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열심히 썼으나 실리지 못한 기사… 그래도 재미있었던 취재 ^^
“어이, 윤 판사, 난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고 싶다니까”
“김 검사, 그러니까 노래는 노래방 가서 하자고. 이러면 고시촌에서 술 먹고 얼어 죽은 고시생일 뿐이야.”
사법시험 1차 시험이 끝난 18일 밤 10시. 서울 신림 고시촌의 녹두거리는 이날 시험을 마친 사시 준비생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이곳에서 7년째 훈제보쌈집을 경영하는 윤모(52)씨는 “이번 달 들어 100석 가운데 70~80석만 회전이 되었는데 오늘 저녁에는 자리가 모자라 20여 명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구 신림9동)은 통칭 ‘신림동 고시촌’으로 불리지만, 주민들은 5515번 버스가 다니는 샘마을길의 동편은 유흥가가 많은 녹두거리, 서편은 고시원길 남북의 고시촌을 구분한다. 2008년 말 현재 3만 8000여명이 거주하는 이곳에서는 매년 2월 사법시험, 행정·외무고시, 공인회계사 1차 시험이 며칠 사이로 있어 시시각각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 날도 왁자지껄한 녹두거리에 비해 고시촌은 인적이 드물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노래방 애니타임의 아르바이트생 나모(22)씨는 “아직 시험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쪽은 손님도 없고, 노랫소리 새어나갈까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21일 행시 1차를 보는 신모(25)씨는 “1차는 당일 컨디션이 좌우한다”며 “작년 이웃집 외국인이 시험 1주일 전부터 소란을 피워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시촌을 관할하는 관악산 지구대에 지난 3년간 112 신고로 접수된 시비와 소음 사건은 하루 평균 1월 8.03건에서 2월이면 8.23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올해는 1월 10.5건에서 2월 12.3건으로 급증했다. 지구대 관계자는 “술 마시고 싸우는 고시생은 줄었지만, 이웃이나 길거리 소음을 신고하는 경우는 많아졌다”고 했다.
여자친구를 격려하기 위해 고시촌 쪽 독서실로 승용차를 몰고 온 권모(28·사법연수원 2년)씨는 “지금 츄리닝 안 입은 사람은 나처럼 이성친구 만나러 온 경우”라며 “예전에 공부할 때 미니스커트에 부츠 신은 아가씨들을 보았던 것도 이때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작년 12월 행시에 합격한 박모(25)씨도 “친구에게 찹쌀떡을 주러 왔다”며 “이제 녹두거리로 건너가 시험 끝난 친구들과 한 잔 할 생각”이라고 했다.
고시생 생활 10년 만에 3월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조모(32)씨는 “오늘 아침까지도 시험장으로 가는 고시생과 택시로 골목이 가득했다”며 “낮과 밤, 오늘과 내일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게 고시촌의 2월이다”라고 말했다.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려고 녹두거리에 온 최모(20·서울대 2학년)씨는 “올해 2월에는 활기차고 왁자지껄한 이쪽 녹두거리에 있지만, 내년에는 쓸쓸하고 가라앉은 듯한 저쪽 고시촌에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