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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의 ‘황제’ 시진핑

지해범(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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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잡지 ‘타임(TIME)’은 최근호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표지모델로 올리고 ‘시 황제(Emperor Xi)란 제목을 붙였다. 공산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넥타이를 맨 시진핑의 초상화는 중국을 세계의 톱 자리로 끌어올리려는 그의 강인한 의지를 담고 있다.

타임지 동아시아 특파원 겸 중국지국장인 한나 비치는 이 커버스토리에서 “시진핑은 대담하면서도 (발을 땅에 디딘) 현실적 인물로,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다른 어떤 지도자보다 빠르게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의 권력은 전임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인민일보 글을 인용해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이 중국인민을 일어나게 했고,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이 중국 인민을 부유하게 했다면, 시진핑은 중국 인민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지난 6월 “시진핑 주석이 부패척결과 정치통제를 강화해 1인 지배체제를 사실상 완성했다”며 “중국 지식인들은 시 주석 취임 초기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마오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서방의 주요 매체들이 시진핑을 기존의 최고 지도자와는 다른 ‘황제형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는 뭘까. 시진핑은 정말 현대판 황제가 되려는 것일까.

◀시진핑에게 집중된 권력

시진핑은 2년전 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국가 지도자가 된 뒤 2년이란 짧은 기간에 기존의 중국정치 관례를 모두 깨는 파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가 겸직한 직위는 10개에 달하며, 관할 범위는 정치-경제-군사-외교-언론은 물론 사법까지 미치고 있다.

2년전 후진타오로부터 ◀당총서기직과 ◀중앙군사위 주석직, ◀국가주석직을 차례로 이어받은 그는 작년말과 올해 사이 ◀국가안전위원회 주석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조장 ◀중앙외사영도소조 조장 ◀중앙타이완공작영도소조 조장 ◀중앙인터넷안전소조 조장 ◀심화국방군대개혁영도소조 조장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을 맡았다.

이에 따라 국가재정문제나 정부개혁문제는 이제 리커창 총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소조에서 시진핑의 최종 재가를 받아 집행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는 정치-군사-외교는 국가주석이, 경제는 총리가 맡던 관행을 깬 것이다. 게다가 지난 10월말 열린 중앙정법공작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총서기 자격으로 참석해 ‘중요강연’을 함에 따라, 법원-검찰-경찰 등 사법부를 총괄하는 중앙정법위(서기 맹건주)마저 직접 챙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같은 권력집중은 전임자 장쩌민-후진타오의 권력을 훨씬 뛰어넘어, 사인방을 잠재우고 개혁개방을 단행했던 덩샤오핑의 파워에 근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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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전임 지도자들과 뭐가 다르길래

마오쩌둥 시대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치는 10명 이하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국가대사를 합의 결정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마오와 덩샤오핑은 이런 체제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도자들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덩 사후 장쩌민 시대부터는 9인의 상무위원이 내부 회의에서 똑 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9인이 동등한 권력을 누리는, ‘집단 대통령제’ 같은 것이다. 이는 지금의 시진핑 시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시진핑이 전임자들과 달리 막강한 파워를 거머쥐게 된 까닭은 먼저 그의 등장과정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시진핑은 전임자 후진타오와 권력기반부터 달랐다.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된 후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세력기반으로 하지만, 임기 내내 상해방과 태자당의 견제를 떨치지 못했다. 그의 전임자였던 장쩌민은 2002년말 퇴임하면서 후에게 당총서기직과 국가주석직은 물려주면서도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2년간 내주지 않았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의 경구에 따라 장은 권력연장을 위해 군권을 틀어쥐고 군인사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장은 또 자신의 심복인 조우용캉에게 사법기관을 총괄하는 중앙정법위 서기를 맡겨, 후진타오를 견제하게 했다. 후는 조우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처지에 있었다. 장의 ‘상왕(상왕) 행세’가 가능했던 것은 9인의 상무위원 중 자신이 발탁한 인물의 숫자가 많아 표결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가 아무리 자기 의도대로 국정을 운영하려해도 다른 상무위원들이 반대하면 추진할 수가 없는 구조다.

반면 시진핑은 태자당 세력뿐 아니라 장쩌민이 좌장으로 있는 상해방의 지지 위에서 권좌에 올랐기 때문에 정치 기반이 탄탄했다.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던 공청단의 좌장인 후진타오는 리커창을 후계자로 밀었으나 상무위원 숫자에서 밀려 불가능하게 되자, 시진핑에게 당정군 3대 권력을 한꺼번에 물려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장쩌민 같은 ‘상왕’ 노릇으로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시진핑은 후의 결단 덕분에 취임초기부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과 공청단 좌장인 후진타오가 손을 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보시라이 사건’이었다. 후진타오 마지막 임기인 2012년 초 총칭시 당서기였던 보시라이의 심복 왕리쥔 공안국장이 느닷없이 청두의 미 영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신청하는 사건이 터졌다. 왕은 보의 부인 구카이라이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조사하다 보의 견제를 받게 되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미 영사관을 도망갔다. 이 사건 조사 과정에서 보의 비리를 알려줄 결정적 증인의 신변인수 문제를 놓고 조사하는 측(후진타오, 원자바오, 허궈창)과 보시라이 후원세력(조우용캉) 간에 중난하이 외곽에 무력까지 동원하는 충돌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은 실탄 발포 직전 수습되었지만, 이를 통해 보시라이-조우용캉 연합세력이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를 무력화하고, 나아가 차기 지도자 1순위인 시진핑을 밀어내고 보시라이가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는 쿠데타 음모가 드러났다. 만약 그때 후진타오 세력이 조우용캉 세력을 제압하지 못했다면 시진핑 시대는 출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후진타오는 시진핑 등극의 최대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후의 지원까지 업은 시진핑의 권력이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집단지도체제에 한계 느낀 당지도부

중국 최고 지도부는 보시라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공산당 집단지도체제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9인의 상무위원이 국정에 공동책임을 진다는 것은 곳 ‘무책임’도 용납된다는 뜻이다. 또 정치국 상무위원은 모두 당 총서기와 같은 권한을 누리면서 상호견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정법위 서기 조우용캉이 경찰-검찰-법원을 틀어쥐면서 국가주석 이상의 권한을 누리며 엄청난 재산을 축적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공산당 지도부는 1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수를 9명에서 7명으로 줄여 이전보다 의사결집이 용이하도록 했다. 또 상무위원이 맡아오던 정법위 서기직을 정치국원에게 맡겨 정법위의 지위를 격하하고 권한도 축소했다. 이 같은 개혁은 “지도부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적했다.

 

◀원로 막후정치 사라지고 리커창 총리 존재감도 미약해져

보시라이-조우용캉에게 정치적 생명을 위협당한 시진핑은 두 호랑이(고위 권력자)에 대한 비리조사를 단행하면서 ‘반부패’를 정치구호로 삼아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비리특권층에 대한 과감한 숙청을 통해 정부나 관료에 대한 국민의 팽배한 불만이 약화-배출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특히 ‘집단 대통령’의 하나였던 조우용캉 전 상무위원에 대한 비리조사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상무위원은 처벌하지 않는다(형불상상위)’는 그 동안의 묵계까지 깼다.

이는 퇴임한 지도자들 가운데 가족의 부정축재 혐의가 외신에서 거론된 장쩌민, 리펑, 원자바오, 자칭린 같은 전임 지도자들까지도 꼼짝 못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후진타오 시절 자주 공개석상에 등장해 ‘상왕’ 행세를 했던 장쩌민은 시진핑 시절에는 고령으로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이는 곧 중국 현대정치의 특성 중 하나였던 원로들의 막후정치가 크게 약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진핑의 권력집중이 가속화되면서 총리 리커창의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처음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상무위원들의 합의로 시진핑에게 권력을 몰아주었지만, 이제는 그의 막강한 권력과 카리스마 앞에 다른 상무위원, 심지어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리커창조차 도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진핑은 같은 상무위원이지만 ‘상무위원 이상의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서방언론은 그를 ‘중국의 황제’라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카리스마 지도자를 부르는 국내외 상황

올 2월초 시진핑은 러시아TV와의 인터뷰에서 “먹기 좋은 고기는 다 먹어 치웠다. 모두 씹기 힘든딱딱한 뼈만 남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조우용캉을 필두로 하는 ‘석유방’ 등이 권력을 남용해 천문학적 숫자의 재산을 축재한 현상을 비꼰 것이다. 시의 언급대로 중국 당정군의 고위 인사들의 부패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조우의 경우 900억 위안(약15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는 공산당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는데는 총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며, 국가주석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중국 지도부가 판단을 내린 듯하다. 시진핑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하는 것은 국내적으로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상황도 중국에 강력한 리더의 출현을 부르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와 일본 아베 정부의 재무장 및 우경화는 중국의 부상에 강력한 장애물로 등장했다. 전임 후진타오 같은 우유부단한 지도자보다는 강력한 대외정책을 펴나갈 카리스마 있는 리더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특히 군부는 강경한 대외정책과 군비확장정책의 선두에 서있다. 시진핑이 군부대 시찰에서 “언제든지 전쟁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군대가 돼야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중국은 큰 변화의 시점에 있다”며 “이런 시기에는 용기와 목적의식과 지혜를 가진 정치리더를 필요로 한다”며 시진핑의 통치스타일을 옹호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식 민주주의’

시진핑이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응’이라는‘중국의 꿈’을 제시하여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이 7000달러에 육박하면서 국민들은 ‘빵’ 이상의 가치와 보람을 원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런 염원이 ‘민주화 요구’로 분출되지 않도록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적극 조장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은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여 공산당 통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정치 슬로건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지도부는 서방식 민주주의가 갈등과 비효율로 인해 중국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데올로기도 적극 전파하고 있다. 넓은 영토에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직접선거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민족간-지역간 갈등으로 국가가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이것이 지식인층에 먹혀들고 있다. 또 서방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도입했음에도 정치사회 갈등이 끊이지 않아 국가발전이 정체돼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가 훨씬 효과적이란 점을 강조한다. 시진핑은 당대회나 전인대에서 “다른 나라에서 나쁜 경험을 배우지 않을 것이며, 다른 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베끼지도 않을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타임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내부 회의에서 “서양의 7가지 가치와 싸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7가지 가치란 서구 시민사회, 자유시장, 민주주의, 독립된 미디어, 언론자유, 인권, 사법부 독립 등을 말하며, 이러한 가치가 공산당체제를 위협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서방 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닌 중국식 공산당 통치체제의 고도화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서구식 가치의 중국 침투를 막고, 사상도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시진핑 정치의 반개방성과 폐쇄적 속성을 보여준다.

◀시진핑 개인숭배 조짐도 나타나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은 호북성 무한의 수해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시 주석은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리고 왼손에 우산을 든 채로 현장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 이 사진은 올해 ‘중국뉴스사진 최고상’을 수상했다.

또 중국의 우주왕복선에 ‘중국의 꿈’ 음악 CD를 실으면서 CD속에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웬의 노래 ‘희망의 초원에서(재희망적전야상)’ 노래도 넣었다. 담당 부서에서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영부인의 노래를 넣었다고 볼 수 있다. 또 2014 국가 사회과학기금 지원 연구 사업 15건 가운데 시진핑의 강연이나 중국의 꿈, 반부패투쟁 등에 관한 연구가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 시진핑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본인 뜻과 상관없이 아랫 사람들이 알아서 비위를 맞추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리 헨드릭스 전 미 해군장성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 하는 동시에 자신을 중국의 중심에 놓으려 한다. 이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 이후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시가 베이징의 골목길 식당을 찾아 주민들과 어울려 만두를 먹는 모습도 국민에게 ‘친근한 지도자’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고도로 계산된 연출이라고 타임은 지적했다.

◀’황제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은 어디로 가나?

‘현대판 황제’로 등극 중인 시진핑은 중국을 어디로 이끄려는 것일까. 그가 내세운 ‘중국의 꿈’은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오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소강(소강)사회를 건설하고, 신중국 출범 100주년인 2050년까지 부강하면서도 민주적이고 문명적이며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애매한 중국식 용어로 표현된 ‘중국의 꿈’은 쉽게 말해 2050년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21세기 전반기에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의 등장에 따라 지구상에 미-중 양강체제가 등장할 전망이다.

최근 중국 발전속도로 보면 미국 추월 시기는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해 세계 1등국가로 도약하는 것은 시진핑 임기인 2022년 이전인 2018년을 전후로 이루어질 것으로 연구기관들은 예측한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힘의 외교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자국 이익을 실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패권주의’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으면서 ‘친성혜용’ 같은 ‘외교술’로 ‘위험하지 않은 중국’ 이미지를 구축하고, 한국 등을 끌어안는 주변국 외교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적으로 시진핑 시대는 ‘경직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학문과 사상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언론자유를 제한하며, 인터넷에 대한 검열도 강화될 것이다. 홍콩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일당체제를 위협하거나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출현을 금기시하고 있다. 사회통제를 위해 공산당은 지난 10월 열린 18기 4중전회에서 ‘법치강화’를 내세웠다. 이는 권력자의 법의 남용을 막으면서 동시에 비판적인 인사에 대한 탄압도 가능하게 한다. 홍콩 명보는 중국 당국이 기자들에게 기밀준수 서약을 강요하고 대학교수들에게 강의주제를 제한하는 지시를 내린 것을 들며 “법치가 사상규제라는 의식의 법치화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본인이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는 것은 일사분란한 의사결정과 신속한 집행에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성과가 좋지 않거나 집행과정에서 비리나 문제점이 드러나면 시주석의 리더십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공산당의 리더십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경제성장률이 7% 초반대로 떨어지고 소득격차가 확대되며, 환경오염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반부패조사가 진행되자, 부자들 사이에 해외 도피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1인 통치체제는 국민에게 ‘선물’을 안겨주어야 지속된다. ‘현대판 황제’ 시진핑이 국내적으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성장과실의 분배를 통해 사회안정을 이뤄내고, 국제적으로는 미국 등과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할 수 있을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이 글은 주간조선 2332호(2014.11.17~23)에 실린 글입니다./지해범

 

5 Comments

  1. ss

    2014년 11월 27일 at 11:17 오후

    그정도 권력을 가졌는데 탈북자를 북송하고 북한을 지원한다니? 죽일놈 맞지?

  2. 한국인

    2014년 11월 28일 at 10:30 오전

    권력이 집중되면 책임도 커진다는 평범한 진리.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해 주면 된다는 사고.

    배부른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외면하는 중국.
    그것을 국민들이 요구할 가능성은 없나요?

    하기사 중국인들이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많기는 하지만…

    • hbjee

      2014년 11월 28일 at 5:12 오후

      잘 살게 되면, 자유에 대한 요구도 커지겠지만, 가진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강해지겠지요.

  3. 오옥자

    2014년 11월 28일 at 11:48 오전

    어젯밤 부터 오늘 아침까지 조블이 또 먹통이 되어서….

    세계가 아무리 지켜보아도 결국은 자기뜻대로 밀고 가겠지요. 권력이 집중되면
    늘 그렇게 하는게 욕심인가 봐요.
    암튼 우리가 골치아프게 생겼습니다.

    • hbjee

      2014년 11월 28일 at 5:13 오후

      과거와 달라진 점은 중국이 자기 마음대로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는 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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