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봤다. 꼭 ‘기대치’ 만큼의 작품이었다. 스케일에 스토리가 밀리지 않으면서도 대형 상업 뮤지컬답게 볼거리가 많고 화려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그림자도 엿보였다.
(영국에서 상영 중인 ‘빌리 엘리어트’. 출처는 영국문화원 홈페이지)
초반 극 전개는 상당히 느슨하다. 전반적으로 템포가 늦은 영화에 비해서도 답답할 정도. 권투를 하던 빌리가 발레 수업에 참여하기까지 서너씬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뭔가 산만하고, 지루한 데다가 극의 등장인물과 배경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도 못한다. 앞에서 열째줄쯤으로 무대가 가까웠지만 몰입이 어려웠다.
(한국 작품의 주요 장면. 출처는 플레이DB 홈페이지)
다행스럽게도 발레 수업 이후 극 전개는 빠르고 탄탄하다. 무엇보다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빌리의 개인기는 물론 수강생들의 군무, 경찰과 노동자들이 충돌과 갈등도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에서 한 호흡 쉬는 듯 하지만, 어린 빌리와 성인 빌리가 함께 하는 군무는 관객을 숨죽이게 만든다. "영화보다 훨씬 낫네"라는 평이 나오기에 충분하다.
그 일등공신은 당연 빌리다. 어린 소년 배우를 저렇게 혹사시켜도 될까 싶을 만큼 극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등장 시간도 많고, 발레부터 탭댄스, 노래에 이어 와이어 댄스까지… 하는 게 너무 많아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신동이 많은 나라답게 한국의 빌리들은 노래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매우 돋보인다.
조금 걱정스러운 두 가지는 흡연 장면과 동성애 코드이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윌킨슨 선생님과 빌리의 아버지는 거의 담배를 달고 나온다. 비록 지상파는 아니지만 관객 가운데 어린이가 다수인 점을 감안하면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아울러 빌리의 친구 마이클이 동성애자로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아직 우리 사회의 다수 정서상 얼마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TV 드라마 ‘세상은 아름다워’가 겪는 논란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커튼콜이 끝났을 때 앞자리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젊은 여성 관객들은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빌리를 맡은 정진우에 대해서. 한국 뮤지컬의 흥행은 20~30대 여성이 좌우하고, 배우 유승호에 대한 누나들의 열정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많이 어리지 않나 싶었다. 역시섹슈얼리티는성 자체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인 듯 ^^
p.s. 개관 초기 너무나 안락하게 느껴졌던 LG아트센터의 좌석이 이제는 불편했다. 좀 좁기도 하고… 이곳이 변했다기보다는 그동안 우리나라 공연장과 영화관이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Quarantine
2010년 10월 8일 at 11:24 오후
역시 뮤지컬은 젊은 여성들의 ticket power가 쎄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