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이 덜 구운 바게트 빵을 씹는 이유는-김성윤의 맛세상

예전처럼 끼니마다 못 사다 먹어
잘 구운 바게트는 데워 먹기 나빠
전통 음식 맛 바뀌는 건 시대적 흐름
우리 김치나 굴비도 ‘옛 맛’ 아니야
갈수록 덜 짜고 부드러워져
살아남으려면 변화 따를 수밖에

13101613782R0C00_P.jpg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프랑스는 대통령이 나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프랑스 요리가 지정되도록 애쓸 정도로 자국 음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식을 단 하나 꼽으라면 바게트(baguette) 빵일 것이다. 우리 눈에 몽둥이 또는 홍두깨처럼 보이는 바게트는 프랑스말로 ‘작은 막대’를 뜻한다. 바게트의 맛을 지키기 위해서 프랑스 정부는 법까지 만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바게트는 기본적으로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만을 사용해야 한다.

프랑스 정부가 ‘바게트 법’을 제정할 때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바게트를 얼마나 굽느냐이다. 대체로 바게트는 20~25분 오븐에 구워야 한다. 그런데 요즘 프랑스에서는 이보다 훨씬 짧은 17분 정도 구운 바게트가 대부분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8월 보도했다. 먹음직스러운 황금빛 껍질이 아닌, 허옇게 덜 익은 바게트가 파리 대부분의 빵집에서 팔리고 있다는 말이다.

덜 구운 바게트를 손님이 원하기 때문이다. 바게트 먹다가 입천장이 벗겨졌다느니, 턱 빠질 뻔했다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그만큼 바게트는 빵 껍질이 딱딱하고 두껍다. 한국 사람들만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프랑스 사람들도 두꺼운 바게트 껍질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갈수록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 경향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프랑스인의 생활방식이 달라진 것도 덜 구워진 바게트를 선호하는 이유다. 과거 프랑스인들은 끼니때마다 갓 구운 빵을 사왔다.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다. 빵을 미리 사뒀다가 식사할 때 오븐이나 토스트 기계에 데워서 먹는 경우가 많다. 바로 먹을 때는 제대로 구운 바게트가 더 맛있지만, 데워 먹기에는 덜 구운 상태가 낫다. 게다가 완벽하게 구운 바게트는 하루만 지나도 묵은 맛이 나기에 허여멀건 바게트를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제빵사들이나 음식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달갑잖다. 겉껍질은 구수하고 바삭하면서 속살은 보드랍고 촉촉한 바게트 고유의 맛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위대한 프랑스 문화유산의 손실이자 정체성의 훼손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생존하려면 변화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마저도 변화를 맞고 있으니, 다른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굴비 맛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워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조기를 얼만큼의 소금에 얼마 동안 절이느냐가 달라졌다. 요즘 굴비는 수분 68%, 염도 1.25~1.5% 정도다. 옛날에는 수분이 50% 미만에 염도는 3~5%였다. 석 달씩 바싹 말리던 걸 7~14일 정도만 말린다. 이걸 ‘물굴비’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굴비가 상하지 않도록 짜게 바싹 말렸지만, 냉장·냉동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 게다가 소비자는 건강에 해롭다고 짠 음식을 꺼리고, 덜 말려 더 통통하고 촉촉한 굴비를 선호한다. 원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옛날식으로 말린 굴비가 있기는 하다. ‘마른굴비’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물굴비를 선호하는 대세는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굴비뿐일까. 한국식품연구원 부설 세계김치연구소에서 시판 배추김치의 소금 함량을 조사했다. 소금 함량 평균은 1.87%였고, 이 중 73.5%가 1.5~2.0% 범위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김치의 소금 함량 2.5%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김치가 싱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입맛 변화에 맞춰 많은 연구기관에서 김치 고유의 맛은 지키되 소금 함량은 낮추는 방법을 연구하지만 쉽지 않다. 한 김치 전문가는 “배추김치의 최저 염도를 1.5% 정도로 본다”며 “그 이하가 되면 제대로 절여지지 않아 김치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전통 음식 본래의 맛을 지켜야 할까, 아니면 시대의 변화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진화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음식은 과거에도 그런 맛이었을까? 사실 바게트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으로 자리 잡은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은 커다랗고 둥그런 빵을 먹었다. 1920년대 프랑스 정부가 제빵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근무를 금지했다. 그러자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둥그런 빵을 구워내기가 불가능해졌다. 제빵사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가늘고 길어서 굽는 시간이 훨씬 짧은 빵이 바게트이다.

김치는 어떤가. 1960년대까지도 속이 꽉 찬 결구배추가 아니라 성글게 벌어진 ‘조선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1924년 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김치를 담글 때 고추는 가루를 내지 않고 실처럼 가늘게 썰어 사용하라고 돼 있고, 쇠고기와 삶은 돼지고기 같은 육류가 들어간다고 나온다. 우리가 아는 김치는 50여 년 전에야 현재의 맛과 모양을 갖춘 셈이다. 음식은 알수록 어렵고도 재미나다.

/10월17일자 오니언면에 실린 칼럼입니다. 구름에

1 Comment

  1. 베 잠뱅이

    2013년 10월 30일 at 5:28 오후

    재미있는 먹거리의 변신이자
    저같은 고혈압 사람들엔 희소식입니다

    정말이지 거 바겟트빵 껍질은 야구공만큼이나 딱딱하여 짜증나고,
    굴비는 싱거워져 좋긴하지만 막상 구우면 물이 흥건 배어나옵니다 .ㅎ ㅎ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