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에 대한 세대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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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안보리가 제 기능을 못 한다,OK. 구체적인 사례는?" (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도자 암살을 했는데 막지 못 했고…기후변화협약이 중요한데 전혀 역할을 못 하고… 아프리카에서 내란과 기근으로난민이계속 발생하는데 전혀 보호를 못 하고…" (후배들)

"그게 UN 안보리가 할 일이라고? 아니, 하기는 해야 하는데…뭐, 무력 분쟁 개입이나 침략 국가 응징 이런 게 우선 아닌가?"(나)

10년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지난 토요일, 밥이나 사주겠다고 간 학부 재학생들의 국제교류세미나 준비 모임, 간만에 전공 공부나 하겠다고 세미나까지 따라간 게 화근이었다. 함께 어울려 밥 먹고 수다 떨 때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았는데, 정작 국제정치와 UN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완전히 ‘세대 차이’가 났다. 난 97학번, 이 친구들은 07, 08학번임을 새삼스레 깨달을 만큼 ㅎㅎ

주제는 ‘UN 안보리 개혁’인데… 문제는 ‘국제연합’과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다. 1991년 우리나라가 161번째 유엔 가입에 기뻐하고 있을 때 난 중학교 1학년이었고, 이 친구들은 두세살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배운유엔은 한국전쟁 때 지원군을 보내 준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지만 이들이 보고 들은 유엔은 ‘세계정부적 성격’을 지닌 국제기구였다. 내게 유엔 안보리는 집단 안전보장 체제를 수호하는, 국제사회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무력 사용을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곳이지만 후배들에게는 유엔의 멤버십과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기능적인 곳에 불과했다. 나와 후배들에게 갖는 유엔의 의미는 물론 기대치 역시 달랐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국제정치를 공부하면서 10년은 꽤 긴 시간이다. 얼마 전 브레진스키의 ‘미국의 두 번쨰 기회’를 보면서 이 사람이 서술하는 20년이 내가 살아있었던 기간이라는데 무척 당황했다. 언제나 ‘과거’의 ‘역사’를 공부했었는데, 내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남의 입을 통해 바라본다는 게매우 낯설었다. 그가 서술하는 1988년부터 2008년은 나도 꽤 생각을 갖고 기억을 하는 시간이었다.내 머릿 속에는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CNN이 미국의 이라크 공습(제1차 걸프전)을 중계하며,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던 것을 또렷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97학번들이 외교학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국제기구는 꿈이었지만,지금의 재학생들에게는 현실이다. 당장사무총장이 반기문이고, 그는 외교학과 63학번 선배이다.우리 또래의 이상 두 가지는 노벨상과 유엔 사무총장이었는데 그 모두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너무나 빨리 실현됐다. 지금의 07, 08학번들로서는 유엔이 평화유지군이나 파견하고, 냉전적인 안전 보장 체제에 머무는데만족할 수 없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북한이 쏘아대는 미사일도 그다지 위협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두 시간 정도 전공 이야기를 하면서 참 행복했다. 12년을 매일같이 하던 국가, 주권, 안보, 평화 전쟁, 인권, 분쟁, 협력, 제도 등등의 키워드가7개월 만에 하려니 퍽 낮설었다. 비록 세대 차이는실감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후배들에게 밥 말고는 해 줄 것이 없었지만… 직장인으로서는 매우 희귀한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인’고담준론’을 두 시간 넘게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라 안팎은 어지럽지만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꿈꾸는 모습을 보니뿌듯했다, 아직 몇 살 더 먹지는 않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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