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食은 죄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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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중세 가톨릭 교회는 탐식(貪食)을 ‘일곱 가지 큰 죄(Seven Sins)’ 중에서 두 번째로 꼽았다. 14세기 말~15세기 초의 네덜란드 신학자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음식과 술로 배가 터질 듯 차 있을 때 방탕이 문을 두드린다”며 탐식을 경계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시도 때도 없이 먹는 것, 너무 섬세한 음식(맛)을 추구하는 것, 너무 호화롭게 먹는 것, 절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는 것, 너무 과하게 먹는 것”을 탐식의 다섯 유형으로 꼽았다. 중세 기독교가 탐식을 죄악으로 규정한 건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 대다수 사람이 굶주리는 상황에서는 귀족과 성직자 등 기득권층의 식탐을 제어해야 사회와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탐식을 다시 죄악으로 규정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오는 22일부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유엔 지속가능개발회의 ‘리우+20’에서 비만이 주요 어젠다(주제)로 선정됐다. 리우+20은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었던 환경을 위한 첫 국제회의인 ‘유엔 지구 정상회의’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회의이다.

환경과 지속가능한 개발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비만이 어젠다로 부각된 까닭은 비만이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의 웰빙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 보건대학원이 리우+20에서 발표할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에 사는 성인 체중의 합은 2억8700만t이며 이 중 350만t이 비만, 1500만t이 과체중으로 인한 무게이다. 런던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뚱뚱한 사람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는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비만은 이제 환경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환경론자들은 온난화 방지를위해 지나친 육식(肉食)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상당하다. 소가 사료를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메탄이 생성된다. 소는 이렇게 생산된 메탄을 방귀와 트림으로 배출한다. 축산과학원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메탄 양은 연간 47㎏으로, 이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1109㎏이 된다. 자동차 1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4700㎏이라니까, 소 4.2마리가 자동차 1대와 맞먹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셈이다. 게다가 공장식 축사에서 대량 사육되는 소와 돼지, 닭이 배설하는 분뇨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 보호를 위해 음식의 쾌락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보다는 탐식은 지양하고 미식(美食)은 지향하는 자세가 필요할 듯하다. 사실 탐식과 미식은 경계가 애매하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탐식가는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고, 미식가는 ‘음식에 대하여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또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탐식가가 다소 부정적이고 미식가는 긍정적이지만 구분이 쉽지 않다. ‘미식의 나라’로 꼽히는 프랑스어로 ‘구르메(gourmet)’는 미식가를, ‘구르망(gourmand)’은 탐식가 또는 대식가(大食家)를 말하지만 철자와 발음이 비슷할 뿐 아니라 그 뜻이 뒤섞여 사용된다.

최근 출간된 ‘논어로 논어를 풀다’(해냄)를 읽다가 오늘날 사회와도 어울릴 만한 미식가를 찾았다. 공자(孔子)이다. 이 책의 저자는 “흔히 ‘군자가 되려는 자는 먹을 때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논어 학이편 14장)고 했다고 해서 공자가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풀이하지만, 공자가 강조한 것은 음식을 먹을 때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지 배부르게 먹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향당편 8장’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장을 살펴보면 공자는 ‘밥은 잘 찧은 쌀로 지은 것을 싫어하지 않았(食不厭精)’고, ‘제때가 아닌 곡식이나 과일을 먹지 않았(不時不食)’으며, ‘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도 거기에 맞는 장이 아닐 때는 먹지 않았다(不得其醬不食)’. 잘 도정한 고급 흰쌀밥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고, 가장 맛있을 때를 맞은 제철음식을 즐겼으며, 음식에 맞는 양념이나 소스를 곁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기를 많이 먹었으나 밥의 기운을 이기지 않게 했고, 술 또한 양을 정하지 않았으나 만취에는 이르지 않았다(肉雖多不使勝食氣 唯酒無量不及亂)’는 말은 육류를 좋아했지만 과식하지 않았고, 음주를 즐겼으나 폭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음식을 가려먹을 줄 아는 기호, 즉 취향이나 미각을 가졌으면서도 탐식하지 않는 절제력을 갖춘 이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미식가 아닌가.

/6월22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실린 저의 정기 칼럼 ‘김성윤의 맛 세상’에 실린 글입니다. 탐식은 죄악이지만 미식은 죄악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미식가 상을 공자에서 찾을 수 있더군요. 태어나 논어를 제대로 읽어보기는 처음인데, 역시 고전은 고전인가봅니다. 참고하고 깨우치는 내용들이 그득합니다. 구름에

5 Comments

  1. Quarantine

    2012년 6월 21일 at 12:47 오후

    잘봤습니다….^^   

  2. 혜리

    2012년 6월 21일 at 4:13 오후

    공감합니다. *^^*   

  3. 구름에

    2012년 6월 21일 at 5:47 오후

    Quarantine님 혜리님, 감사합니다.^   

  4. securityV

    2012년 6월 26일 at 9:47 오후

    작은 깨우침을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5. 구름에

    2012년 7월 2일 at 9:57 오전

    securityV님, 자주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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