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안현수 신드롬’은 자기–타자의 분석틀로 접근하는 게 타당하다.대다수 사람들은‘자기화’된 개인에게 우호적이고, ‘타자화’된 경우에는 적대적·배타적이다.즉 자신과 정체성이 일치하는 대상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따라서 보통 가족·친구·동료에서 동향·동족(同族)까지는‘자기화’되고 인종·국적·출신 성분 등이 다르면‘타자화’된다.외국 여행 중에 만나는,혹은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자국민이나 선수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따르면‘안현수’와‘빅토르 안’은 현재 대한민국 국민에게 철저하게‘자기화’되어 있다.러시아 귀화 이전의‘안현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그 이후의‘빅토르 안’은 대한민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한 인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것처럼 충분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안현수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그런 현실에 좌절한 스스로와는 달리 국적을 바꿔 극복한 빅토르 안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는 셈이다.과거 국적을 바꾸면‘매국노’가 될 수밖에 없던 무제한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변화의 조짐을 보인 점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이러한 움직임에는 자기모순도 발견된다. 특히‘불공정한’대한민국과 그 하수인격이 된 빙상연맹은 안현수를 버리기도 했지만,그를 발탁하기도 했다.즉 안현수가 한국의 국가대표일 때에는 대한민국과 빙상연맹은 정의롭다가, 그를 떨어뜨림으로서 부정한 세력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요컨대 변한 것은 대한민국이나 빙상연맹이 아니라 사람들의 그에 대한‘인식’일 뿐이다.안현수가 승승장구할 때 빙상연맹을 비난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이들 대부분은 좋은 시절(epoque belle)에는‘자기화’했던 국가와 집단을 스스로의 상황이 바뀜에 따라‘타자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빅토르 안 신드롬’의 진정한 함의는 무궁무진하리라 믿었던 집단적‘애국심’에 심각한 균열이 감지된다는데 있다.국가가 개인에 비해 우선이 아님은 물론 더 이상‘태어나는 곳’이 아니라‘선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내게 이익이 된다면 모국을 버리고 타국을 택함은 물론 모국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이 대중적으로 자리잡은 셈이다.마치19세기 병인박해 직후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함대의 길잡이로 자원했던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처럼 자신의 종교적 자유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이적행위도 불사하는 일이 다시 일어날 여지가 크다.
결과적으로‘안현수’와‘빅토르 안’에 대한 한국 대중의 동등한 자기화는 국가가 더 이상 게마인샤프트가 아닌 게젤샤프트임을 상기시켜주었다.이는 사회계약설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동시에 국가의 본분이 그 구성원의 만족과 행복임을 일깨워준다. ‘빅토르 안’을‘안현수’만큼 혹은 그보다 더 응원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분명 위기이고,과거처럼 민족주의와 애국심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지향적인 처방이 될 수 없을 것이다.
SKS
2014년 2월 18일 at 5:44 오후
민족지상주의는 일종의 마약이다. 현실적으로 왜소한 집단이 스스로 자위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환상이다.
지겨운한국인
2014년 2월 19일 at 12:39 오전
빅토르 안.. 멋진 선수다. 다만 그의 애비는 전혀 안멋진 궁상이더라..안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