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셰프도 뮤지션처럼 ‘월드 투어’ 하는 시대 열렸다

덴마크 노마(Noma)와 영국 팻덕(Fat Duck)은 그 이름만으로도 세계 미식가들의 침샘을 자극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레스토랑들이다. 패션에 비교하자면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처럼 여성이라면 (거의)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싶어하는 명품 브랜드랄까. 세계 외식업계 종사자와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1·2위를 다투는 선의의 경쟁자들이자,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으로부터 별 셋(팻덕)을 받았거나 곧 받을 곳(노마)이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식당들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들 스타 레스토랑 둘이 동시에 ‘월드 투어’에 나선 소식이 미식가들 사이에서 화제다. 르네 레드제피(Redzepi)가 오너셰프로 있는 노마는 지난 9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일본 도쿄로 이주해 1개월 동안, 외판원 출신 천재 요리사 헤스턴 블루멘탈(Blumenthal)이 지휘하는 팻덕은 2월 3일부터 6개월 동안 호주 멜버른에서 6개월간 영업한다.

유명 요리사가 해외에서 자신의 음식을 선보이는 갈라디너 따위 행사를 하거나 지점을 내는 건 흔한 일이다. 유명 셰프가 다른 나라에 가서 음식 행사를 할 때는 혼자 또는 최소한의 주방 인력만을 데리고 일주일 정도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게 일반적이다. 지점을 낼 때는 본점에서 자신과 수년 동안 일하며 훈련한 요리사를 파견한다.

노마와 팻덕은 행사 기간 지점이 아닌 외국에 ‘본점’으로 옮겨간다는 점에서 행사를 하거나 지점을 내던 과거 방식과 다르다. 덴마크와 영국에 원래 갖고 있던 식당은 영업하지 않는다. 노마가 도쿄에서 운영되는 1개월 동안 덴마크 코펜하겐 식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총주방장 레드제피는 물론 주방 요리사와 홀 종업원 전원이 도쿄로 온다. 팻덕은 인력은 물론이고 식당 문과 간판까지 떼다가 멜버른에 내걸 예정이다.

식당은 통째로 이주하는 반면 음식은 원래 식당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음식을 낸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프렌치론드리(French Laundry)’와 ‘퍼세(Per Se)’의 오너셰프 토머스 켈러가 2012년 서울 신라호텔에서 갈라디너를 진행한 적이 있다. 켈러는 소고기·치즈·와인·버터 등 자신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를 모조리 가져다 똑같은 음식을 선보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갈라디너에 참석하는 손님들은 미국에 있는 내 식당 음식을 그대로 맛보고 싶어하는 분들”이라며 “본 식당과 똑같은 요리를 내는 것이 손님들에 대한 최고의 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도쿄 노마’는 일본 식재료만을 사용해 요리한다. 노마는 식당이 위치한 북유럽 재료만 사용하는 식당으로 이름났다. 서양 요리의 기본 식재료랄 수 있는 올리브오일을 노마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올리브오일이 남유럽 지중해 연안에서 생산되지 북유럽에서는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북유럽 툰드라 지역에서 나는 풀이나 그 풀을 뜯어 먹는 순록의 고기를 사용한 요리를 냈다. 이른바 ‘로컬 푸드’를 지향한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레드제피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노마의 식재료 구매 담당 직원이 몇 개월 전부터 일본에 와서 어떤 재료가 어디서 나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본지 2014년 11월 20일자> 노마가 도쿄로 이동하기 1년 전부터 철저하게 일본 식재료를 조사해 어떻게 요리에 활용할지를 연구했단 소리다. 팻덕을 멜버른으로 가져가는 블루멘탈은 레드제피만큼은 아니지만 소고기 등 호주 식재료를 활용할 계획이다. ‘노마 버전 일식’과 ‘팻덕 버전 호주 음식’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미식가들 관심은 훨씬 커진다.

레드제피와 블루멘탈이 식당을 한시적으로 다른 나라, 도시로 옮겨 운영하는 이유는 여럿이겠으나 우선은 돈이다. 노마나 팻덕에서 식사해보고 싶지만 너무 멀어 오기 힘들었던 아시아와 호주 미식가들이 도쿄와 멜버른에 오픈한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예약 전화와 이메일을 퍼부어 식당 전화와 인터넷 홈페이지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한국의 많은 미식가와 요리사들도 벌써 예약을 마치고 노마의 음식을 맛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요리사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다. 세계 정상급 요리사들은 새로운 맛과 요리 테크닉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폭식’ 수준이다. 레드제피는 일본 문화와 음식의 엄청난 팬이다. 또 발효 음식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김치와 된장, 고추장, 간장 등 한국 발효 음식에 대한 지식은 웬만한 한국인을 능가한다.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그는 “젊은 요리사들처럼 일본이나 한국 식당에서 (무보수) 인턴으로라도 일하며 발효를 배우고 싶지만 두 아이 아빠인 데다 식당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라 그럴 수 없다”며 이번 도쿄 이주는 일본 식문화를 배울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세계 외식 트렌드를 선도하는 두 식당이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미식 체험을 시도했으니, 이제 다른 요리사들도 비슷한 활동에 나설 듯하다. 유명 요리사가 연예인 뺨치는 스타로 대접받은 건 이미 오래됐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가 미술·공연 관람에 버금가는 문화 활동이나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소문난 식당 요리를 사진 찍어 SNS에 올리는 건 값비싼 명품백만큼 자랑이고 부러움의 대상으로 올라섰다. 시장은 무르익었다는 소리다. 요리사들이 유명 뮤지션처럼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공연’ 하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1월15일자 신문에 실린 제 ‘맛 세상’ 칼럼입니다. 한국 셰프들 중에서도 월드 투어를 다닐만큼 유명한 분이 나오면 좋겠네요.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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