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전쟁, 그리고 전쟁 드라마

전쟁과 여성은 상극이다. 비상식적인 남성성이 개인 차원은 물론 국가 구조에서극대화되는시공간에서 여성의설 자리는 거의 없다.특히 개인의 생존이 아닌 공동체적자리매김은 더욱 미미하다. 약간 비약한다면 캐서린 문의 <동맹 속의 섹스>가 분석한 것처럼 비극적인 보조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국제관계에서’젠더정치학’ 만큼 여성 연구자가 많은 세부 전공이 ‘평화 연구’인지도 모르겠다.

전쟁 드라마는 조금 다를 줄 알았다. 최소한 전쟁 소설에서는 여성들의 몫이 충분히 있어 왔으니까. 그런데 최근 방영 중인 ‘로드 넘버원’과 ‘전우’에서 여성의 제자리 찾기는 무척 힘겨워보인다. 두 드라마의 여성은 그저 로망의 대상 아니면 남성화된 ‘전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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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MBC의 <로드넘버원>. ‘대작’은 맞고, ‘휴먼’도 있는데 ‘멜로’는 잘 모르겠다. 있어도 완전 따로 논다. 전혀 무관한 에피소드 둘로 한 회를 엮는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다. <전우>에 비해 ‘멜로’를 내세우다가 보니까 소지섭, 윤계상, 손창민 이외 전투원들의 캐릭터도 잘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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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전우>. <로드넘버원>을 피해서 주말로 갔다는데 최소한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시청률에서는. 디테일보다는 스토리 전개에 치중하는 KBS의 대하 드라마 스타일답게 진도를 잘 빼는 편이다. 하지만 남측과 북측 모두의 휴머니티를 그리려는 욕심은 확실히 과해 보인다. 토끼 두 마리가 모두 자유분방하게 노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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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넘버 원’에서 김하늘의 역할은 분명 ‘전우’에서의 이태란보다 크고 분명해야 한다. 드라마의 설정이, 또 배우의 비중 때문에라도. 그런데 오빠를 따라 평양에 간 김하늘은 전장에서 너무 멀어졌다. ‘이념’에 눈이 먼 오빠와 비인도적인 북한군 사이에서 그녀의 ‘인술’은 휴머니티를 그리기보다는 "M본부답지 않게 북한을 폄하한다"는 평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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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소지섭의 아이를 임신하고, 병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아와 친해지는 장면은 드라마의 흐름마처 끊는다. 열혈 인텔리 여성의 맹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모습은 전시를 감안할 때 너무나 평온하고 소극적이다. 단순히 연인을 기다리는 여성이라면 굳이 의사일 필요도, 김하늘이 맡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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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의 이태란은 처음부터 부담이 적다. KBS 주말 드라마의 특성상 ‘멜로’는 비중이 높지 않고, 게다가 전쟁 드라마라면 더더욱 스토리 위주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감은 너무 작다. 특히 사상 때문에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가, 상당한 인텔리로 보이는 이태란이 인민군 전투 장교(정치 장교도 아닌)에 저격수로까지 나서는 모습은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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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연 배우에 버금가는 조연급 여성의 등장으로 시선 분산과 신선감을 불어넣는 건 KBS 대하드라마의 불문율이다. 전쟁 미망인으로서 유격대장인 이인혜는 그 몫으로 안성맞춤이다. 다만 이태란의 절반, 많아야 3분의 2에 머물러야 할 그녀의 분량이 다소 많아지는 느낌이다. 과유불급에는 예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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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은 ‘여전사’ 전문 배우인 것 같다. <천추태후>에서도 호위 무사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여성 해병대원으로 돌아왔다. 전쟁 드라마에서 꼭 필요한, 안젤리나 졸리의 <툼레이더> 이후 빠지지 않는 캐릭터이지만 이 역시 전쟁 드라마에서의 여성의 자리 찾기와는 거리가 있다. 이채영의 배역은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성화된 ‘전사’이니까.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방송 중인 KBS와 MBC의 야심작 <전우>와 <로드넘버원>. 사실적인 전투씬과 군복 입은 남성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전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은 ‘전쟁 드라마’에서도 제 몫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실제 전쟁에서는 어쩔 수 없어도 전쟁 드라마에서는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전쟁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던 <서울 1945>에서는 훨씬 여성들의 역할이 부각되었던 것 같다. 극중 배역은 기억나지 않지만 남성 주연이었던 김호진, 류수영, 박상면 못지 않게 소유진, 한은정, 조안 등의 연기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시리즈 내내 여성 배역을 거의 배제했던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전쟁이 아닌 전쟁 드라마에서는 여성들이 활약을 조금 더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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