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을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유추’하기 위해서이고, 정치학을 배우는 건 ‘레토릭의 이면’을 읽으려는 목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IOC의 평창 올림픽 분산 개최 제안에 대해서 이런 접근은 드문 것 같다. 대체 IOC는 왜 그러는 걸까?
가장 먼저 이번 제안의 배경을 보자. ‘Agenda 2020’이다. 뭔가 나름 있어 보인다. IOC 차원에서는 꽤 신경 쓴 프로포절일 거다, ‘2020’이라 할 정도면 ㅎㅎ 그럼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에 상응하는 게 뭔가 있었나 찾아볼 필요가 있다. 매년 하나씩 내놓는 것이면, 굳이 ‘2020’이라고까지 명명할 리 없으니까 ^^
이것에 짝을 맞추는 건 ‘Agenda 2000’이다. 결국 ‘2020’은 20년만의 작품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센’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다. 명색이 세계 최고의 INGO인데, 20년에 한번 그렇고 그런 내용을 내놓을 수는 없잖은가. 실제로 20년 전의 ‘Agenda 2000’에도 엄청난 발표가 많았다. IOC 선출절차 개편, 개최지 선정절차 변화 등등 ㅋ 결코 이번만 못하지 않다.
또 발표 시기를 봐야 한다. 위원장 토마스 바흐는 지난해 9월 취임했고, 이번 프로포절은 최초의 공식 청사진이다. 응당 ‘힘’이 들어가야 마땅한다. 게다가 전임자인 자크 로게는 사마란치의 후임, 솔트레이크 뇌물 사건 수습 등으로 충분히 주목받았지만, 바흐는 평화적 정권 교체인 만큼 존재감이 없다. 첫 임기인 8년, 연임까지 생각하면 12년을 끌고갈 기선 제압이 필요한 것.
이러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번 프로포절은 다소 부족할 지경이다. 이미 로게가 10여년 전 올림픽 비대화를 막기 위해 개최 종목 수 제한과 출전 자격 강화를 내세웠고, 그에 비해 분산 개최는 파격적이지 못하다. IOC 위원에 선출 조항에 손을 댄 것도 역시 예전과 마찬가지. 오히려 개폐회식을 다른 국가나 도시에서도 가능하게 한 점, 개최도시와의 계약서를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것 등에 매체가 주목했어야 한다.
요컨대 IOC와 바흐 위원장 입장에서 이런 프로포절을 발표하면서 ‘이미 결정된 리우, 평창, 도쿄는 예외’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주변에 분산 개최가 가능한 곳이 없는 리우는 어쩔 수 없더라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경험이 있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평창-도쿄에게 ‘러브콜’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웃으면서 ‘사랑한다. 미안하다’하고 흘려 보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울돌목에 나서는 이순신 형세이니 좀 많이 답답하다. 그러니까 IOC도 이대로 물러날 수만 없게 된 게 아닌가?
IOC의 내부 동학은 현재 알 수 없으니까 이런 피상적인 분석도 부정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최소한 노르웨이 오슬로가 2022 동계 올림픽 유치 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이라는 건 좀… 그건 지난 10월이고, 이 프로포절은 작년부터 준비돼 올해 6월 미팅에서 초안 구상이 끝났으니까. 1차 문서의 날짜만 확인해봐도 그런 기사와 칼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