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세미나를 위해 간만에 책을 하나 완독했다. 지난 가을부터 사놓고 미뤄왔던<선제공격>. 최연소 하버드 로스쿨 교수이자마이크 타이슨, OJ 심슨 등을 변호하면서 높은 승률로 유명한 앨런 더쇼비츠의 책이다. 친인권적인 기존 성향과 달리 미국의 공격적 대외정책을 옹호해진보적인 언론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예상(?)보다 중립적이다. 완전히 아카데믹한 책은 아니지만, 비교적 충실하게 예방적 선제공격의 국제법적 근거와 역사적 실례를 조사해 설명했다. 이 책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그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실패’였음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법학자답게 정당방위의 여러 전제조건을 응용해서 국가의 선제공격의 정당화 기준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가 결론적으로 제시한 것은 위협의 심각성, 타당한 목적, 최후 수단성, 수단과 결과의 균형성 등이다.
이 책의 세세한 내용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이미 많이 제시되었으므로 생략한다. 다만 책을 읽는 내내 안고 간 질문은 하나였다. 선제공격에 대한 정치학과 법학의 판단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왜냐 하면 정치는 보다 현실적이고, 사전적인 반면 법은 상대적으로 규범적이고, 사후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제정치학에는 더쇼비츠가 이야기하는 선제공격과 유사한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라는 개념이 있다. 주변에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을 다루는 방법으로서 편승(free riding), 봉쇄(containment), 균형(balancing), 양다리(hedging) 등과 함께 제시된다. 가능하다면 일찌감치 불안의 싹을 잘라버리는 정책을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 책에서이미 다양하게 소개된 이스라엘. 애틀란틱 먼슬리 2010년 10월호(위의 사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곧 이란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왜? 이는 이스라엘의 호전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선제 타격이 사후의 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고, 경험적으로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방적 선제공격은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지만, 이스라엘의 정치가, 정책 결정자로서는 보다 유연하게 고려할 수 있고, 고려해야만 하는 옵션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법이 아닌 정치의 영역은 선과 악, 정당과 부당의 선을 긋기가 매우 어렵다. 위의 사안에서도 이스라엘과 이란의 입장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평화를 존중했고, 국제법을 준수했던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오늘날까지도 히틀러를 방치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법과 달리 정치는 다분히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혹은 부당화한다. 최근 우리나라 청해부대의 해적 소탕 역시 성공했기에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지 만일 대량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면 군 수뇌부와 청와대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테러 용의자가 있을 때, 그가 테러에 연루될 혹은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하는 게 타당한가? 미국의 애국법을 놓고 벌어진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다. 이미 발생한 범죄가 아니라 발생 가능성만으로 이뤄지는 처벌이 타당하느냐의 문제였다. 비록 그 공익이 크다고 해도 개인의 인권, 특히 신체의 자유가 엄청나게 억압받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정치와 법의 입장은 갈라질 수밖에 없다. 정치, 정책결정자는 만일의 사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면 일단 테러 용의자를 가둬놓는 게 여러가지로 안전하다. 하지만 법학 전공자는 다르다. 지은 죄가 없는데 단지 잠재적 가능성만으로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대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서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지난해 한국에서만 70만부의 판매를 기록한 마이클 샌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도 연결된다. 다수를 위해서(공리주의) 혹은 공동체를 위해서(공동체주의) 소수 혹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지난주 얘기했던 고등학생들은 그러한 조치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그 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개인의 권리가 지나치게 침해되었다면 국가가 사후적으로 보상해준다는 전제 하에. 과연 이들은 국가의 동량인가 아니면 계몽 대상일까.
간만에 기대된다. 국제정치학 전공자들과의 토론이. 그리고 법학을 1년 남짓 더 공부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졸업생 세미나를 위해 간만에 책을 하나 완독했다. 지난 가을부터 사놓고 미뤄왔던<선제공격>. 최연소 하버드 로스쿨 교수이자마이크 타이슨, OJ 심슨 등을 변호하면서 높은 승률로 유명한 앨런 더쇼비츠의 책이다. 친인권적인 기존 성향과 달리 미국의 공격적 대외정책을 옹호해진보적인 언론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예상(?)보다 중립적이다. 완전히 아카데믹한 책은 아니지만, 비교적 충실하게 예방적 선제공격의 국제법적 근거와 역사적 실례를 조사해 설명했다. 이 책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그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실패’였음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법학자답게 정당방위의 여러 전제조건을 응용해서 국가의 선제공격의 정당화 기준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가 결론적으로 제시한 것은 위협의 심각성, 타당한 목적, 최후 수단성, 수단과 결과의 균형성 등이다.
이 책의 세세한 내용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이미 많이 제시되었으므로 생략한다. 다만 책을 읽는 내내 안고 간 질문은 하나였다. 선제공격에 대한 정치학과 법학의 판단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왜냐 하면 정치는 보다 현실적이고, 사전적인 반면 법은 상대적으로 규범적이고, 사후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제정치학에는 더쇼비츠가 이야기하는 선제공격과 유사한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라는 개념이 있다. 주변에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을 다루는 방법으로서 편승(free riding), 봉쇄(containment), 균형(balancing), 양다리(hedging) 등과 함께 제시된다. 가능하다면 일찌감치 불안의 싹을 잘라버리는 정책을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 책에서이미 다양하게 소개된 이스라엘. 애틀란틱 먼슬리 2010년 10월호(위의 사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곧 이란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왜? 이는 이스라엘의 호전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선제 타격이 사후의 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고, 경험적으로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방적 선제공격은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지만, 이스라엘의 정치가, 정책 결정자로서는 보다 유연하게 고려할 수 있고, 고려해야만 하는 옵션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법이 아닌 정치의 영역은 선과 악, 정당과 부당의 선을 긋기가 매우 어렵다. 위의 사안에서도 이스라엘과 이란의 입장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평화를 존중했고, 국제법을 준수했던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오늘날까지도 히틀러를 방치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법과 달리 정치는 다분히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혹은 부당화한다. 최근 우리나라 청해부대의 해적 소탕 역시 성공했기에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지 만일 대량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면 군 수뇌부와 청와대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테러 용의자가 있을 때, 그가 테러에 연루될 혹은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하는 게 타당한가? 미국의 애국법을 놓고 벌어진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다. 이미 발생한 범죄가 아니라 발생 가능성만으로 이뤄지는 처벌이 타당하느냐의 문제였다. 비록 그 공익이 크다고 해도 개인의 인권, 특히 신체의 자유가 엄청나게 억압받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정치와 법의 입장은 갈라질 수밖에 없다. 정치, 정책결정자는 만일의 사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면 일단 테러 용의자를 가둬놓는 게 여러가지로 안전하다. 하지만 법학 전공자는 다르다. 지은 죄가 없는데 단지 잠재적 가능성만으로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대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서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지난해 한국에서만 70만부의 판매를 기록한 마이클 샌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도 연결된다. 다수를 위해서(공리주의) 혹은 공동체를 위해서(공동체주의) 소수 혹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지난주 얘기했던 고등학생들은 그러한 조치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그 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개인의 권리가 지나치게 침해되었다면 국가가 사후적으로 보상해준다는 전제 하에. 과연 이들은 국가의 동량인가 아니면 계몽 대상일까.
간만에 기대된다. 국제정치학 전공자들과의 토론이. 그리고 법학을 1년 남짓 더 공부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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