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의 은고가 헤르미온느로 남아야 하는 이유

최근 뜻하지 않게 고정적으로 보는 드라마가 모두 사극이다. 월화는 M의 ‘계백’, 수목은 K2의 ‘공주의 남자’,주말은 K1의 ‘광개토대왕’. 워낙 사극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한주 내내 타임머신을타는 건 처음인 듯.특히 ‘계백’은 정말 오랜만에 고정적으로 보는 M의 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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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의 사극이 단선적인 캐릭터의 줄거리 중심이라면, M의 사극은 복합적인 성격의 에피소드 중심이다. ‘계백’은 M만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대본의 완성도만을 놓고 본다면, 요즘 방영 중인사극 가운데 으뜸인 것 같다. 물론 초반 황산벌 계백의 대사는 정말 아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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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주인공 남녀의 관계가 영화 ‘해리포터’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의자, 은고, 계백의 관계와 행동은 마치 해리, 헤르미온느, 론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보통 남녀 주인공이 연정으로 얽히기 마련인데, ‘계백’은 해리포터와 같이 예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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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드라마 초반을 아역들이 주도한 면도 없지 않다. 물론 사택비(오연수)와 무진(차인표)가 중심을 잡았지만, 여느 사극처럼 아역배우들은 기대 이상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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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선전은 당연히 영화 ‘해리포터’를 연상시켰다. 귀엽고 깜찍한 세 아역 배우가 없었다면, 또 이들이 무난하게 성장해주지 못했다면 영화 ‘해리포터’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저 원작의 아류로 그쳤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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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미난 것은 은고와 헤르미온느의 일치된 역할, 즉 삼총사의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을 타고났지만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뇌하는 의자와 해리, 올곧지만 감성적인 계백과 론까지. 주인공 셋은 정확하게 몫을 나눠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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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드라마가 전개될 수록 위기의 조짐이 보인다. 계백이 ‘머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주인공이니까 분량도 늘어나고, 조금 더 그럴 듯 하게 그리기 위해서 불가피한 변화인 듯도 하다. 하지만 ‘몸’이 아닌 ‘머리’를 쓰는 계백은 낯설고, 공감하기도 어렵다. 무술교육도 받지 않은 그가 최고의 ‘생구’인 것도 모자라 글자도 모를 텐데 ‘감’이라는 이름으로 계책까지 구사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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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계백의 ‘슈퍼맨화’가 계속된다면 K1의 ‘광개토대왕’이 범하고 있는 오류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다. ‘광개토대왕’의 담덕(이태곤)은 무술도 최강이고, 머리 쓰는 것도 상대할 자가 없는 캐릭터로 나온다. 60~70년대라며 모를까, 아무리 사극이라도 그런 캐릭터는 호응받지 어렵다. ‘태왕사신기’의 담덕(배용준)처럼 세련미가 있거나 ‘근초고왕’의 부여구(감우성)처럼 빈틈이 있어야 인간답다. 무공에 이어 지략까지 100인 주인공은 다른 주조연들을 세트로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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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의자. 비록 역사가 패자인 의자에게 가혹했다고 해도 망국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를 어떻게 변호할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의자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또 그 배우가 조재현이기에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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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선전하고 있는 오연수도 주목거리. 많은 이들은 ‘선덕여왕’의 미실과 비교하던데… 고현정이 미실을 잘 연기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인지, 오연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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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는 사극의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해주고 빠지는 중견배우의 역할을완수했다.불과 20년 전 신인배우였던 그가 이제 맡는 역할을 보니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고는 한다.아들에게 칼 피하는 법 외에 대사 치는것도 좀 가르쳐주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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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계백’은 그럴 수 없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더욱 ‘과정’과 ‘캐릭터’에 집중하게 된다. 계속 은고가 헤르미온느로 남기를,의자는 어서 해리스러워지기를, 그리고 계백은 론처럼 머리를 쓰지 않기를. 똑똑하고 지적인 주인공만이 매력적이라는 것도 고정관념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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