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현실주의의 부활?: <정도전>의 이인임
<정도전>이 계속 상승세이다. 분석은 다양하지만, 간만에 ‘낯익은’ 등장 인물 때문인 것도 크다. <천추태후> 이후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대왕의 꿈> 등으로 낯선 삼국시대를 헤매다가 익숙한 고려-조선 교체기로 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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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테랑 배우들의 호연 속에 이인임역의 박영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연기력도 출중하지만, 그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정치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귀에 꽂힌다. 마치 마키아벨리의 잠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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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인임의 매력은 대사가 아니라 1,2회에서의 권모술수였다. 공민왕이 자신을 숙청하려하자 왕의 후궁과 불륜 관계인 호위대장 홍륜에게 정보를 흘려 공민왕을 시해하게 하고, 자신은 그 홍륜을 제거해 공신이 된다. 개인의 심리와 행동 양식, 정치적 판세를 꿰뚫어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신의 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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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사가 들리기 시작한 건 최영을 설득하는 과정. 신진사대부가 원과의 화친을 반대하자 이인임은 중국 대륙이 명과 북원으로 분열돼야 고려에 유리하다는 논리로 최영을 끌어들인다. 이른바 ‘균세’의 기본을 지적한 것이다. 물론 이후 명청 교체기에서 드러나듯 주변 강대국의 분열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명분’이 아닌 ‘실리’에 입각한 주장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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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인임은 한 회에 한두 번 꼴로 명언을 들려준다. "의혹은 감당할 수 있을 때 제기하는 것", "칼은 칼집이 아닌 웃음 속에 감추는 것" 등. 조금은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완벽한 대구를 이루기는 하지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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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갓인임’이라는 표현을 얻을 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힘 없는 자의 용기만큼 공헌한 것도 없다. 세상을 바꾸려거든 힘부터 길러라. 고작 당신 정도가 떼를 써 바뀔 세상이면 난세라고 부르지도 않았다"는 초반 기선 제압으로 충분. 오히려 정도전보다 앞서 확실히 캐릭터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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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대사는 지난 회에서 이성계와의 논쟁. 구휼미를 풀어 백성을 돕자는 말에 "더 이상의 공짜쌀은 없다. (구휼미는)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백성들이 궁만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공짜도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고 반박한다. 최영마저 ‘일기가 있다’고 이성계를 다독일 만큼 촌철살인. ‘의무와 책임’에서 ‘권리와 권한’의 시대적 이행기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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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인임이 최영에게 이성계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은 문제의식을 던진다. "나와 대감에게 고려는 태어날 때부터 숙명이지만, 이성계는 스무살이 되어 선택한 수단일 뿐"이라고. 이성계의 역성혁명 원인에 대해 또다른 앵글을 제공해준다. 기존의 신진사대부와 권문세족의 대립, 원명에 대한 정체성 등 구조적 접근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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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임의 극중 생명이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다. 예고편에 이방원의 등장한 만큼 끝이 보이는 셈이다. 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역할을 기대 이상 해냈다. 당위와 규범이 절대선인 것처럼 논의되는 오늘날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적나라한 현실주의자로서.

1 Comment

  1. 신실한 마음

    2014년 2월 13일 at 7:58 오전

    전에 거가 조불에 올렸던 인물입니다. 극 중의 윤영규의 연기가 가히 신들린 듯 합니다.이 극을 생기 있게 만드는 살아있는 권력입니다. 정말 출중한 연기입니다. 아마 내가 기억한 윤영규의 최상의 연기인 것 같습니다. 곧 이성계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낙향을 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불우한 노년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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