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 토요일, 간만에 과 사람들을 만났다. 유학&교환학생 나가는 후배들이 환송회였지만 재학생들이 귀가하고 선생님과 선배와 셋이 남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전공으로 넘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차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책 이름이 하나 나왔다. 바로 Cultural Realsim: Strategic Culture and Grand Stratey라고, 존스턴이 벌써 11년 전에 낸 것이었다.
(이미지는 아마존닷컴 www.amazon.com)
"중국은 실제 영토는 물론 관념적으로 자신의 영역이라고인식한 공간을 위협받을 경우 군사력을 투사한다"는 주장을 ‘손자병법’ 등 중국의 전통군사서를 분석해 증명한 책이다. 이 책 하나로 30대 초반에 테뉴어를 보장받았다는, 과에서 엄격하기로 유명한 모선생님조차 ‘천재’의 ‘명저’로 극찬한 그 작품이었다. 비록 카첸슈타인이 일으킨’전략 문화’ 신드롬에 편승한 듯한, 실증적 증거는 없이 병서 분석에만 의존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객관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아시아적 가치와전통 경서에 관심이많던 시절이라 ‘완독’은 아니지만 ‘발췌독’을 했었다.
선생님과 선배의 걱정은 ‘중국위협론’이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도 아닌, 현 상태의 중국이 계속 부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중화사상에 젖어있고,미국에 맞서게 되는 순간 중화질서의 재현을시도할 게 분명하며, 우리나라 역시 그들의 ‘관념적인 영토’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중국은 분명 아편전쟁 이후 겪었던 150년의 한을 품고 있고,근대 서구 국제정치의 근간인 주권 개념과는 다른 영토 관념을유지하고 있다. 특히 공산화 이후 중국의 군사력 투사(projection)는 놀랍게도 명청 시대의 영토와 거의 일치한다. 티벳과 위구르에 대한 중국의 비합리적인 지배는 그 단적인 예이다.
서구 근대 국제체제보다는동아시아 전통질서에 막연한 향수를 갖고 있던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병자&정묘 호란 이후 큰 전쟁이 없었던200년의 평화,힘과공포의 균형이 아닌 관념의 균형이 이루어졌던 사대질서, 문화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갈등보다는 조화가 모색되었던공간이 중화질서였기 때문이다. 시기에 따라서 우리는 말만 조공국일 뿐 속국에 가까웠지만, ‘모든 국가는 평등하다’는 근대국가 주권 사상 역시 신화이기는 마찬가지이니까…
그런데 그런 이상이 아니라 현실 국제정치로서 중국이 중화체제를 회복하려고 든다면…공부를 열심히 안 하던 학생이 그나마 학교를 떠나서인지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서구적 근대국가체제를 극복하려면 중국이 조금 더 떠서미국을 견제해 주고, 적당히 그 틈을 통일 한반도가 파고 들면 좋지 않을까 했었는데 ^^
선배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자기 땅으로 생각한다니까… 말이 되냐? 근데 앞으로 힘으로 상대가 안 되면 어찌 되겠느냐?"고덧붙였다. "어차피 힘으로 안 되면 깨지는 거죠, 꼭 중국이 아니어도…"라고 답했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는 당연히 제 땅이라고는 안 여기잖아. 걔네는 그렇다니까?"에 또 말문이 막혔다. 어설프게 ‘공격적 현실주의’와 ‘방어적 현실주의’로 넘어가봐야 이론 전공인그 선배한테되는 게임이 아니니까 ㅎㅎ
선생님은 보다 학문적인 이야기를 꺼내셨다.중국 학자들이 중국의 전통질서를 ‘미화’하기 때문에 국제정치학계에서도 중국의 부상을 실제만큼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중화체제는 ‘예’에 의해 움직이는 지극히 평화로운 체제였고, 중국은 대국으로서 물리력을 불가피할 때만 사용했으며, 앞으로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이 되어도 그러리라는… 사실상의 ‘프로파간다’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와 한문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학자들은 대부분 중국인이거나 중국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전통질서의 공과를 직간접적으로고민해본아시아 국가들과아무런 이해 상관 없이 구경하던 서구 국가들의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설사 결론은 똑같이 ‘그래도 중화질서에 좋은 면이 더 많다’는 결론을 내려도 우리는 51:49나 6:4 정도로 판단하겠지만, 그들은 99:1이나 8:2의 결정을 할 테니까… 그건정말 아닌데 말이다.
결국 우리가 한문과 영어를 겸비해서 불과 100여 년전까지 우리가 살았던 국제질서 체제를 세계에 알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선생님 말씀이셨다. 하지만 한문만 해서는 미국 유학을 갈 수 없고,미국 유학을다녀오지 않고는 국제 학계에 명함을 내밀기가 힘들다.게다가 미국에 건너간 수많은 우리 유학생들은 미국 국제정치학의 매력과 다양성에 매료돼 식상한 ‘한국적 문제의식’은 잊기 십상인 게 오늘날 국제관계는 공부하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미래는 그다지 밝지가 못 하다.
탁상공론일 수도 있고, 고담준론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도 같다.하지만 잠시나마 예전의 대학원생으로 돌아갔던, 불과 몇 달 만에 너무나 까맣게 잊고 살았던 ‘지적 유희’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한장 넘기기도 버거워진 옛 원서를 떠 올릴 만큼…^^
천둥번개
2009년 8월 10일 at 1:53 오후
이미 25년 전에 예측한 거와 같은 얘길 한 학자가 있었군요 ㅎㅎ
추천 드립니다.
흉노
2009년 8월 10일 at 3:37 오후
중국인이 생각하는 평화의 개념은
끝없이 실질적 혹은 문화적 영토를 넓혀나가서
그들이 안전해 지는 것입니다.
즉 타민족 자체를 종족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말살하여 전부 한족화 하면
평화가 온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한족이란 민족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혈통적 민족이 아니라
한자를 쓰고 중국어를 하는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이고요.
여기에서 탈락한 자들을 야만족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과거 수천년동안 똑 같이 해 왔던 짓거리인지라
어슬프게 그들의 중화개념에 휩쓸려 버릴 경우
한민족이라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개별적 존재는
중국내의 한 일파가 되어 버리고
마침내는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 대한 고려없이
과거 명-청 기의 조용했던 시절만을 떠올린다면
청나라 시절 동북아가 조용했을수 밖에 없었던 것은
조선은 이미 무릎을 굽힌 정도가 아니고
아주 이마를 땅에 대고 청나라에 절하고 명나라에 절하던 시절이었던지라
청과 명은 그들에 거역하는 투르키스탄 지역과 베트남 지역 공략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평화의 모습이 허구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베트남에서 깨진 청 정부가 그나마 동북아시아라도 지키고자
위안스카이 를 조선 총독으로 취임시킨 때부터 였습니다.
위안스카이 뒤를 쫓아온 청의 장사치들이 이땅에서 부린 행패는
왜놈들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공권력에 고분하던 왜인들과 달리
청의 장사치들은 공권력과 무관하게 더 많은 행패를 부렸던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