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유정,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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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정유정 작가의 <28>을 읽었다. 마침 오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터라 몰입도가 더 높았던 듯. 흡인력이 높은 작품인 것은 틀림없지만, 글쎄… 몇 가지 걸리는 부분도 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으니 앞으로 보실 분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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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목의 의미. 주인공이 사건 발생 28일만에 죽기 때문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확인하기 전까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한동안의 유행처럼 day by day 구성도 아니고, 끊임없이 회상이 나오기 때문에 시간 감각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지나친 불친절이다.

또 전염성과 치사율이 역대 최강인 ‘빨간 눈’ 바이러스에 주조연들은 왜 걸리지 않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수의사, 기자, 간호사, 구조대장, 형사, 사이코 패스 여섯은 가히 ‘불사조’.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간염처럼 항체가 있을 수 있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괴질이 너무 무시무시하다. 아무리 의학 스릴러가 아니어도 최소한의 ‘상식적인 설명’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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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동물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사람을 지나치게 쉽게 죽인다. 수의사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고됐지만 과연 간호사 역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사이코패스가 만난 사람들도 반드시 죽어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작가가 데뷔 때부터 지켜온 스타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러면서 ‘생명’을 운운하는 게 불편하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염두에 둔 듯한 장면 전환도 편하지만은 않다. 매체 인터뷰에서는 개를 포함한 3인칭 멀티 시점이 화제인 듯 한데, 사실 그런 시도는 90년대부터 종종 있었다, 영화화에 성공한 원작들에 주로.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서는 마이클 크라이튼과 존 그리샴이 대표적. 마치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속도감이 그 작품들의 인기 비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작가가 그려주는 대로 따라가려면 굳이 문학 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영상물을 보지… 텍스트 너머의 그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려볼 기회를 잃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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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한국 소설을 거의 보지 않았다. 이문구, 박완서, 황석영, 이문열 등에게 익숙했던 내게 소위 은희경, 신경숙류는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접한 정유정의 작품은 그들과는 또다른 카테고리이지만, 90년대를 풍미했던 해외 작품들의 한국 버전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읽어가는 서너 시간은 충분히 즐거웠지만, 단지 거기까지. 아마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웃브레이크>, <비상계엄>, <연가시>가 적절히 섞이지 않을런지 ^^


p.s.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 <감기>를 보면 조금 더 몰입된다고 하던데… 설날 TV에서 해주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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