러 가지 피자 중에서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치즈, 바질을 얹은 피자를 좋아했다. 이것이 ‘피자 마르게리타’이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하지만 피자는 여전히 나폴리가 있는 이탈리아 남부 일부 지역에서만 먹었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피자가 이탈리아에서 대중화된 건 미국 덕분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으로 이탈리아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나폴리·시칠리아 등 대부분 가난한 남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대단위 주거지를 이뤄 살았던 미국 북동부 대도시들에 피자집이 생겨났다. 1905년 뉴욕에 문을 연 ‘롬바르디스(Lombardi’s)’가 미국 최초의 피자집이다. 하지만 피자는 이탈리아 이민들이나 먹었지, 앵글로색슨 계열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주류는 먹지 않았다.

피자의 팔자가 바뀐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 병사들은 피자에 열광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간 병사들은 미국에도 피자집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이 먹으면서 피자가 미국 사회 전반에 알려졌다. 그리고 이탈리아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들이 피자를 찾았다. 이들의 요구에 맞춰 피자집이 로마·밀라노·피렌체 등 이탈리아 전역에 들어섰다.

피자 먹는 미국인을 보면서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도 피자를 알게 됐다. 특히 미국 문화를 선망하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외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늘어난 1960~70년대부터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본격적으로 소비됐다. 피자가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이 된 것은 5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통음식들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한식 세계화 전도사’인 조태권 광주요그룹 대표는 “우리가 전통한식이라고 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만들어진 지 100여 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치라고 하면 보통 통배추 김치를 떠올린다. 우리나라에서 통배추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건 조선후기부터다. 속이 찬 배추가 1800년대 말 나왔다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파리가 성글게 벌어진 ‘조선배추’다. 1960년대까지도 김치는 대개 이 조선배추로 담갔다. 요즘 김치 담글 때 사용하는 알이 꽉 찬 결구종 배추를 ‘호(胡)배추’라고 지금도 부르는 걸 보면 중국이 아닐지는 몰라도 외래종인 듯하다.

김칫소는 또 어떤가. 일본강점기인 1924년 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통김치 레시피를 보면 김칫소 재료로 쇠고기(양지머리·차돌박이)와 삶은 돼지고기 따위 육류가 들어간다. 고추는 가루 내지 않고 실처럼 가늘게 썰어서 사용하라고 돼 있다. 우리가 지금 전통적이라고 생각하는 김치는 50여 년 전에야 현재의 맛과 모양을 갖춘 셈이다.

피자 이야기로 돌아가자. 피자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자 이탈리아, 특히 피자의 본산 나폴리에서는 ‘피자가 원형을 잃어간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유서 깊은 피자집 주인들이 1984년 전통나폴리피자협회를 결성하고, 정부에 ‘정통 나폴리 피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 협회가 수여하는 ‘정통 나폴리 피자 인증’을 법률로 통과시켰다.

이렇게 피자 맛을 지키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일부에선 피자가 발전하는 길을 막았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탈리아 미식학대학 파비오 파라세콜리 교수는 “피자를 고작 100년 전 만들어진 대로 박제시키면 문화와 사회의 변화에 더 이상 적응 못하고 도태돼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음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현대의 요구와 미감(美感)에 맞춰 재해석·재창조되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한식에 접목한 음식을 ‘퓨전’이라며 무조건 배척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어차피 전통한식의 상당수가 어떤 의미에선 퓨전이다. 어떤 식재료건 요리법이건 한국 사람이 주체적으로 수용하면 한식(韓食)이 아닐까.

/3월22일자 오피니언면에 쓴 ‘맛세상’ 칼럼입니다. 이탈리아 오시면 피자들만 찾으시는데, 솔직히 한국보다 덜 맛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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