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극장가를 평정했다는 ‘의형제’. 그 대열에 우리 가족도 있었다. 명절 오전 부모님을 보시고 타임스퀘어 CGV로 향했다. 시끌벅적하던 몰 전체가 문을 닫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오후 12시 30분 개장) 오직 영화관만이 북적였다.
영화는 ‘수작’이었다. ‘JSA’나 ‘라디오스타’ 등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나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끝났을 때의 압도감처럼’밀려드는 무언가’는 없었다. 요즘 영화 치고는 스케일도 작았고, 여기저기 깔아놓은 액션신은 ‘아이리스’만 못했다. 약간 고급스러운 ‘베스트극장’을 본 느낌이랄까? 굳이 짝을 찾는다면 ‘말아톤’과 비슷했다.
다만 세상의 변화는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남북 관계와 그와 연관된 인간 군상들에 대한 현실적 휴머니즘이었다. 꼭 12년 전,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연 ‘쉬리’에서 남북 요원이었던 한석규와 김윤진은 결국 서로를 버렸다. 연인 사이였음에도 ㅎㅎ 하지만 ‘간첩 리철진’ 이후 ‘전사’가 아닌 ‘인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보다 ‘인간적’이 되었다. 절박한 순간에도 날을 잡고 손잡이로 송강호를 찌르던 강동원의 모습이 바로 그것. 세월이 달라졌다.
‘의형제’에서 송강호는 여전히 송강호다. 잘 했다, 못 했다… 를 떠나서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원래 그는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나기에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약간의 ‘오버’가 느껴지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냥 그 만큼만 해 주면 충분한데 과욕을 부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의형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강동원이다. 송강호가 맡은 이한규에 비해 강동원이 연기한 송지원은 빛을 보기 어려운데도 난 시종일관 "진짜 강동원 맞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10여편에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저 ‘꽃미남 배우’였던 그가 ‘못 하지 않는 연기’를 해냈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소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송강호의 ‘잘 하는 연기’에 맞서 그는 자기 배역을 지켜냈다. 만일 강동원마저 ‘잘 하는 연기’ 욕심을 냈다면 송강호의 ‘잘 하는 연기’와 불협화음을 빚거나 ‘송강호의 오버’와 충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속으면서도 속지 않는, 자신을 숨기면서도 보여주는 송지원을 잘 소화해냈다.
두 사람의 불안한 동거가 이어지는 송강호의 오피스텔.
이 영화에서 마주치는 또다른 시대상은 다문화가족. 동남아에서 수입된 신부가 얼마나 많고, 그들이 어떤 대접을 받기에 전문적으로 찾아주는 직업이 등장할 정도인가 싶다. 한국 남편들의 학대와 처음부터 위장결혼이 목적인 그들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겠지만… 공장에서 베트남인들의 단체 응원이 벌어지는 모습은 역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 영화의 주연급 조연인 그림자를 맡은 배우 전국환. 사실 영화나 드라마 단역으로 낯이 익다.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 내공이야 새삼스럽지만 영화에서 설정된 그의 전투력(?)은 가히 상상초월이다. 그에게 여러 요원이 당하는 국정원이 항의하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이다.오직 권총 한 정에 소음기만 부착했는데 일당백이다. 아마 ‘아이리스’의 이병헌과 붙어도 이길 것 같다.
아마 ‘의형제’를 보는 많은 관객들은’아이리스’를 떠올렸을 것 같다. ‘의형제’는 스토리 중심이고, ‘아이리스’는 비쥬얼이 강조되기는 했지만… 확실히 ‘의형제’의 액션신은 약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12년 전 ‘쉬리’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다. 스토리텔링이 아무리 강해도 액션신을 넣은 이상 어느 정도 눈높이를 맞춰줄 필요는 있다. 이런 면에서 ‘의형제’는 ‘아이리스’와 두고 두고 비교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름값을 하는 배우와 이름값을 뛰어 넘은 배우의 호연을 볼 수 있는 ‘의형제’. 한국영화의 흥행사를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강동원의 재발견, 그리고 냉전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지평을 넓혔다는 면에서 갖는 함의는 매우 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