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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옛 맛과 멋이 남아있는 ‘을지로동’

서울 을지로3가에 붙어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2013년 서울 도심이라고 믿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진다. ‘OO정밀’ ‘OO금속’ ‘OO정밀공업사’ 등 상호(商號)를 얌전한 붓글씨로 쓴 간판이 붙은 작은 가게들이 들어찬 2층, 아니 제대로 재면 1.5층에 불과할 야트막한 건물들이 빼곡히 줄지어 늘어서 있다. 1970년대, 늦춰봐야 1980년대 중반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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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서울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중구 을지로동이다. 이곳에 있는 식당들은 사진 속 등심구이식당 ‘통일집’처럼 음식 맛도 가격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사진=이경호 기자

30년 전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을지로동’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들에게도 낯선 을지로동은 중구 을지로3·4·5가와 입정동·주교동·방산동·산림동·초동·저동2가·인현동1가를 아우르는 행정구역이다. 서쪽으로 명동, 북쪽으로 청계천, 남쪽으로 남산, 동쪽으로 동대문 사이의 한복판에 위치한 을지로동은 서울에서 가장 ‘연로한’ 동네다. 인구 2070명 중 19.9%인 412명이 65세 이상이다. 65세 이하 50세 이상도 780명으로, 장년층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지난 25일부터 30일까지 이곳을 찾았을 때에도 졸업작품 제작을 의뢰하러 온 미대생 몇몇을 제외하면 골목을 오가는 이는 50~60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을지로3·4가 일대는 1980년대까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였다. 명보극장과 국도극장이 있었고, 제조업 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겨냥한 유흥업소로 밤에도 북적댔다. 하지만 이 일대 제조업이 쇠퇴하고, 재개발까지 미뤄지면서 1980년대 모습이 박제된 채 남아있다.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 지역 식당·술집도 자의 반 타의 반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역사를 쌓게 되었다. 게다가 이 동네 손님들은 예전 ‘제대로 된 음식 좀 드셔 본’, 그래서 맛을 잘 아는 연세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 그래서인지 겉모습은 허름해도 내놓는 음식은 오랜 내공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을 내면서, 서울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합리적인 가격대의 식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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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일집’ 소 막창구이. /이경호 기자

지난 25일 저녁 서울 을지로3가 골목 안에 있는 양·곱창구이 전문 ‘우일집’에서 박용설(77)씨와 이재명(73)씨를 만났다. 박씨와 이씨는 “30년 단골인 이 식당에서 한 달에 한번 만나 회포를 푼다”고 했다. “우리 나이에는 인테리어 요란하게 한 집보담두, 구닥다리라두 이런 집이 좋다구. 맛있구 푸짐하구. 음식만 보기 좋게 하는 데는 필요 없지.”

이런 손님들이 대부분인 을지로동에서 30년 이상 살아남은 식당 다섯 곳을 찾았다. 이 동네 식당들은 나이 지긋한 손님이 대부분이라선지 점심과 저녁 중간에 이른바 ‘브레이크 타임(쉬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저녁에는 문을 일찍 닫는 편이다. 대개 밤 9~10시 마감한다. 소주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뚜껑이) 빨간 거(알코올도수 20.1도)요, 아니면 파란 거(19.0도)요?”를 묻는 것도 고령 손님이 많은 이 지역 식당들의 공통점이다.

을지로동을 샅샅이 훑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맛집 다섯을 확인했다. 골뱅이골목, 노가리골목, 을지면옥 등 이미 유명한 곳도 함께 소개한다.

원조녹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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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녹두’ 해물파전. /이경호 기자

등산모를 벙거지처럼 머리에 얹고 작은 금속 뒤집개를 손에 든 주인은 체구가 작았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고수(高手)의 기운을 뿜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향인 전주에서 7년 서울에 올라와 30년, 도합 37년 전을 부친 경력의 소유자였다.

‘원조파전’과 ‘원조녹두’를 주문했다. 주인은 달걀 프라이부터 부치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는 무엇을 얼만큼 주문하건 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허기를 달래라고 달걀 프라이를 손님 수대로 부쳐서 먼저 낸다. “전보다 달걀 프라이가 더 맛있다”는 손님이 있을 정도다.

전 부치는 방식이 독특하다. 먼저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떠서 뜨겁게 달궈진 번철에 얇게 편다. 반죽이 거의 익으면 그 위에 파와 다진 오징어 따위를 마치 피자 토핑하듯 얹는다. 그리곤 그 위에 다시 밀가루물 얇게 붓고 앞뒤로 꾹꾹 눌러가며 부친다. 거의 익었다 싶으면 달걀을 하나 깨서 올리고 다시 뒤집개로 누른다. 파전이 완성되면 뒤집개로 길게 세 조각으로 잘라서 접시에 얌전하게 담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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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치는 솜씨가 고수급인 ‘원조녹두’집 주인. /이경호 기자

얇은 밀가루 막은 테두리가 바삭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쫄깃하달 정도로 탄력이 강하다. 속이 완전히 익었으면서도 물이 생겨 질척하지 않을 정도로 완급 조절이 절묘하다. 역시 고수의 솜씨다. 여태 먹은 파전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녹두전도 맛있지만 파전만큼은 아니다. 녹두전은 질척하달 정도로 기름을 듬뿍 둘러야 하는데, 조금 덜 두르지 않았나 싶다. 속으로 넣은 배추김치가 너무 시큼하단 점도 아쉬웠다. 덜 기름지고 산뜻한 맛의 녹두전을 선호한다면 나쁘진 않겠다. 해물파전·해물녹두 9000원, 고기파전·고기녹두 8000원. 중구 입정동272-8, (02)2277-0241

동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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텁텁하지 않고 개운한 ‘동원집’ 감자국. /이경호 기자

감자국(탕)과 ‘신선하다’는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 같지만, 이 식당 감자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이런 표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걸쭉하고 텁텁한 대부분의 감자국과 달리, 돼지뼈를 폭 고아 끓인 육수에 얼큰하게 양념한 국물이 시원하고 개운하다. 돼지 등뼈에서 고기를 뜯어내지 않아도 젓가락질 몇 번이면 쉽게 떨어져 나온다. 35년째 순댓국을 팔고 있다는 주인은 “얼려서 들어오는 수입 등뼈가 아니라 냉장 국산 등뼈를 사용해서 그렇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순대도 훌륭하다. 양배추를 듬뿍 넣은데다 풋고추를 다져 넣은 덕분인지 무겁게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 여성도 몇 개씩 쉽게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점심시간에는 감자국과 순댓국을 먹으려고 일찍부터 줄이 길게 늘어선다. 머리고기도 나쁘지 않다. 감자국·술국·머리고기 1만3000·2만·2만5000원, 감자국 7000원, 순댓국 6000원, 접시순대 1만원, 홍어삼합 2만5000·3만원. 중구 입정동96-2, (02)2265-1339

안성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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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이 과하지 않고 푸짐한’안성집’ 돼지갈비. /이경호 기자

1957년부터 영업 중이라는 이 식당은 육개장으로 오래전부터 이름이 났던 식당이다. 소 사골과 양지, 갈비뼈 따위를 4~5시간 기름을 걷어가며 끓인다. 이때 고춧가루를 함께 넣어 끓이는 것이 포인트라고 한다. 칼칼하면서도 맵지 않고 시원한, 어찌 보면 모순적인 맛이 진짜 입안에서 느껴진다. 육개장 국물에 밥 대신 칼국수를 말아주는 ‘육칼’과 냉면에 메밀국수 대신 칼국수를 말아주는 ‘냉국수’는 다른 집에서 보기 힘든 메뉴이다.

저녁에는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먹으러 오는 손님이 많다. 양념이 너무 달지 않고 고기 맛을 살려줄 정도로 적절하게 조절하는 솜씨는 오랜 역사에서 우러난 내공으로 느껴진다. 주문을 하면 초벌 구이 한 갈비를 가져와 테이블에서 완전히 익혀 먹는다. 식사를 주문하면 꼭 “보쌈김치도 드릴까요”라고 묻는데, 일부러 시켜 먹을 정도는 아니다. 육개장 8000원, 육칼 9000원, 냉국수 7000원, 보쌈김치 6000원, 소갈비 1인분 2대 3만원, 돼지갈비 1인분 500 2만8000원. 을지로3가208-1, (02)2279-4522

우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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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분위기가 정겨운 ‘우일집’. /이경호 기자

요즘 양·대창 먹기가 겁날 정도로 비싸다. 1인분에 3만원 가까이나 하니 말이다. 50여 년 전 이문자(87)씨가 시작해 이제 두 딸이 잇고 있는 이 식당에서는 양·대창을 절반 정도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양·대창의 품질이 비싼 식당만큼 일정하지는 않을 수도 있고, 숯불이 아닌 가스불에 구워 먹는다. 하지만 이 정도 가격에 이만한 양·곱창을 먹기는 쉽지 않다.

1층에 테이블 5개, 다락방 같은 2층에 테이블 3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제대로 된 환기 시설을 갖췄을 리 없다. 그래서 주인이 미리 구워서 상에 가져다준다. 양을 즐겨 먹는다면 쫄깃하면서 양보다 약간 부드러운 염통도 좋아할 듯하다.

점심에는 대부분 칼국수 손님이다. 소뼈를 삶은 국물에 조개 국물을 섞어 시원하면서도 구수하다. 양깃머리 1만8000원, 대창·염통 1만3000원, 곱창 1만5000원, 칼국수 4500원. 중구 을지로3가155-4, (02)2267-9848

통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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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집’ 등심구이. 가능하면가게 앞 골목에 드럼통 테이블을 놓고 구워 드시기를 권합니다. 운치가 아주 좋습니다. /이경호 기자

이 일대에서는 비싼 편이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쇠고기가 싸고 양이 많다. 고기 질도 나쁜 편은 아니나 편차가 크다. 운이 좋으면 마블링 잘 된 등심을, 나쁘면 퍽퍽한 고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오후에 가보니 여주인이 큼직한 한우 암소 등심 두 덩어리를 썰고 있었다. 쇠고기를 얼려 보관하지 않고 하루 팔릴 만큼씩만 사다가 썰어서 판다. ‘을지면옥’ 옆에 있는 작은 골목 끝 철공소 옆에 있다. 저녁 일찍 가면 프레스 기계가 철판을 자르는 “철컹철컹”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고 손님이 많으면 드럼통 테이블을 가게 밖 골목에 내다 놓고 손님을 받는다. 어둑어둑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좁은 골목에 나앉아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맛이 독특하다. 오래도록 앉아서 술과 고기를 추가 주문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식사로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가 있는데, 둘 다 괜찮다.

식당을 운영하는 세 여성이 처음에는 무뚝뚝한 편이나 속정이 없지는 않다. 한우등심 3만2000원(200g), 된장찌개 5000원, 김치찌개 7000원. 중구 을지로3가202-7, 02-2273-0824

이미 이름난 을지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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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이런 옛 모습이 남아있을 줄 몰랐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우일집’과 ‘안성집’, 그리고소갈비로 이름 난 ‘조선옥’이 있는 을지로3가 뒷골목입니다. 멀리 남산N타워가 보이네요./이경호 기자

노가리골목
어린 명태를 일컫는 노가리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노가리는 과거보다 훨씬 크고 살이 많다. ‘왕노가리’라고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1마리 1000원이면 맥주 두세 잔은 가뿐히 마실 수 있어 가볍게 2차 술자리 하기에 맞춤하다. 왕노가리를 처음 내놓은 곳이 을지로 노가리골목에 있는 맥줏집들이다. 7~8개 맥줏집 중에서 ‘오비베어’가 왕노가리를 처음 내놓았다고 알려졌으나 일찍 닫는다. 만선호프(중구 을지로3가 95, 02-2274-1040)와 뮌헨호프(중구 을지로3가104-5, 02-2273-2288)에 손님이 많다.

골뱅이골목
국내산 골뱅이만을 낸다. 시장이나 수퍼마켓에서 일반적으로 판매하는 수입산 골뱅이와 맛이 완전히 다르다. 참기름이나 설탕, 소면 따위를 넣지 않고 파와 마늘, 고춧가루만으로 무친다는 점도 일반 맥줏집과 이 골목 골뱅이의 차이점이다. 10개 넘는 골뱅이 전문 맥줏집 중에서 우진골뱅이(중구 저동2가 79-10번지. 02-2263-7661), 영락골뱅이(중구 저동2가 80-1번지, 02-2264-9489), 영동골뱅이(저동2가 79-1번지, 02-2266-5006)가 원조로 꼽힌다.

조선옥
소갈비의 명가. 6·25 전 문 연 을지로 터줏대감이다. 중구 을지로3가229-1, (02)2266-0333

을지면옥
전국 냉면집 명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집. 중구 입정동161, (02)2266-7052

안동장(安東莊)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식당. 중구 을지로3가315-18, (02)2266-3814

오구반점(五九飯店)
6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중식당. 군만두가 명성만 못하나, 볶음밥은 나쁘지 않다. 중구 을지로3가5-9, (02)226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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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1일자 주말매거진에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 걸, 저도 이번에 가보고 놀랐습니다. 제가 어릴 적 보던 서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반갑더군요.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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