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체제’, 허구 아니면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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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 오늘은 용산 참사 6개월 추모 집회가 있었다. 둘 모두 비교적 무난하고 조용하게 지나가는 것 같다. 확인할 수 없는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번 ‘서거 정국’이 지난해 ‘광우병 촛불 정국’으로 번지지 않아 안도감과 자신감을 가졌다고도 한다. 입장과 관점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겠지만, 짧게 보면 지난 5월 말 이후의 ‘서거 정국’, 길게 보면 작년 5월부터 이어진 ‘2008년 정국 또는 체제’는 막을 내리고 있는 듯 하다.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 다수에게 외면당하고 갖은 비난을 다 받는 듯 보이는’ 기괴한 상황 말이다.

하지만 서강대 손호철 교수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한국과 국제정치’ 최신호(2009 여름)에 실은 "’한국체제’ 논쟁을 다시 생각한다: 87년 체제, 97년 체제, 08년 체제론을 중심으로"에서 ‘2008년 체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MB 정부가 들고 나온 ‘선진화’든, 진보 진영에서 말하는 ‘보수 세력의 10년 만의 귀환’이든 새로운 ‘체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변화의 깊이와 폭 모두 약하다는 것이다.

상당히 진보적 학자인손호철 교수의 분석에 내가 이만큼 공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MB 정부의 선진화구호와 친기업적 정책을 두고 ‘새롭다’며 ’08년 체제’를 운운하는학자나 지식인들은 솔직히 좀 창피하다. 그냥 10년 만에 정권을 찾아와서 기쁜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정도껏 해야지 어떻게 ’87년 체제’와 동급으로…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집권 세력의 교체가 어떻게 헌법이 바뀐 87년이나 IMF 외환 위기가 엄습했던 97년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손 교수는 현재를 정치적으로는 ’87년 체제’, 경제적으로는 ’97년 체제’로 정의하지만, 분위기는 후자에 더 두고 있다. 비록 87년 9차 개헌으로 성립된 헌정 체제가 지속되고 있지만, 노동 시장 유연화가 본격화된 97년의 영향이 더 크게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비록 97년부터 10년 동안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세력이 집권을 했지만 ‘신자유주의’라는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 했고, 이러한 면에서는 현 정부와 대동소이하다고 것이다. 따라서 ’08년 체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존재한다고 해도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의 아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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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08년 체제’보다는 조금 약한 ’08년 정국’은 어떨까?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손호철 교수의 입장은 같은 논문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유례없는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은 완전히 ‘동네북’이 되고, 처참하게 버려졌던 전직 대통령은 자살하자마자 영웅이 되는 상황… ‘한미 FTA’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그 파장에는 다들 무심한 채 ‘광우병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이라는 부분에 다들 분개해 한 달 넘게 서울 도심을 점령하는 현상 말이다. ‘체제’는 아니어도 최소한 ‘정국’ 정도로는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그 ’08년 정국’도 사그러들고 있다. 심지가 되었어야 할 노 전 대통령이 뇌관으로서 폭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리한 대중은, 일시적으로나마 감정에 휩쓸렸던 군중들은 다시 냉정하게 시세를 읽기 시작한 듯 하다. 경제는 바닥을 친 이상 정치 투쟁이 아닌 경제적 실리를 찾아야 하고, 한 달 넘게 촛불을 들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죽은 사람은 불쌍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반대파의 ‘기동전’에 무대응의 ‘진지전’으로응수한 현 정권의 전략적대응이 ’08년 정국’의 조기 소멸을 가져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정부 정책에 대한 분노로 이입시켰던 ‘감정의 과잉’이 사라지면, 경기가 나아져 대다수 사람들이 여유가 생기면 비정상적인 ’08년 정국’은 까맣게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쉽게 ‘광장을 대중들에게 許했던’ 2002년의 실책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축구에서 몇 번 이겼다고, 몇몇 나라는 당연시하는 월드컵 4강에 좀 올라갔다는 흥분에 우리는 권위와 자제로 지켜온 ‘광장의 금기’를깨버렸다. 어떤 이유로도 공공 장소를 무단 점거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은 차도가 아닌 인도로 다녀야 한다는, 그렇지 않으면 현행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는 원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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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승리와 쾌감에 도취해 부리는 난동을 묵인함으로써,오히려 그러한방종을 ‘4강 시민의식’이라는 작은 부분으로 감춤으로써 이제대중들은광장을 점거하고, 차도를 차지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되었다.당시 시내버스에 올라갔던 이는 전경버스에 올라가고, 택시의 경적을 눌러대던 이들은 비키라는 택시 경적에 그 택시를 때려부수고 있다. 4년 마다 돌아오는 축구대회 4강과 바꾸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원칙과 금기가 무너진 셈이다.

분명 ’08년 정국’은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남은 ’02년의 기억’은 언제든지 광장을 점령하고, 차도를 차지하게 만들 것이다. 세계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2002년 W세대는 국제적 차원뿐 아니라 국내적법치의 권위에도 놀랄 만큼 당당하고 무모하게 도전하게 되었다. 대체 누가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을런지… 어쩌면 현 체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명명은 87년이나 97년이 아닌 ’02년 체제’일 수도 있다. 아직도 당시의 길거리 응원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면에서 ^^

1 Comment

  1. 송재순

    2009년 7월 13일 at 1:05 오전

    아, 그래서 시청앞 광장에 그 잘난 잔디 까셨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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