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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잭마’ 회장의 독특한 인생스토리…

이번주 CBS  ’60분’이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났다.
5만달러의 종자돈으로 시작하여 현재 2천3백억 달러 회사의 주인이 된 중국 최대전자상거래업 잭마(중국명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다. 잭마는 이번달 알리바바를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 했다.
구글을 제외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알리바바의 성장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아래는 미 CBS방송이 이번주 월요일 방영한 ‘알리바바 잭마’의 인생 이야기다.
알리바바의 비지니스 철학, 중국 정부와의 관계, 어릴적 에피소드, 그의 인간적 이야기가 솔직하면서도 꼼꼼하게 담겨 있다. 동영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크립트를 거칠게 번역해 올린다.

잭마 회장과 알리바바의 스토리는 흔하디 흔한 스토리가 아니다.
잭마는 알리바바의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말한다. 우리는 고객을 넘버원, 직원을 넘버투, 그리고 주주는 넘버쓰리로 생각한다. 우리 주식을 사기 싫다면 사지 마라. 주식을 사고 후회되면 다시 우리에게 넘겨라.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주주가 넘버원으로 고려되는 것이 상례다. 그럼에도 단숨에 2백5십억달러 어치의 알리바바 주식이 팔렸다.
주주보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회사가 좋아지고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도 좋다는 것이 잭마의 주장이다.

전자상거래의 공룡, 알리바바의 성공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불과 5,6년전만 해도 알리바바는 이익을 남기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현재 수익은 수백억 달러. 미국의 대표적 인터넷 상거래업체인 아마존, 이베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두 업체를 합해도 알리바바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알리바바엔 현재 5억명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그래봤자 중국인구의 40%,  이들 중 1억명이 매일 온라인 알리바바를 방문하여 물건을 사고 판다.
그러나 잭마는 이제 첫발을 내딛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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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마가 처음 알리바바 사업에 손을 댄 것은 15년 전인 1999년.

당시의 온라인 환경은 지금과는 딴판였다. 가장 인기 있던 검색사이트는 구글이 아닌 야후였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는 등장하기도 훨씬 전이다. 미국 10가구 중 겨우 4가구 정도가 인터넷에 연결될 때다. 월드와이드웹으로 중국 사이트에는 거의 접속도 안되고, 어렵게 접속해도 찾아 볼 만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이다. 중국 외곽 지역에서는 반반한 상점 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을 때였다.
중국 전역에서 포장택배나 신용카드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뭔가를 사려하면 현금으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야하는 상황였다.

잭마가 처음 알리바바 창업을 시작했을 때, 아무도 중국에서 인터넷 상거래가 성공할 것으로 믿지 않았다.
당시 중국사회는 인터넷 상거래를 믿고 돈을 맡길 만큼 신용이나 신뢰적 바탕이 없었다.
이런 불신을 극복하는 것은 잭마의 큰 과제였다. 불신에 젖어 있는 소비자들이 전자거래를 믿고 신뢰하도록 알리바바의 자체 거래시스템을 먼저 만들었다. 물건이 도착할 때까지 지불한 돈에 대해 확실히 보증을 서주는 방법으로 믿음을 주었고 조금씩 불신이 걷히기 시작하더니 하루 3천만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얼굴도 모르고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신용 하나만으로 물건을 사고 판다는 잭마의 아이디어는 중국에서는 가히 혁명적였고 결국 수백만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잭마는 중국인의 영웅이 되었다.

잭마는 중국 남동쪽 경치 좋은 항조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960년대 모택동 문혁시대에 항조우는 매우 가난하고 헐벗은 도시였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그의 고향을 방문했다. 동서냉전의 시대에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그 자체로 천지개벽였다. 그 이후부터 잭마의 고향 항조우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줄을 이었다. 이때 12살 잭마는 어렴풋이 중국 너머의 세계를 처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이름 마윈이 잭마(Jack Ma)라는 영어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때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이 지어줬다.
고향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무료로 안내해주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 또한 바로 이 때 였다,

중국의 다른 성공한 기업인들과 달리 잭마는 미국에서 공부한 일이 아예 없다. 그에게는 지위도 돈도 인맥도 아무 것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교육을 잘 받는 길 밖에 없는데 잭마는 대학진학도 두번이나 낙방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먼저 대학 진학을 말리고 나섰다.
또 한번 낙방하여 자식이 상처받는 걸 원치 않았으리라.
첫번째 대학시험에 낙방했을 때는 직업을 구해보려고도 했다. 일자리를 찾아 무려 10번에서 15번 넘게 면접시험을 치뤘지만 번번히 미끄러졌다. 키도 작고, 삐쩍 마르고, 못생기고 말투까지 형편 없어서라고 생각  했다. 잭마는 자신이 면접위원이었더라도 뽑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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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구할 수 없어 세번째 도전으로 겨우 대학에 들어갔고 그 후 잭마는 영어선생이 되었다. 
컴퓨터도 잘 모르고 엔지니어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잭마가 인터넷 사업의 거장이 된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기회는 1995년에 생겼다.
영어선생을 하면서 번역가의 일로 미국에 다녀올 기회가 생겼고 거기서 우연히 인터넷을 처음 접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잭마는 미국에 가기전만 해도 컴퓨터나 키보드를 한번도 만져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이 뭔지 조차 몰랐다. 미국에서 처음 컴퓨터를 앞에 두고 미국인 친구들이 인터넷에서 뭐든지 검색해보라고 했을 때 ‘멘붕’ 그 자체였다. 검색이 어떻게 뭐를 하라는 것인지도 몰랐을 때였다.
곁에서 키보드에 아무 검색어를 타이핑 해보라고 했을 때는 싫다고 거절했다.
당시 중국에서 컴퓨터는 엄청나게 비싼 물건였고, 혹시 타이핑 하다가 컴퓨터를 고장낼 까 두려웠기 떄문이다. 키보드를 두드려도 폭발하지 않을테니 아무것이나 쳐보라고 했을 때, ‘beer(맥주)’ 란 단어를 조심스럽게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 할 수 있었다. 호기심에서 ‘china’라고 타이핑 했을 때 아무 것도 검색되는 것이 없었다. 문화충격을 안고 항조우에 되돌아 왔을 때 호주머니엔 겨우 1달러 밖에 없는 빈털털이 였지만, 인터넷으로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잭마는 중국 정부 당국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민들이 일자리가 없으면 중국정부가 곤경에 처한다. 내가 하는 일은 중국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중국 정부를 돕는 일이다. 잭마가 시작한 창업은 두번 실패를 했다.
두 차례 사업에 실패하고 난 4년 뒤,  5만달러의 종자돈으로 알리바바를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오늘날 2천3백억 달러의 최대 인터넷 상거래업체 알리바바로 성장한 것이다.
그렇게하여 잭마는 중국에서 최고 부자가 되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알리바바 HQ

알리바바 HQ


보통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정치권력이나 돈의 권력과 닿아야 하는데 잭마는 인맥도 자본도 아무것도 없었다. 
중국에서 정부의 지원없이 평범한 사람이 크게 성공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잭마는 중국 정부로부터 돈 한푼 지원 받지 않았다. 차이나뱅크로 부터도 일 전 한푼도 빌리지 않고 모든 걸 혼자 해냈다. 알리바바의 자금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국의 자본과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해외의 경쟁업체들이 중국의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중국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조건이 알리바바가 성장하는데 유리한 조건이 되긴 했다.

잭마는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했다.
정부와는 절대 비지니스 하지마라. 정부와 연애에 빠지지 말라. 그들과 절대 결혼하지 말라.
그래서 알리바바는 중국정부의 어떤 프로젝트도 맡아 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무엇인가 부탁해오면 ‘오케이’라고 말하고 그 프로젝트에 적합한 다른 지인이나 업체를 소개해줬다. 그래도 끝까지 매달릴 때엔 돈을 안받고 무료로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엔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 방식이 중국 당국과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연애는 하되 결혼은 절대 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정부에서 불가피하게 개인정보 같은 것을 요청해오면 어떻게 할거냐는 민감한 질문에 잭마는 뜻밖에 솔직하게 답했다. 정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매우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지만, 만일 그것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거라면 협조해야 할거다. 미국의 구글, 페이스북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알리바바도 그렇게 해야 할거다.

잭마는 그의 주변 사람들 외에는 잘 알지 못하는 엉뚱한 면도 있다.  
알리바바 직원과 가족에게 잭마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다. 그들은 잭마의 연설과 어록 하나 하나를 기록하고 되뇌일 정도로 그를 존경하고 따른다. 창립기념일 2만명의 직원앞에서의 깜짝 무대공연은 그의 인기를 대변하는 장면이다. 거기서 잭마가 펑크 락 무대 의상으로 ‘유아 소우 뷰티풀’을 부르자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알리바바의 뉴욕 주식상장은 어메리칸 침공 아니냐는 질문에, 잭마는 침공이 아니라 서로 좋아지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답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소형버스 기업이 중국에 들어오면 중국이 더 좋아질거다. 현재 매일 1억명이 알리바바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 판다. 앞으로 3년 내 3억명이 될 수도 있다.


[CBS ’60Minutes’: 방영시간 14분]
http://www.cbsnews.com/news/alibaba-chairman-jack-ma-brings-company-to-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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