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학과 졸업생들끼리 책모임을 다시 시작했다. 아무래도 회사만 다니다가 보면 책을 절대 안 읽게 된다는데 십여명이 동조한 것이다. 하지만한 달에 한 번 갖는 지난주 모임에 나타난 진짜 직장인 한명. 나머지 셋은 대학원생이었다. 선배 한 명이 기후변화 관련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있기 때문에 비교적 대중적인 <기후변화의 정치학>으로 세미나를 가졌다.
책은 기후변화 문제 전반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고 친절하게 다뤘다. 다만 철저히 ‘정치적’인 관점이다. 기든스는 ‘지구를 지켜야 한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주장에 별 관심이 없다. 1990년대부터 환경 담론이 왜 주목을 받았는지, 2000년대 들어 어떻게 전지구적인 논의로 확산됐는지 정치적으로 분석할 뿐이다. 심지어 녹색운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기까지 하다. 환경론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회의론자이자 몰인정한 국제정치학 교육을 10년 넘게 받은 내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책 자체는 서평들이 많이 나왔으므로 생략하고… 간만에 단행본을 완독하면서 가진 느낌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든스, 참 가지가지 한다는 것. 그는 사회학자이지만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국가와 폭력>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책은 1980년대 초반 국내에 번역되었고, 아직도 근대국가 관련 도서로는 손에 꼽히는 작업이다. 올해 기든스가 72살, 그렇다면 이미 마흔 전후였을 때 낸 책이다.
기든스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이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덕분이었다. 1990년대 말 대학생에게는 거의 필독서였다. 이 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제3의 길’이 조금 더 정치 팸플릿에 가깝다면, 이 책은 대중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날 책모임에 참석한 06, 07학번 재학생 몇몇은이것은 물론 ‘제3의 길’도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한때 블레어의 브레인으로 불리며2000년대 유럽 좌파 정권의 정신적 지주였던 블레어도 한국 젊은이들에게 ‘듣보잡’이 되는데5년밖에 안 걸린 셈이다.
또다른 생각은 EU와 기후변화 레짐의 상관 관계. 물론 아직까지 기후변화 체제에 가장 순응한 국가는 일본이다. 하지만 미래의 세계 규범 설정에 EU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이 기후변화 체제가 제일 강력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존의 인권레짐은 미국과 EU가 보조를 맞췄지만, 환경레짐만은 EU 독주 체제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후발 주자로서 새로운 문명표준에 치이다가 따라가기 바빴던 우리로서는의심의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이유다. 비록 국제부에서 ‘무너진EU의 천하삼분의 꿈’이라는 기사를썼지만,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결국 실체를 드러낸 EU의 향후 행보에 눈길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