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과 고깃집이 같이 있는 ‘정육 식당’은 3~4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낯설었다. 동네별 맛집 정도는 있었지만, 시 전체에서 입소문을 타는 곳은 대치동의 대치정육식당, 낙성대의 미도정육점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불과 1~2년 사이 한 동에 하나는 될 만큼 급증했다. 서너 개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지점을 확장 중인데, 유명세나 지점 수에서 신장세가 가장 빠른 곳이 임진강 한우 마을 지점들이다.
한강대교에서 상도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우측, 중앙대학교 후문 올라가는 쪽 맞은 편 큰길 가에 위치한 이 곳은 지난해 봄 문을 열었다. 음식점에 가서 먹기에는 두려운 한우, 근처에 미도정육점이 있지만 주차가 불가능해서 부모님과 함께 갈 만한 곳을 찾다가 단골이 된 집이다.
초창기에는 한 달에 두 세번 꼴로 애용했는데 손님이 늘면서 복잡하고, 술 먹으면서 떠드는 사람 많아지며, 반찬이 부실해져서 두세달 안 갔었다. 하지만 가격 대비 경쟁력과 거리, 깔끔하게 먹기에는 이 집 만한 곳이 없어서 ‘일요일 낮에는 괜찮을 꺼야’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다시 찾았다. 12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우리 가족이 처음이었다.
냉장 진열대에서 부위별로 진열된 포장육을 고르면 1인당 3천원씩 받고 상을 차려준다. 보통 200그램 단위로 등심, 안심, 차돌백이, 살치살, 갈비살, 치맛살, 채끝, 기타(육회감이나 국거리)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살치, 갈비 등을 묶어서 특수 부위라고 묶여 있으면서 1+등급과 1등급 둘로 묶어 놓았다. 등심은 1+등급이 100그램에 9000원, 특수 부위는 1만4000 정도, 차돌박이는 7000원 정도였다. 항상 먹는 등심, 그동안 두 가지씩만 먹었던 특수부위 모듬, 그리고 여느 때와 달리 약간 두툼해 보이는 차돌박이를 각 한 팩씩 골랐다.
평소 200그램보다 조금 더 나가는 280그램짜리 등심. 두께가 약간 있어 보여 흐뭇하다. 물론 미도 등에서 부탁해서 받은 400그램짜리 한 덩이보다는 질감이 떨어지지만, 이 정도도 괜찮다. 원래 등심은 떡심이 있는 게 마블링이 좋기 마련인데 엄마가 떡심을 싫어하셔서 없는 것 중에 제일 나은 것으로 골랐다.
잘라 놓은 등심. 이 정도 두께의 고기에서 숯불도 아닌데 레어나 육즙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교적 신경을 써서(고기를 두 번 뒤집으려는 아빠한테 버럭…) 미디엄-웰던 정도로 선방했다. 맛있다 ^^
등심을 구운 다음 특수부위를 올리기 전에 차돌박이를 몇 점 올렸다. 등심은 자체 기름이 좀 있지만 특수부위는 기름이 적어 들러붙기 쉽다. 기름이 많은 편인 얘들로 한 번 불판에 둘러주는 게 좋다.
특수 부위들. 가로로 된 두 조각은 살치살, 그 아래 하나는 갈비살, 오른쪽 세로는 토시살로 추정 ^^ 살치살은 고하고, 갈비살은 부드러우며, 토시살은 쫄깃함이 개인적인 느낌…
마지막에 양파와 함께 밥 반찬으로 ㅋㅋ
1인당 3000원을 받고 차려주는 상차림이 좀 부실해졌다. 상추는 맛있는 편 ^^
파나 양파 무침이 아니라 상추 무침… 원가 탓이겠지만 좀 그렇다.
무 생채… 예전에는 가래떡과 마카로니 섞인 샐러드도 맛잇었는데 이제 맛도 그저그런 이것만 밑반찬으로 ^^
김치… 먹을 만 하다.
회사에서 이따금 가는 용산의 청태산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는 집이다. 물론 그 곳은 숯불이고, 밑반찬도 꽤 되며, 고기맛도 좋지만 너무 기업적인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낙성대 미도에 견주어도 조용하고, 가족적이며, 주차장이 언제나 있어서 좋다. 식사로 나오는 멸치국수 맛 또한 일품이다. 다만 반찬은 정말 많이 아쉽다. 1000원쯤 더 받아도 예전처럼 샐러드와구이용 버섯 서너개는 주면 좋겠다.
사람이 너무 없는 점은 마음에 걸렸다. 올해 초에도 휴일 낮에 갔던 것 같은데, 오늘처럼 조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덕분에 조용히, 서비스 잘 받고 왔지만 손님이 너무 줄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저렇게 고기 700그램 실컷 먹고, 국수 한 그릇에 공기밥 둘까지 8만7000원 나오니까 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전에는 없던 점심용 설렁탕과 육회 비빔밥, 버섯 불고기 등이 메뉴판에 올라 있었다. 아무쪼록 우리 가족이 계속 단골 노릇을 할 테니 지금 정도로라도 계속 유지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