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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김성윤의 맛세상

임금이 피란 가서 맛있게 먹은 생선, 궁궐 돌아와 다시 맛보니 별로…“도로 묵이라 해라”
한식 장사 어려운 건 어려서 엄마가 해준 음식 추억 많고 그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
음식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인 맛보다 음식에 얽힌 주관적 경험과 기억이 더 좌우
軍 생활 중 맛있게 먹던 뽀글이, ‘라면상무’는 어떻게 드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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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안도 의주로 몽진(피란)했다. 전란의 와중에 백성은 그래도 나라님을 생각해 생선을 임금에게 올렸다. 배고프고 지친 선조는 그 생선이 무척 맛있었다. “이 생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생선 이름이 ‘묵’이라고 하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고작 묵이라고 부르다니 당치 않다. 앞으로 은어(銀魚)라 부르라”고 명했다. 그렇게 묵이라 불리던 하찮은 생선은 은어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몽진 중 먹었던 ‘은어’가 자꾸 생각났다. 은어를 진상하게 해 먹어보니 맛이 없었다. 옛날에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선조는 “은어라는 이름을 취소하고 예전대로 도로 묵이라고 하라”고 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도루묵’이라 부르는 생선이 이름을 얻게 된 유래라고 한다.

선조가 아니라 고려의 한 왕이라는 설(說)도, 조선 인조 때 일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음식 그리고 음식의 맛에 대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어떤 음식을 맛있다 또는 맛없다고 할 때 그렇게 판단하는 기준의 상당 부분이 과거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억, 즉 추억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는 지난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나는 ‘음식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추억은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지도 모르겠다.

외식업자들은 한국에서 팔기 가장 어려운 음식이 한식이라고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중국, 일본 따위 외국 음식은 웬만큼 만들면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단다. 하지만 한국 음식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평범한 한식일수록 더 그렇다고 한다.

손님들이 “이 음식은 원래 이런 맛이 아니다”고 할 때의 기준은 추억이다.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은 이런 맛이 아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엄마마다 손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솔직히 요리 솜씨가 영 형편없는 엄마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은 엄마가 해주던 음식에 길들여진다. 손님이 ‘엄마 손맛’을 기준으로 불평할 때 요리사는 난감하다. 이에 비해 어려서 먹어보지 않은 외국 음식에는 이런 추억이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맛있기만 해도 만족한다.

대전역이라고 하면 가락국수(우동)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대전은 특별히 가락국수를 즐기는 도시가 아니다. 대전 사람들은 가락국수보다 칼국수를 훨씬 더 즐겨 먹는다. 그런데 왜 대전역이 가락국수로 유명할까. 역시 추억 때문이다. 과거 서울역에서 저녁 8시 30분 출발한 호남선 완행열차는 자정을 지나 0시 30분 대전역에 도착해 기관차를 바꿔 0시 50분 다시 출발했다. 열차 승객들은 기관차를 교체하는 이 20분 동안 승강장 간이 식당에서 가락국수를 후다닥 먹고 열차에 다시 올라탔다. 이 가락국수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 대전시에서는 대전역사 3층에 옛 맛을 재현한 가락국수집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대전역에서 팔던 가락국수가 진짜로 맛있었을까. 굵은 가락국수 면발은 빨리 익지 않는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엄청나게 밀려드는 승객들에게 가락국수를 팔려면 국수를 미리 삶아 놨어야 했을 것이다. 퉁퉁 분 면발에 미지근한 국물을 부어 후딱 낸 그때 그 가락국수를 지금 다시 맛본다면 아마 그렇게 맛있지는 않을 듯싶다.

지난달 일어난 소위 ‘라면상무’ 사건이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탄 한 대기업 임원이 “라면이 짜다” “덜 익었다” 등 불만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승무원을 잡지로 때리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을 접하고 군 복무 시절 즐겨 먹던 ‘뽀글이’가 떠올랐다.

뽀글이 만드는 법은 이렇다. 우선 라면 봉지 윗부분 중간을 살짝 뜯어 분말 양념 봉지를 꺼낸다. 라면 국수는 봉지에 든 채로 2등분 또는 4등분으로 부순다. 분말 양념을 라면 봉지에 털어 넣고 잘 흔들어 고루 섞이게 한다. 뜨거운 물을 봉지 안으로 붓고 윗부분을 접어서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한다. 손으로 쥐어도 되지만, 분리하지 않은 1회용 나무젓가락을 집게처럼 물려 놓으면 편리하다. 3~4분 정도 지나면 뽀글이가 완성된다. 가스불이나 냄비 따위 조리 도구가 없어도 만들 수 있어서 야전 등에서 사랑받는다.

컵라면이 아닌 일반 라면은 아무리 뜨거운 물을 부어 오래 둬도 익지는 않는다. 결국 뽀글이는 씹을 수 있을 정도로만 불린 라면이다. 물도 충분히 붓지 못하니 짜고 간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배고프고 힘들었던 그때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뽀글이를 잊지 못하고 다시 먹어보고 싶다는 예비역 남성이 많다. 군 생활의 추억 때문이다. 라면상무는 뽀글이를 드셔 봤을까.

/5월30일자 오피니언면에 쓴 칼럼입니다. 마침 칼럼이 나가고 나서 대전역에 가락국수집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식당 이름은 ‘대전역 가락국수’.<아래 사진> 5월 30일 문 연 우송대 외식조리학과와 협력해 새 메뉴를 출시했습니다. 굵은 국수를 미리 삶아두던 과거와 달리, 가는 국수를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삶아 쫄깃한 면발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또 기존 가락국수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 ‘정거장 가락국수’라고 팔고, 두부 두루치기와 국수를 조합해 볶음면으로 만든 ‘두루국수’, 인삼과 닭을 육수를 낸 건강 국수 ‘쌈닭국수’ 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 ‘대전역 가락국수’집이 옛 정취와 맛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시간 나면 맛보러 가봐야겠습니다.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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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코레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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