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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것이 귀하다-‘잡초 레시피’ 펴낸 시골 부부
권포근씨가 만든 '토끼풀꽃 튀김'.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맛이 일품이다. /사진=이진한 기자

권포근씨가 만든 ‘토끼풀꽃 튀김’.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맛이 일품이다. /사진=이진한 기자

장독대 뒤에 난 토끼풀을 권포근(56)씨가 뜯기 시작했다. ‘잡초를 제거하려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뿌리째 뽑아버리는 게 아니라 토끼풀과 토끼풀꽃만 줄기에서 똑똑 따내 대바구니에 조심스레 담았다. 마치 귀한 식재료를 수집하듯. 권씨는 토끼풀 옆에 수북하게 자란 다른 잡초들도 뜯어 담았다.

권포근씨가 동네 뒷산 비탈길에서 토끼풀 잎과 꽃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이진한 기자

권포근씨가 동네 뒷산 비탈길에서 토끼풀 잎과 꽃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이진한 기자

권씨가 잡초를 하나씩 집어주며 “맛 보라”고 권했다. 이걸 먹으라고? 깜짝 놀랐다. 토끼풀 잎은 아삭아삭 씹는 맛이 상쾌했고, 뽑아도 뽑아도 또 나서 농부들이 아주 싫어한다는 환삼덩굴은 달큰했고, 개갓냉이라는 풀은 겨자처럼 맵싸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샐러드에 나오는 값비싼 허브 못잖은 맛이었다. 잡초라 부르기 미안할 지경이었다.

권씨는 “여름이면 먹을 수 있는 잡초가 20가지 이상이 올라온다”면서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강원도 원주 시골 낡은 한옥에서 시인이자 목사인 남편 고진하(62)씨와 사는 권씨는 최근 ‘잡초 레시피’(웜홀)이라는 요리책을 냈다. 나물과 비빔밥부터 샐러드·스파게티·샌드위치·김밥·월남쌈·빙수까지, 권씨가 잡초를 활용해 개발한 요리 수십 가지가 담겨있다.

부부가 잡초를 먹기 시작한 건 3년쯤 전부터. 원주 시내에서 운영하던 유기농 음식점을 접은 부부는 6년 전 지금 살고있는 오래된 한옥으로 이사했다. ‘불편당(不便堂)’이라 명명한 집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한 집에 살면서 (잡초들의) 이름도 모르고 지낸다는 게 예의는 아닌 것 같았어요. 잡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계기였죠.” 그 해 심한 가뭄으로 천정부지로 뛴 채소 값은 그를 더욱 잡초에 주목하게 했다.

그는 논밭두렁에서 개망초, 민들레, 비름 따위를 뜯어와 겉절이도 하고 김치도 담갔다. 그는 남편 고씨와 딸에게 자신이 만든 잡초 요리를 시식시켰다. ‘생체실험’ 대상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잡초는 먹을 만 한 정도가 아니라 맛있었다. 마트나 수퍼에서 파는 채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과 향이 강렬했다.

강원도 원주 시골 마을에 있는 오래된 한옥에 사는 부부가 잡초가 담긴 대바구니를 들고 장독대 앞에 앉았다. /사진=이진한 기자

강원도 원주 시골 마을에 있는 오래된 한옥에 사는 부부가 잡초가 담긴 대바구니를 들고 장독대 앞에 앉았다. /사진=이진한 기자

부부는 “잡초는 맛도 맛이지만 약성(藥性)이 놀랍다”고 말했다. “잡초는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잡초를 먹는 것은 그 강한 생명력을 우리 몸에 흡수하는 것이죠. 잡초를 먹고 난 뒤부터 소화가 잘 되고 몸이 가벼워지더라고요. 돼지고기나 막걸리를 먹으면 소변이 탁해지는데, 잡초와 같이 먹으면 너무너무 맑은 거에요.”

부부는 잡초에 단단히 반했다. 아내 권씨는 “미친 사람처럼” 들판으로 쏘다니며 잡초를 뜯어나 일년 내내 잡초 요리를 만들었다. 남편 권씨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잡초를 뜯어 먹으려고” 논두렁 밭두렁을 매일같이 걸었다. 매일 한 끼는 잡초 비빔밥을 꼭 먹을 정도로 잡초 맛에 ‘중독’됐다. 아내가 집에 없으면 직접 만들어 먹는다. 겨울이면 ‘잡초절편’과 ‘잡초가래떡’을 먹으며 싱싱한 잡초를 뜯어 먹을 수 있는 봄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토끼풀 샐러드./사진=이진한 기자

토끼풀 샐러드./사진=이진한 기자

권씨는 “잡초를 뜯어 먹는 건 우리 선조가 원래 하던 일”이라고 했다. 먹을 게 없어 굶주리던 시절 구황식물로 잡초를 흔히 먹었다는 것. 단지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가 선조들의 지혜를 잊었을 뿐이란 거다.

잡초의 맛과 효능을 되찾는 건 우리의 과거와 연결됐을 뿐 아니라 세계적 미식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덴마크 노마(Noma) 레스토랑의 오너셰프 르네 레드제피, 호주 아티카(Attica)의 벤 슈리 등 세계 일류 요리사들은 요즘 ‘포리지(forage)’ 또는 ‘포리징(foraging)’에 빠져 있다. 포리지를 직역하면 ‘먹이를 찾다’이지만 현재 미식계에서는 ‘채집(採集)’이란 뜻으로 쓰인다. 이 셰프들은 시간 날 때마다 식당 주변 숲과 들을 다니며 각종 식물을 뜯는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산꾼’이랄 수 있는 채집 전문가를 고용하기도 한다.

잡초 비빔밥. 권포근씨는 "여러 잡초를 함께 먹으면 서로를 중화해 혹 있을 지 모르는 독성도 완화시킨다"고 말했다. /사진=이진한 기자

잡초 비빔밥. /사진=이진한 기자

이렇게 채집한 풀은 샐러드 등 각종 요리로 변신해 비싸게 팔린다. 이 셰프들이 이른바 ‘잡초’에 주목하는 건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채소이기 때문이다. 다른 요리사들이 갖지 못한 식재료는 요리사가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부부는 “우리 마당에 올라오는 잡초 중에서도 아직 모르는 게 있다”면서 “독성이 있는 잡초도 있으니 반드시 자기가 아는 것만 채취하고 먹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농약을 치는 논밭두렁에서 자라는 잡초는 뜯으면 안 되요. 도시는 공해가 심하니 공원에서 자라는 잡초라도 먹으면 안 되요. 서울에서는 북한산 정도라면 괜찮을 거에요. 그래도 식초에 5분 정도 담갔다가 먹어야 안전할 거에요.”

불편당을 나가려는데 대문 안쪽 ‘흔한 것이 귀합니다’라고 쓴 편액(扁額) 걸린 게 보였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고 했다. 부부는 잡초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잊혀졌던 흔한 풀들의 가치를 재발견해가고 있었다./원주=김성윤 기자

 

20일자 문화면에 실린 기사의 원본입니다.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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