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지명자와 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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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크리스천 후배가 있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도 꿋꿋이 살아온 훌륭한 친구. 어느 날 물어봤다, 온 식구가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다녔는데 아버지조차 천수를 못 누린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런 교회 왜 계속 다니느냐고… 그 친구 답은 단순했다. 하느님의 뜻이고,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일찍 데려가셨다고. 진짜 (속으로) 생각했다, “미쳤구나.” 원래 생각도 없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게 됐다.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교회 강연이 어제, 오늘 이슈가 됐다.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다수. 기독교와 교회를 싫어하는 나로서도 그의 ‘초자연적’ 역사 이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여론재판을 받아야할 사유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문 지명자의 발언은 ‘교회’라는 공간에서 이뤄졌다, 총리실 보도 자료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회’가 어떤 곳인가? 신도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행들이 당연히 통용되는 ‘초자연적’ 공간이다. 신앙이 없는 난 가끔 목사들의 설교나 간증, 찬양 등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다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더 신기한 건 학자, 의사, 변호사 등 배울 만큼 배운 멀쩡한 사람들이 거기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KBS가 보도한 것은 그런 공간과 청중을 상대로 이뤄진 지극히 종교적인 강연이었다.

아울러 ‘하느님의 뜻’이라는 게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에서 짐작 가능하다. 일종의 ‘운명’이라는 뜻. 또 여기에는 개신교 특유의 ‘원죄 의식’이 결합되어 있다. 즉 개인이 겪는 시련과 고난은 가해자나 구조적 모순 탓이 아니라 하느님이 부여하는 시험이고, 금욕과 인내로 극복해야만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칼뱅주의가 합쳐진 셈이다. 나라를 잃은 것은 일본이 아닌 우리의 무능 때문이고,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가 그런 무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느님이 준 시련이라고 이해하는 것. 이는 親日이나 자기비하라기보다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피학 사관이다. 그래서 니체가 신을 죽이자고 한 게 아닌가, 세상 사람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어서 교회가 통제하니까.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서도 문창극 지명자의 발언은 일리가 없지 않다. <윤치호 일기>를 읽어보았다면 누구나 그의 영어 실력에 놀라게 된다.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그 정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문 지명자가 칭찬한 것은 윤치호의 영어 실력과 기독교 정신이지 친일이 아니다. 친일파에 대해서는 어떤 찬사도 하지 말라는 건가?

해방과 분단도 마찬가지.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하해서는 곤란하지만, 그 덕분에 해방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해방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배했기 때문이지, 우리 임시정부가 해낸 게 아니다. 분단은 불행이지만, 분단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미국이 아닌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당시 국내정세도 사회-공산주의 계열이 주도했다는 건 기지의 사실이다. 그래도 분단이 없는 편이 나았다고 주장하겠다면, 그 반대의 생각도 인정해야 한다.

서울대 강의 시간 중에 했다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로 사과할 필요 없다는 발언도 근거는 있다.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는 ‘전략적 레버리지’로 쓰는 게 최선이다. 사실상 일본이 무라야마 담화 이상의 사과를 할 가능성도 없고, 한일 협정으로 청구권 협상도 법적으로는 마무리되었으며, 독도나 과거사 이슈는 한일 국민 사이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과거사 문제에서 벗어나자고만 하면 반민족‧친일이라고 몰아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반론으로 종종 제기되는 이야기다.

20세기를 전후로 한국 민족주의는 불과 얼음의 측면이 있다. 불처럼 타오른 게 위정척사파와 무장독립투쟁이라면 얼음처럼 파고든 게 문명개화파와 실력양성론이다. 둘 사이에는 대응 양상과 수단의 차이도 있지만, ‘우리’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위정척사파가 ‘우리’를 ‘자기’화하고, 외세 ‘타자’화해 피아 구분을 유지한 반면 문명개화파는 ‘우리’를 타자화하고, 외세를 ‘자기’화해 피아를 전복시켰다. 즉 전자가 ‘우리는 옳고, 저들은 그르다’였다면, 후자는 ‘우리가 뒤떨어졌기 때문에 저들처럼 바뀌어야 산다’는 논리. 그래서 문명개화파에서 민족개조론이 나왔고, 실력양성론자들에게 ‘근대화 프로젝트’에 성공한 일본이 모델일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한국을 지배한 민족주의는 ‘얼음’의 민족주의였다. 전통을 버렸고, 개인을 혹독하게 담금질했다. 그게 개인의 근대화였고, 국가의 발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 엘리트들의 지배와 지대추구가 정당화됐다. 마치 일본의 식민지배가 그랬던 것처럼, 절대 다수의 대중은 개조와 훈육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

그래서 87년 이후 재등장한 ‘불’의 민족주의는 한층 뜨겁고 거리낌이 없다. 반일이 아니면 친일이고, 차가운 민족주의는 반민족적이며, 대중과 민중은 피해자인 동시에 옳고, 기득권 엘리트는 가해자이며 그르다는 이분법이 확산됐다. 덕분에 발전과 성장의 강조는 구시대적이고, 자유경쟁은 반인권적이며, 낙오와 패배는 개인 책임이 아닌 사회구조나 가진 자의 탐욕 탓이 되었다.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발언 논란은 우리 사회의 역사 전쟁이 아직 한창임을 보여준다. 현 집권층을 친일‧반민족으로 몰아 정통성에 타격을 주려는 체제변화 세력,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동안 흔들린 패러다임을 회복‧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의 전투가 또 한번 시작된 셈이다. 다만 그 전선이 정치인도 아닌 언론인이 교회에서 한 강연과 대학 강의라는 점은 좀 아닌 것 같다. 언론인과 교수는 어느 사회에서나 제일 말을 막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직군이라는 면에서…

다만 문 지명자의 낙마에는 동의한다. 총리 지명된 이후 “책임총리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무신경하게 말한 것을 보니 정무적 감각은 전혀 없는 듯. 총리가 되어도 수많은 설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쯤에서 멈추는 게 애국인 것 같다.

10 Comments

  1. 김영훈

    2014년 6월 12일 at 10:27 오전

    문 내정자 낙마? 왜? 정무 감각이 없어서? 불신자로서의 님의 본문은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많이 이해하려한 내용은 공감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은 역사관은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의 낳고,죽는 것은 창조주의 뜻이다. 이것이 유대인(이스라엘) 의 역사이고, 기독교가 여기에서 배태된 것쯤은 아시리라 믿는다. 그것은 인도의 정신적 지주인마하트마 간디가 역사는 진리라는 유명한 명언 가운데 한 일부이다.
    문내정자, 지금의 쓰레기 같은 국해의원들의 무지,무식, 편협하고, 애국심이라곤 눈뜨고도 찾을 수 없는 종자들이 개거품 물고 찌꺼리는 악다귀에 일부 편성된 내용엔 절대 공감할 수 없다.   

  2. 김영훈

    2014년 6월 12일 at 10:35 오전

    박대통령께서는 끝까지 믿음을 주셨으면,… 하고 바랄뿐입니다.
    문내정자, 지금까지 내정되고, 총리로 자리한 분들 가운데 가장 적임자이며, 훌륭한 국가관을 가지신 것 같다. 헌법도 국가의 존재하에서 가치관, 한 나라에서 국가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역사관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다.   

  3. 노익장

    2014년 6월 12일 at 10:39 오전

    스스로의 지위와 때와 장소와 상대방에 따라 그 처신이 다르고 소신이 변하는 놈이다~~그냥 총리 후보자로 청문에 나서라 우리들의 잘못되고 못난 상식이 문제인지 소위 배웠다는 그놈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들이 문제인지 한번 가려봐야 겠다
       

  4. 김명구

    2014년 6월 12일 at 11:05 오후

    김어진님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 합니다   

  5. 신신리딩

    2014년 6월 13일 at 12:52 오전

    주제는 국가를 위한 기도 제목입니다. 국가를 위해 기도 하라고 댄 예가 앞부분의 예인데 솔직히 물질만능주의에 입각한 예를 들어서 문제가 있는데다가 그 예가 식민지를 정당화 하는 내용입니다. 가난한 국가는 하나님이 인정하여 식민지화 되는게 정당 하다는 논리입니다. 과연 그러한가요? 더구나 위안부 문제는 전시에 여자를 동원하여 위안부를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할머니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돈으로 해결할려 말고 진실을 밣히고 사과 하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돈으로 하겠다는 주장이고 그래서 아직 미해결인 문제를 이제 잘살고 있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납득이 안됩니다.   

  6. name

    2014년 6월 13일 at 1:30 오전

    <주일 마다 목사님들 설교시간에 늘 듣던 또 그런 소리군!> "하나님의 뜻"
    기독교인들만 알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 분이 교회가 아니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거다.
    교회에서는 그런 말을 누구나 하는 말이다.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마인드를 깔고서.   

  7. 조정훈

    2014년 6월 13일 at 2:09 오전

    이분에게는 625남침도 하느님의 뜻이고 우리가 게을러서 주는 시련이셨을 겁니다. 하느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는데 북괴도 사랑 하시고요. 사랑하시는 만큼 많이 퍼주시면 좋겠고 오른뺨을 맞으시면 왼뺨도 대 주시기 바랍니다.   

  8. HOW큰마음

    2014년 6월 13일 at 3:46 오전

    김어진씨 정무적 감각이 없어서가 국무총리 낙마의 이유라니? 내가 보기에 당신은 기독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문제점도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중간자적 입장에서 이해는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력이 부족해서 정확한 판단력은 떨어지는 듯 보이오.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정치에서 파생된거요. 정직하지 못한 탐욕스런 정치인들이 거짓과 위선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국민이 지역,이념으로 나뉘어 졌고, 이젠 종교까지 끌어와서 이간질 시키려는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오. 지금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 있오. 야당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된 거짓세력이고, 여당은 기회주의자들이라서 선거에서 질까봐 잘못인줄 알면서도 하나씩 양보해서 이제 대한민국에는 기준과 중심이 없어져 버렸오.
    이래도 정무적 감각을 찾오. 그 정무적감각이라는 것이 틀린 말에도 시끄러울까봐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이라면 그런 정무적 감각은 당신이나 많이 가지시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중심을 잡고 비정상의 사회를 돌파해 나갈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눈치껏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의 모사꾼이 필요한게 아니란 말이오.   

  9. 직격탄

    2014년 6월 13일 at 4:52 오전

    "세상은 넓고 이상한 작자들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속에 우주삼라만상의 비밀이 다 들어있드라도 글로, 입으로 내뱉을때는 신중해야 하는데“`, 각설하고 "세상에는 거짓보다 못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 배우는 "나뭇군과 사슴" 이야기를 아십니까. 사냥꾼에게 쫒기는 부상입은 사슴이 도망간 길을 거짓으로 말하는 나뭇꾼 이야기 말입니다. 진실은 "내가 여기에 숨겨 놓았소"라고 해야합니다만, 우리들은 그것은 참다운 진실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거짓보다도 못한 "독이 든 진실" "거짓된 진실"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집 여섯살 손자놈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문창극이뿐만 아니라 "그게 왜 거짓말이냐"라며 옳은 말이라고 우기는 일부 얼빠진 인간들도 더러 있습니다. 여섯살 손자놈보다도 못한 인간들이 국물총리를 한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대통령조차도 여섯살손자놈 보다 못하단 말인가요? 쓰레기인줄 알았으면 빨리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지요.
    내가 뽑은 대통령인데 참 미치겠네요!   

  10. 한국인

    2014년 6월 13일 at 5:10 오전

    그만 둬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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