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학생회 재선거가 끝났다. 투표율이 50%에 이르지 못해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되었다.마지막으로 투표권을 가졌던 게 2000년,이후 10년 동안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학교로 복귀한 탓에 조금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 선본이주장한 ‘수업 권력의통제’ 논의였다.
자보와 리플렛 등에 적힌 요지는 경제학부 이모 교수, 언론정보학과 윤모 교수와 같은 사람에게는 배울 수 없으니 학생들이 수업 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TV 토른 프로그램에 나가 정신대 관련 친일 발언을 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윤모 교수는 2008년 촛불 시위를 폄하하고 교수시국선언을 반대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자유주의와 MB의 부역자’라는 표현도 있었다.
잠시 혼란스러웠다.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가 심각해졌다고 봐야할지, 아니면 이 주장 자체가 도를 넘은 것으로 간주해야할지…이 선본의 입장은 결국 "이 교수나윤 교수는 강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문제는 두 가지. 하나는교수의 수업권의통제될 수 있는지, 다른 하나는 통제를 인정한다면 그 사유로 해당 교수의 정치적 성향을문제삼을 수 있는지 여부다.
첫번째질문은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답하고 싶다. 사실 우리나라 교수들 가운데연구는 물론 수업이 부실한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20년째 같은 강의노트를와서 읽는 사람도 종종 있고, 연구를 핑계로 수업 자체를경시하는 ‘연구원형’ 교수도적지 않다. 이런 교수들을 적절히 제어해 ‘수업의 질’을 유지할 필요는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을 학생들이 해야하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
두번째 질문에는 ‘아니오’.특정 교수의 정치적 성향이 대학 내에서, 그것도수업권과 연계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도 학생들이 교수의학문적 성향이나 수업 외적인 언행을 문제 삼아서 수업을 할 자격이 있다, 없다 말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교수의 언행이 실정법상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사법당국이 판단할 문제였고, ‘엄혹 시대’의 사법권도 대학 교수에게만은 유보적인 경우가 많았다.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의진보적인 담론은 그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만일 정치성 자체를비난한다면 상당히 수긍할 수 있다. 강의 개설하고선거에 나가휴강을 일삼거나 1~2년씩 휴직하고 공직에 들락거리는 행태는비판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또 종종 터지는 성폭력, 연구비이중 수령 등 윤리적인문제를 지적해도 공감. 하지만 ‘생각이 다른 교수는수업할 자격이 없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진중권씨를 재임용하지 않은 대학들이 만약 이처럼 합리화한다면 뭐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 진씨는 옳은 사람이니 계속 강의를 해야 하고, 두 교수는 그른 사람이니까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답할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는 정치적 성향이 있다. 그 성향이 서로 다를 경우 상호작용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특히 교수-학생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에서 양측의 성향이 대립적이면 학생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1년 반만에 돌아온 학교, 거의 10년 만에 듣는 법대 수업에서 나 역시 이따금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게 학생이 교수의 수업 권력을 통제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수업 시간도 아닌 수업 외적 활동을 근거로 수업권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비약이다.
방값 문제, 기업 스폰서 거부 등 흥미로운 공약이 많았던 이번 총학선거는 무산됐다. 투표하지 않은절반의 학부생들이 의도적인지, 단순 무관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학에는 총학생회가 필요하고, 단순 무관심은 곤란하며, 꼭 마음에 드는 선본이 없어도 4년 내내 투표는 했던90년대 학번 입장에서는 최근의 상황이 많이 안타깝다.
며칠 전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란 내 말을 한 09학번 친구는 "형, 예전에 운동권이셨나 봐요"라고 받았다. 비운동권으로 총학생회 운영에 참여했던 01학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그 친구가 보기에는 그런 말 하는 형이 운동권이죠"라며 웃었다. 그저 격세지감이랄 수밖에^^
서울대 총학생회 재선거가 끝났다. 투표율이 50%에 이르지 못해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되었다.마지막으로 투표권을 가졌던 게 2000년,이후 10년 동안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학교로 복귀한 탓에 조금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 선본이주장한 ‘수업 권력의통제’ 논의였다.
자보와 리플렛 등에 적힌 요지는 경제학부 이모 교수, 언론정보학과 윤모 교수와 같은 사람에게는 배울 수 없으니 학생들이 수업 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TV 토른 프로그램에 나가 정신대 관련 친일 발언을 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윤모 교수는 2008년 촛불 시위를 폄하하고 교수시국선언을 반대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자유주의와 MB의 부역자’라는 표현도 있었다.
잠시 혼란스러웠다.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가 심각해졌다고 봐야할지, 아니면 이 주장 자체가 도를 넘은 것으로 간주해야할지…이 선본의 입장은 결국 "이 교수나윤 교수는 강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문제는 두 가지. 하나는교수의 수업권의통제될 수 있는지, 다른 하나는 통제를 인정한다면 그 사유로 해당 교수의 정치적 성향을문제삼을 수 있는지 여부다.
첫번째질문은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답하고 싶다. 사실 우리나라 교수들 가운데연구는 물론 수업이 부실한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20년째 같은 강의노트를와서 읽는 사람도 종종 있고, 연구를 핑계로 수업 자체를경시하는 ‘연구원형’ 교수도적지 않다. 이런 교수들을 적절히 제어해 ‘수업의 질’을 유지할 필요는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을 학생들이 해야하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
두번째 질문에는 ‘아니오’.특정 교수의 정치적 성향이 대학 내에서, 그것도수업권과 연계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도 학생들이 교수의학문적 성향이나 수업 외적인 언행을 문제 삼아서 수업을 할 자격이 있다, 없다 말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교수의 언행이 실정법상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사법당국이 판단할 문제였고, ‘엄혹 시대’의 사법권도 대학 교수에게만은 유보적인 경우가 많았다.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의진보적인 담론은 그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만일 정치성 자체를비난한다면 상당히 수긍할 수 있다. 강의 개설하고선거에 나가휴강을 일삼거나 1~2년씩 휴직하고 공직에 들락거리는 행태는비판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또 종종 터지는 성폭력, 연구비이중 수령 등 윤리적인문제를 지적해도 공감. 하지만 ‘생각이 다른 교수는수업할 자격이 없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진중권씨를 재임용하지 않은 대학들이 만약 이처럼 합리화한다면 뭐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 진씨는 옳은 사람이니 계속 강의를 해야 하고, 두 교수는 그른 사람이니까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답할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는 정치적 성향이 있다. 그 성향이 서로 다를 경우 상호작용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특히 교수-학생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에서 양측의 성향이 대립적이면 학생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1년 반만에 돌아온 학교, 거의 10년 만에 듣는 법대 수업에서 나 역시 이따금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게 학생이 교수의 수업 권력을 통제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수업 시간도 아닌 수업 외적 활동을 근거로 수업권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비약이다.
방값 문제, 기업 스폰서 거부 등 흥미로운 공약이 많았던 이번 총학선거는 무산됐다. 투표하지 않은절반의 학부생들이 의도적인지, 단순 무관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학에는 총학생회가 필요하고, 단순 무관심은 곤란하며, 꼭 마음에 드는 선본이 없어도 4년 내내 투표는 했던90년대 학번 입장에서는 최근의 상황이 많이 안타깝다.
며칠 전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란 내 말을 한 09학번 친구는 "형, 예전에 운동권이셨나 봐요"라고 받았다. 비운동권으로 총학생회 운영에 참여했던 01학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그 친구가 보기에는 그런 말 하는 형이 운동권이죠"라며 웃었다. 그저 격세지감이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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