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의 본질과 관료제

김연아는 꼭 ‘청룡장’을 받아야 하는 걸까? 한 단계 아래인 ‘맹호장’은 김연아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가?

최근 김연아의 훈장 논란을 보면서 문득 ‘공직자윤리법’이 떠올랐다. 청문회 때마다 공직자의 재산형성 과정이 문제가 되면서 아예 주식백지신탁제도를 명문화한 법. 권력-명예를 가졌다면 부는 포기하라는 것이다.

훈장은 셋 중에 ‘명예’에 가깝다. 연금이 얼마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김연아가 그 돈이 아쉽지는 않겠지? 이미 상당한 부를 얻었다, 아마추어 선수로서는 전례가 없을 만큼. 비록 공직자는 아니지만, 왜 김연아는 최고의 부에 이어 명예까지 가져야 마땅할까?

이번이 아니면 ‘청룡장’을 영원히 받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선수와 코치 생활을 합쳐 15년 이상이 되면 기회가 있다. 물론 김연아의 진로는 오로지 그녀 몫이니까 미지수이지만, "훈장 타려면 선수생활 계속하라"는 건 아니다.

샌덜의 정의론에 따르면 본질적인 미덕에 대한 포상이 정의롭다. 그럼 훈장은 어떤 미덕에 대한 포상인가? 만일 ‘인기’라면 김연아는 청룡장을 서너개는 받고도 남는다.

하지만 ‘성취’나 ‘공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다른 종목과 선수, 대표적으로 같은 빙상의 이상화, 박승희와의 형평성이 고려돼야 하고, 그래서 만든 게 포인트 시스템이다. 즉 ‘성취도’와 ‘공헌도’를 조작정의해서 객관화한 지표가 포인트인 셈.

김연아는 두 선수에 비해 대회 출전이 적었다. 그래서 ‘성취’의 횟수가 줄었고, 포인트가 낮다. 그렇다면 김연아의 성취와 공헌은 둘에 비해 낮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기준점수에 미달된다면 거기에 맞는 훈장을 수여하는 게 정의롭다, 예외 규정을 동원할 게 아니라.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라지만, 2010년에 결정돼 2014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면 경과기간으로서는 충분했다.

이번에도 언론과 대중은 관료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근대 합리적 지배의 핵심은 관료제이다. 원시적 카리스마, 전근대적 권위에 의한 지배에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서구가 발명한 게 관료 시스템이다. 개인 역량에 따라 좌우되는 ‘인치’에서 벗어나 최선은 아니어도 공동체의 합의는 따라간다는 ‘법치’와 맞닿아 있다. 규정, 매뉴얼대로만 한다고 답답해하지만, 그나마가 어이없는 재량과 융통성보다 낫다는 발상.

김연아 때문에 발동된 예외는 이제 또 누군가를 위해 발동될지 모른다. 어쩌면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게 군 면제가 허용된 것 만큼 중요한 전례로 남을 것이다. 정무적인 감각이 있었다면 전체적으로 보류하면 어땠을까? 이상화, 박승희는 천천히 받아도 되고, 김연아의 가능성도 열어 놓고. 나 역시 김연아의 팬이지만 지금 그녀에게 꼭 훈장이 필요하지도 않고, 원할 것 같지도 않으니까.

8 Comments

  1. D. Kim

    2014년 3월 23일 at 4:38 오전

    다음 링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3201717541&code=940100   

  2. 개옷나무

    2014년 3월 23일 at 12:35 오후

    역시 너답구나. 문제가 없지않은건 아니지만. 국민의 정서가 그렇게 작용한건 아니었을까?
    나는 네가 정의를 운운 한다면 연아의 훈장에앞서.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받은것에 먼저 항의했음이 옳다고 본다. 이상화가 후배들을 향해. 금메달이 아니어도..라고할때,   

  3. 개옷나무

    2014년 3월 23일 at 12:44 오후

    저의가 의심되드니 김여진, 이제 생각하니 너와 이상화가 동향이구나 싶다.
    에밀리 브론테가 말 햇든가..’편견은 교양이란 이름으로 한번도 경작된적이 없는 황무지에 자라난 잡초와 같다.’라고. 어차피 우리는 모순속에서 살고있음을 망각하지 마시길.    

  4. 심현종

    2014년 3월 23일 at 9:42 오후

    그리고 훈포장의 수여기준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하기 위해서 ‘포인트 제도’를 둔 것은 그간 쌓여온 고민들에 대한 결과물인 겁니다. 그래서 일견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제도는 역시 아닙니다. 하나 여쭙지요. ‘성취’를 횟수로만 보는게 타당할까요? ‘성취의 질’도 고려하는게 옳을까요? 아마 양쪽 모두 고려하는게 합리적일 겁니다.    

  5. 심현종

    2014년 3월 23일 at 9:42 오후

    ‘김연아의 팬’이라 하시니 하나 여쭙지요. 우선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셔야 할 듯합니다. 김연아가 ‘나는 청룡장을 원한다’한 적이 없으니 제목은 우선 사실과는 무관합니다. 첫번째 오류지요. 두번째는 ‘성취의 횟수’가 적었다. 일부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과 연계해야만 하지요. ‘단체전 출전 포인트 문제’인 겁니다. 5명이 출전해 받는 금메달을 1인출전 경기와 ‘같은 포인트’로 받는게 타당할까?하는 문제인겁니다.    

  6. 심현종

    2014년 3월 23일 at 9:50 오후

    그동안 유럽,미국, 러시아, 일본 같은 강대국들의 전유물이던 여자피겨 스케이팅에서 유래가 없는 독보적인 실력으로 그 종목을 석권한 선수가 김연아입니다. 청룡장 수상이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까요? 흔히 김연아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본질과는 다르게 진행이 되곤 했지요. 그래서 팬들이 안타까워했던 겁니다. 흔한 표현으로 ‘설레발’이었기 때문입니다. 훈장의 본질과 관료제를 언급하시기에 적절한 사례는 아니지 싶어 몇자 적습니다.    

  7. 여강

    2014년 3월 24일 at 1:52 오전

    객관적 기준으로 도입한 점수제는 공정하고 완전한 룰이 아닙니다. 김연아는 피겨 불모지 한국에서 외로이 노력하여 전 세계를 제패한 최고의 영웅입니다. 소숫점 차이로 우열을 가리는 곳에서 깨지지 않을 23점대 차이로 쾌거를 이뤘지요. 그녀가 국민에게 준 기쁨은 청룡장 10개를 줘도 안 아깝습니다. 박세리도 올림픽이 아니지만 국민에게 준 기쁨과 희망을 감안해서 훈장을 수여했지요. 이 참에 박태환도 줘야 합니다. 어디나 시기와 심술은 있다지만 참 어이없는 귀하의 생각에 혀를 찹니다.    

  8. 조이정민

    2014년 3월 25일 at 12:58 오전

    민심은 천심 이라는 말이 있죠.
    김연아의 업적은 아무나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나경원이 맡은 장애인 올림픽 준비위원장 자리는 많은 유능한 사람들 중 한 명에게 맡겨도 해낼 수 있는 역할이죠. 안 받을 사람이 받고,받을 사람은 못 받고 한다면 용의주도 하지못한 기준을 기준이랍시고 잘 못 만든 결과이니 반성하고 좀더 개선된 기준을 새로 만들어 야죠. 통계학 원서의 머릿말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거짓말 위에 새빨간 거짓말이 있고 그위에 통계가 있다" 엉터리 기준 땜에 받을 사람이 못 받고,명분이 없는 사람이 청룡장을 받았다는
    민심이 국민들 뇌리에 새겨졌을 듯 싶네요.민심은 천심이라 했거늘 새눌당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네요.—우수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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