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국민, 그리고 대중

"대중들한테 무슨 기대를 해요? 분위기 따라서들 그러는데… 실제로 뭘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니잖아요?"

반년만에 만난 후배는 최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알파걸’ 중 알파걸,이름만 들으면 아는 외국계컨설팅 회사에 별다른 준비없이 합격해 2년 반 동안 일하고다시 외국계 은행의동남아 지사에서 6개월 동안 근무한 후 이번 여름 미국으로 MBA를 나가는 친구의 진단이니까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명석한 만큼 따뜻한 친구라서 노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후배는 나의 대중에 대한 ‘몰인정’을 탓했다. 그리고 정부가 서울광장까지 막은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지난 10일에 서울광장을 열었지만 그냥 그렇게 끝났으니까… 정부는 조금 더 대중들의 자연스러운 추모 분위기를 이해하고, 온정적으로 접근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중들은 그러한 온정을 원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민이고, 국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까 ^^

전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추모 자체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건 개인의 자유이다. 문제는 그것을 자기 집 안에서 조용히 하는 게 아니라 공공 장소에서 나와서 표현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특정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함께 함으로써 정치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최소한 그러한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러한 시공간을 제공하는 사람, 또는 그 시공간에 모인 집단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집단에게 정치적인 빌미를 준다는것은 분명하다.

대한문 앞에 순수하게 추모하려고 나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공간에 그만큼의 인파가 모이는 순간 그것은 순수하기가 어렵다. 비록 당사자들은 계속 순수하게 추모만 하려고 해도 그것을 이용하려는 집단과 그 추모에 공감하지 못하는 집단에게는 문제가 된다.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서울광장까지 진출하게 되면… 누가 뭐래도 정치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없다. 추모 기간 내내 정부와 분향소측,여당과 야당이 그토록 설전을 벌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공공 장소에 운집한 추모객들은 이미 너무나 정치적이 된 것이다.

만일 정부가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막았을 때 이 대중들이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물러섰다면 정말 순수하게 우연히 모여든추모객들로 남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군가는자신들이 ‘시민’임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서울광장은 시민의 것인데왜 이용을 못하게 하냐고 주장했다. 시민의 어원 중 하나가 프랑스 혁명 당시 ‘제3신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대중과는 다른 차원의 정치적 주체이자 주요 행위자로 등장한 셈이다.

따라서 이 ‘대중’들을 그저 바라만 보던 또다른 ‘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서울광장에는 분명 내 지분도 있을 텐데, 난 거기서 추모하는 게 싫으니까하지 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시민’으로서 ‘대중’에게 가졌던 온정은 ‘대중’이 ‘시민’임을 주장하는 순간버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대중이 아닌 시민에게 갖는 기대치는, 그리고 요구하는 수준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시민은 시원적으로 정치적인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대중이라면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무책임하게 행동해도넘어갈 수 있지만 시민은그래서는 안 된다. 특정 정치 세력이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면도 고려해야 하고, 법 질서도 준수해야 하며,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이성적으로 토론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한’ 것은 대중은 몰라도 시민의 변명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문 앞과 시청광장을 메웠던 사람들 가운데 시민은 얼마나 되었을까? 자칭 ‘시민’ 말고 진짜 ‘시민’ 말이다. 시민은 위법성이 조각되는 상황이 아닌 한 경찰을 폭행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은 자신이 선출한 대통령과 시장이 발한 정당한 행정 조치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은 차도를 막고 앉아서 컵라면과 소주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 서구에서 탄생한 ‘시민’이란 개념 역시 서양 개인주의의 화신이기에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배 말대로 나 역시’대중’에 대한 기대는 없고,따라서 훨씬따뜻한시각을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시민이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리고아무리 봐도’시민답게’ 행동하지 않는 대중은 ‘대중스럽게’ 대우할 수밖에 없다.대중 매체에 등장한 수많은 시민들이 말했던 것처럼서울광장은’시민’의 것이지 ‘대중’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민이 아닌 대중들로부터 서울광장을 보호하기 위해 차벽을 치는 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며칠 전부터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미디어법 관련 발언 때문에자칭 ‘국민’이라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전략적으로 잘 한 발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도 ‘기자’보다는 ‘대학원생’ 마인드가 강한 나로서는 덕분에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들은 나 의원의 요지는 "정책 하나, 하나마다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보면서 할 수는 없다"였다. 그랬더니 ‘국민을 무시한다’고 난리인데… 안타깝지만, 우리가 채택한헌법 상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원래 국민은 무시하는 것이다 ^^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표들은 국민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의사에 따라 판단하고, 정치를 해야할 의무는 없다. 기속 위임이 아니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도 채택되어 있지 않고… 교과 과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중학교 사회 시간과 고등학교 정치/경제 시간에 분명히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경원 의원이 조금 기분 나쁘게(설명해도 국민들은 모른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의원직을 박탈하라고들 한다. 아무리 봐도 이들은 국민 같지 않다. 국민이라면 집단화되고 추상화된 ‘시민’일 텐데, 시민들이 이토록 자신들의 정치 체제에 무지할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비록 그 개념이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시민이 ‘인민’으로 가지 못하고,’국민’으로 변형되면서 어느 정도 변질되었다고는 해도 ‘대중’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최근 며칠 동안 나 의원을 비난하고 있는 ‘국민’이라는 사람들은 분명 ‘국민’이 아닌, 기껏해야’대중’에 불과한 것같다.

예전 ‘대중’들은 대중다웠다. 비록 박정희를 3선 시켜줬고, 노태우를 당선시켰지만 최소한 자신들이 ‘시민’이라거나 ‘국민’이라고 우기지는 않았다.명망 있는 사회 원로나 석학이 이야기하면 경청하고 인정하며 따랐다. 근데 요새는…스스로 선출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명박 현 대통령도 무슨 옆 집 강아지대하듯이 욕하고 배신한다, 주권들이 자신에게 있다면서 ^^ 주권은 ‘대중’ 이 아닌 ‘시민’이나 ‘국민’에게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그렇다면 예전에 ‘대중’만도 못한데… 같은 ‘대중’으로서, 나름 ‘시민’과 ‘국민’이 되고 싶은 입장에서 좀 많이 창피하고 갑갑한 요즘이다. 후배와 같은마음씨 좋은사람들의 온정이 그들의 착각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1 Comment

  1. 달빛여우

    2009년 6월 21일 at 10:49 오후

    기자님 – 저는 한남대학교 학생입니다.
    제가 내일까지 과제제출해야하는데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고쳐서 그 기사를 기자분꼐 메일로 보낸다음 답변을 받는 것인데.
    그 기자분이 도무지 메일을 보내주시지않습니다. 정말 절실한데요 ㅠ_ㅠ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같은 조선일보 기자분이시니까..
    동료의 기사에대해 이야기좀 해 주시겠어요???? 정말….학점 많이 반영되는데 메일이 안와서요ㅠ.ㅠ
    네??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기자님 꼭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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