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열심히 보던 ‘남자의 자격’의 하모니 편이 막을 내렸다. 처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TV 보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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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보지 않다가 ‘우연히’ 오디션편의 재방송을 봤고, 이후에는 완전히 본방을 사수했다. 합창… 노래를 못해 음악이 항상 ‘우’였고, 교내 합창대회 때에는 소년답지 못한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립싱크를 해야했던 내게는 아련한 무엇이었다.
방송 내내 화제는 많았다. 배다해의 고운 음색, 박칼린의 카리스마, 각양각색의 사람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생각은 없지만, 비교적 덜 진부한 세 가지만을 짚어 보고 싶다.
첫째는 ‘무명의 영웅들’이다. 내 표현은 아니고 20세기 초 중국 양계초의 말. 한두명의 초인적인 영웅이 아니라 절대 다수인 대중이 이름은 없지만 영웅이 되어야 근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32명에게 꼭 어울리는 표현인 듯 싶다.
기존 멤버 여섯을 포함한 이들은 정말 합창만 했다.이상할 만큼 돌출 행동을 하는 이가 없었다. 다들 진짜 합창을 하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처럼 보였다.
사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KBS 행정직원,이종격투기 선수, KBS 아나운서는혹시 모르겠다. 하지만 신인급 가수들은, 이름없는 뮤지컬 배우들은다를 것 같다. 처음에 오디션을 나온그들을보면서 ‘지상파에 얼굴 한번 내놓으러 나온 게 아닐까’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합창단 멤버들은 참 우직하게 노래만했다. 편집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8주에 걸쳐 집중해서 보고난 지금도 단원들 가운데 절반도 이름을 모르겠다. 마지막 방송에서 원샷을 잡힌 서너 명은 ‘저런 사람도 있었네?’라고 할 만큼 낯설었다. 내심 기대했을 ‘홍보 효과’는 거의 없었다.
몇몇 기사는 이경규 등 기존 출연자들의역할이 너무 미미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박칼린에게 묻혔다는 것. 하지만 오히려 그게 합창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이 아닌가 싶다. 기존 멤버들 역시 다른 단원들과 함께 ‘무명의 영웅들’으로 동화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둘째는 ‘따뜻한 열정’. 단원들은 노래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불같이 뜨겁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래서 편안했다. 흔히 열정은 뜨거우면 뜨거울 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뜨거운 열정은 스스로를 태워버릴 수도 있고, 좌절할 경우 자칫 ‘한’으로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인기 절정의 ‘슈퍼스타K’의 출연진들이보다 절박하기때문에 더욱 스릴 넘치지만, 그만큼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은 짐짓 물러나 있는 이들이기에 온화했다. 이들 중 절반은 이미 직업적으로 노래를 하거나 또다른 전문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마음 한켠에 노래에 대한, 합창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남았고, 이것을 다른 30여명과 함께 풀어나간 셈이다. "노래하던 대학시절의 향수 때문에 지원했다"던 KBS 행정직원 고중석씨의 말은 절실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가슴이 시려오지는 않지만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기에는 충분하다는 말이다.
셋째는 박칼린의 합리성이다. 많은 매체가 그녀를 ‘카리스마’로 설명했지만, 난 좀 다르게 느꼈다. 박칼린은 엄청나게 합리적인, 실력주의의 화신이다. 그런 그녀에게’비합리적인 기운’으로 설명되는 ‘카리스마’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단원들은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로 박쥐 목걸이를 선물했다.박칼린은 ‘소리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서 그랬나 보다"라고 화답했다. 대중들에게는 낯설지만, 한국 뮤지컬계에서 박칼린은 음악 감독으로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1년에 뮤지컬 한편을 볼까, 말까한 나조차도 이미 그녀의 이름을 들은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말이다.
틀린 음을 짚어내고, 음치에 가까운 멤버들의 개인지도 과정에서 박칼린은 탁월한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노래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그녀는 단원들의 ‘신뢰’에 감사했지만, 합리적인 단원이라면 누구라도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박칼린을 믿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방송 초기 ‘황태녀’로 보였던 배다해를 버리고 선우를 선택하는 대목에서 박칼린의 ‘합리적 지배’는 절정에 달한 셈.
그렇게 합창은 끝났다. 재방은 몰라도 ‘남자의 자격’ 본방을 다시 볼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하모니’ 편은 특별했고,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훌륭한 프로그램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이어지는 ‘1박2일’보다 10%나 시청률이 낮았다는데 어이없음을 넘어 맥이 빠졌다. 역시 우리 국민들은 강호동과 유재석 중 한 명은 나와야 예능 프로그램으로 치는 모양이다.
이강녕
2010년 10월 3일 at 1:41 오전
그러게 말입니다. 1박2일보다 시청률이 10%나 낮다니…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짓어린짓이라고 절대 안보시던 (다른 사람이 봐도 별로 안 좋아하시던) 우리 아버지도 남자의 자격 합창편은 꼭 챙겨보시더군요. ^^ 저도 TV 잘 안보는 편인데 전편 다 보고 합창 부분은 지금도 다시 듣고 있습니다. ^^
빈처
2010년 10월 3일 at 3:10 오전
이사진들,,
저작권으로 걸고 들오 올 수 있답니다,
조심하세요^&^
찬기파랑가
2010년 10월 3일 at 3:27 오전
요즘본 최고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쉽게 이런 완선도 높은 프로그램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金漢德
2010년 10월 3일 at 4:53 오전
우연히 tv보고 또 컴에서 이 글 읽었다.
정말 멋지다.
수정불가
2010년 10월 3일 at 11:38 오전
좋은 글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삐끗…
마지막 문장은 우리 국민들을 업신여기는 표현 아닌가?
프로그램의 좋은 정도와 시청률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 우리 국민들 다 안다..
1박2일보다 시청률이 더 높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버려야…
전현석
2010년 10월 3일 at 11:13 오후
한국 돌아가면 꼭 봐야겠네. 그대는 잘 살고 있습니까?
어진이
2010년 10월 4일 at 2:09 오후
선배, 남아공 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건강히, 즐겁게 근무 마치고 돌아오십시오~
최동근
2010년 10월 7일 at 2:54 오전
진토 속에도 보물이 있군요.
잊지 말고 꼭 보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