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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신 와인 들고 방한한 ‘대부’ 코폴라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74)는 ‘대부’ 3부작, ‘지옥의 묵시록’ 등 영화사에 남을 걸작을 만든 감독이다. 하지만 이제 그를 영화감독이 아니라 ‘와인메이커’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코폴라 감독이 자신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만드는 ‘잉글눅(Inglenook)’ 와인을 소개하러 최근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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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자신의 와이너리 ‘잉글눅’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나오는 지에 대해 매우 민감한 코폴라 감독은 인터뷰 당시 현장 사진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블룸버그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코폴라 감독은 어려서부터 와인에 익숙했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와인시음회에서 만난 그는 “할아버지가 집에서 와인을 만들어 드셨다”고 했다. “미국 금주법 시절(1920~1933년)에도 와인이 식사의 일부인 이탈리아계 가정은 일년에 와인 2배럴 만들 수 있도록 허용됐죠. 식탁에 와인이 올라오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여섯 분의 삼촌들은 ‘아버지를 도와 와인을 만들 때 이런 일이 있었지’ ‘와인 만들려고 사온 포도를 몰래 훔쳐 먹었지’ 따위 얘기를 항상 떠벌이셨어요.”

고향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코폴라 감독은 여름별장을 구하러 가까운 나파밸리로 갔다. “가족과 휴가를 보낼 수 있으면서 우리가 마실 와인도 만들 수 있는 와이너리라면 좋을 것 같았어요. 부동산중개업자가 우리를 잉글눅으로 데려갔어요. ‘당신들이 찾는 수준 이상의 와이너리지만, 경매에 나왔으니 둘러볼 수는 있다’면서요. 정말 넓고 아름다웠어요. 그 뒤로 여러 와이너리를 봤지만, 잉글눅만큼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어요.”

코폴라 감독은 ‘대부’ 1·2편의 성공으로 생긴 돈으로 경매에 참가해 잉글눅 포도밭 대부분을 낙찰받았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잉글눅이 나파밸리, 나아가 미국 와인사(史)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지 몰랐다”고 했다. 핀란드 선장 출신으로 미국에서 큰 부자가 된 구스타브 니봄(Niebaum)이 134년 전인 1879년 세운 잉글눅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로 꼽힌다. 그저그런 와인만을 생산하던 나파밸리에서 처음으로 유럽 와인에 견줄만한 수준의 와인을 생산한 와이너리로 꼽힌다. 1941년산 잉글눅 와인은 현재 경매에서 3만 달러(약 3200만원)에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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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폴라 감독이 만드는 ‘잉글눅’와인. 왼쪽은 금주법 이전초기 라벨을 최근 복원한 것이고, 오른쪽은 1940년대 그러니까 잉글눅이 전성기였을 때 라벨로, 코롤라 감독이 최근사용하던것이랍니다./잉글눅 와이너리 제공

자금난을 겪게 된 니봄의 후손은 1964년 잉글눅을 한 주류기업에 넘겼다. 이 주류기업은 품질보다 이윤이 관심이었다. 잉글눅 이름으로 값싼 와인을 대량 생산해 팔았다. 이후 여러 기업의 손을 거치면서 잉글눅은 싸구려 와인으로 전락했다.

‘나파밸리 와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를 통해 잉글눅의 역사를 알게 된 코폴라 감독은 잉글눅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놓기로 결심한다. “하루는 몬다비가 놀러왔어요. 지하 저장고에서 찾은 1890년대 와인을 꺼내놨죠. 그랬더니 몬다비가 펄쩍 뛰며 흥분하더군요. ‘나파에서도 100년 숙성이 가능한 와인(일반적으로 고급 와인일수록 장기숙성이 가능하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증거야! 자네가 어떤 와이너리를 소유하게 됐는지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네’라면서요.”

코폴라 감독이 잉글눅 포도원의 대부분을 갖기는 했지만 잉글눅에 대한 상표권은 획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잉글눅 와인을 만들면서 잉글눅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데 화가 났다”고 말했다. 코폴라 감독은 ‘루비콘(Rubicon)’이란 라벨로 와인을 판매하며 꾸준히 와이너리에 투자했다. 잉글눅 상표권을 사들일 기회를 노리던 코폴라 감독은 마침내 지난 2011년 잉글눅 상표권 획득에 성공했다.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와이너리를 사들인 돈보다 더 큰 금액이 들었다고 알려졌다. 이어 같은해 10월 프랑스 최고 와인 중 하나인 ‘샤토 마고’에서 20여 년간 와인생산을 총괄하던 필립 바스코(Bascault)를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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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눅 와이너리 건물. /잉글눅 와이너리 제공

인터뷰 전 코폴라 감독은 “영화에 대한 질문은 가능한 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에게 “더이상 영화에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예술로서의 영화는 사랑하지만, 영화산업은 아닙니다. 톰 크루즈가 뭘 찍는지, ‘트랜스포머’ 흥행성적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현재 나는 아마추어 영화감독입니다. 영화라고 하는, 아직은 어린 예술분야가 진화하는 데 기여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상업영화는 더이상 만들지 않습니다.”

또 코폴라 감독은 “영화 관련 질문들은 대부분 멍청한 질문들이라 대답하기 싫다”고 했다.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것과 와인을 만드는 것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코폴라 감독은 “20만 번 들은 질문”이라면서 답했다.(이로써 나는 진부한 질문을 20만 1번 째 한 기자가 됐다.)

“원재료를 만들고, 골라내어 정제하고, 완제품으로 마무리하는 세 단계를 거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화가 필름을 찍어서 잘 찍은 부분을 골라 이어붙이고 색깔과 음악을 입혀 완성한다면, 와인은 포도를 재배해 잘 익은 포도를 골라내고 숙성시키고 병에 담고 라벨을 붙여 완성하죠. 영화와 와인뿐 아니라 모든 예술의 공통점이죠.”

자신이 추구하는 와인 스타일을 코폴라 감독은 “언제 마셔도 신선하고, 우아하면서, 와인의 맛과 향이 오래 입안에 남는 여운이 긴 와인을 좋아한다”면서 “결국 모든 위대한 것들은 정제된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와이너리 주인은 테루아(terroir)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와인 생산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거나 지시하지 않아요. 그럴만큼 알지도 못해요. 하지만 품질을 추구할 것이냐 이윤을 추구할 것이냐, 즉 와이너리의 철학을 세우는 결정은 제가 내립니다.”

코폴라 감독이 잉글눅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잉글눅의 황금기는 아마도 내가 죽은 뒤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뛰어난 포도를 생산하려면 요즘 심은 포도나무가 원숙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수십 년 후가 될 겁니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잉글눅을 원래의 위대함으로 회복시키는 일은 내 아이들(영화감독인 딸 소피아와 아들 로만)이 이어갈 겁니다. 내 후손에게 남기는 위대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와이너리를 팔아버리는 손주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웃음).”

/얼마 전 코폴라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대부’를 워낙 좋아하는데, 그 영화를 만든 코폴라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습니다. 7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명석하고 날카롭고 건강하더군요. 무릅 인공관절 수술을 해 잘 걷지 못한다는 점만 빼면요. 신문에 나간 기사의 원본입니다.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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