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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요르단의 운명 - 윤희영 기자의 뉴스 잉글리시(News English)
요르단의 운명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채 지뢰밭 위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신세.

왼쪽 발목은 팔레스타인이 부여잡고 있고, 오른쪽 허벅지는 이라크가 한사코 붙잡고 늘어진다. 왼쪽 어깨는 이스라엘이 짓누르고, 오른쪽 팔은 미국이 등 뒤로 꺾어 꽁꽁 묶어놓았다. 등허리엔 600만 인구가 매달려 있다.

중동의 소국(小國) 요르단은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미국이 이라크 평정을거듭 다짐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협조할 입장도, 결사항전을 외치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편에 설 형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친미(親美)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터키, 카타르 등을 포함해 아랍권 전체가 전전긍긍해 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요르단은 입장이 더 각별하다.

다른 한 쪽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끝없는 유혈분쟁에 얽혀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르단 전체 인구의 60% 이상은 팔레스타인인(人)이어서 이스라엘과 미국에 뿌리깊은 적대감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함께 아랍권에선 유이(唯二)하게 수교하고 있을 뿐더러,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미국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더욱이 적대 행위로 이스라엘을 자극해 보복 공격을 유발할 경우 자칫 국운까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 등을 돌릴 수 없는 이유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구원(舊怨)을 정리하고 평화협정을 맺은 후 이스라엘과 강경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며 미국의 원조를 받아왔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이래 90년대 중반까지 줄곧 적대관계를 유지했었다. 특히 요르단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 참여했다가 현재 팔레스타인인(人)들이 거주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을 빼앗기면서 극단적인 앙숙이 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요르단은 요르단강 서안을 포함한 예루살렘을 영토로 갖고 있어 세계 3대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주요 성지가 모두 모여있는 성스러운 땅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영토는 영토대로 잃고, 수백만 팔레스타인 난민들까지 쏟아져 들어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활개를 치는 이중고를 치르게 됐다.

PLO의 존재로 인해 국내정치에 큰 혼란을 겪은 요르단은 1970년 무렵에 이르러서야 PLO를 레바논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1990년대 들어 자의반 타의반 화해를 도모하게 된다. 미국은 요르단이 자국에 빚지고 있는 7억 달러의 부채 탕감과 군사지원을 제공받으려면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며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강권했다.

결국 후세인 당시 요르단 국왕은 1994년 워싱턴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을 갖고 46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요지의 워싱턴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양국은 총리회담을 통해 갈등의 주요 대상이었던 국경과 수자원(水資源) 문제 등에 합의, 평화협정 초안에 서명했다.

이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1967년 중동전쟁 당시 점령했던 약 300㎢의 요르단 영토를 반환하고, 동예루살렘 관리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인정키로 했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동부 국경지대의 국가안보 불안을 덜고 아랍권에 둘러싸인 사면초가 상황에서 다소나마 숨통을 트게 됐다.

요르단은 또 다른 보상으로 미국의 군사지원과 함께 경제원조를 받게 됐으며, 지금도 연간 4억 달러 상당의 도움을 얻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수용한 대가로 유엔과 일부 아랍 국가들로부터도 원조를 받고 있다.

◆이라크를 도외시할 수 없는 배경

요르단은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이라크를 마냥 저버리지 못한다.4배의 군사력을 갖고 있던 접경국가 이라크와 국가안보상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게다가 미국의 사실상 묵인 아래 지난 91년 걸프전 이후 유엔의 금수(禁輸) 조치 아래 놓여있는 이라크와 외부 국가들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큰 경제적 이득을 봐왔다. 그 보상으로 이라크로부터 연간 3억 달러 상당의 원유를 대폭 할인한 가격에 공급받았다.

국토라고 해봐야 한반도 절반 크기에, 그나마 경작 가능한 땅은 전체의 5 %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사막이나 산이다. 인접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라크에도 모래 벌판이 널렸지만, 그 곳에선 ‘검은 황금’ 석유가 솟구쳐 나온다. 유독 요르단만은 그런 신의 은총도 입지 못했다.

특별한 산업생산 기반이 없어 대부분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1인당 국민 총 생산이 1650 달러(2000년 기준)에 지나지 않는 만성적 빈곤을 겪고 있다.

석유가 안 나오면 수자원이라도 풍족해야 할텐데 먹을 물조차 모자란다. 북쪽 시리아로부터 인공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받고 있다. 시리아가 요르단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요르단은 지정학적으로 이집트·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아랍권 대부분 국가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미국측에 동조할 경우 장차 아랍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국내적으론 국민들의 반발이 비등해 정치적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99년2월 타계한 아버지 후세인 전 국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압둘라 2세 역시 선친의 노선을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외로운 줄타기 외교로 국운을 지탱해오던 터다.

◆이-팔 사태에 갇혀 있는 사연

요르단은 600여만명 인구의 3분의 2가 팔레스타인계 주민들이다. 나머지는 유목민인 원주민 베드윈족(族)과 이라크·시리아·이집트 출신들이다. 종교는 이슬람 교도가 90%, 기독교도가 10% 정도다.

얼마 전 요르단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무자비한 살상을 계속 자행할 경우 국교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요르단은 말처럼 운신의 폭이 넓거나 자유롭지 못한 신세다.

극단적인 경우 이스라엘이 홍해 북단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 아카바를 봉쇄해버리면 중계무역으로 얻는 모든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함부로 행동에 나섰다가는 큰 낭패를 각오해야 한다.

요르단이 친미·친서방 노선을 견지하면서 이스라엘로 오가는 국경을 열어 놓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관광수입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를 온 기독교인들을 요르단으로 끌어들여 국가소득을 올려야 한다. 요르단은 영화 ‘인디애나 존스’로 유명해진 ‘페트라’라는 경이적인 유적지를 갖고 있다.

이 곳에는 4~5 간격으로 100여 높이의 암벽이 마주보고 서있으며, 이런 협곡이 2㎞나 이어져 장관을 이룬다. 기원전 나바테안(Nabatean) 왕국은 이 협곡을 수도로 정하고, 마주선 절벽 바위를 통째로 조각해서 사원, 보물창고, 왕릉, 목욕탕 등 온갖 건물들을 만들어냈다.

햇살이 들면 바위들이 온통 붉은 장미색으로 변해 페트라는 ‘장미의 도시’라고 불린다고 한다.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통째로 발굴된 로마시대의 도시 제라시, 십자군 요새였던 쇼박성, 사막 위의 바위꽃 와디럼 등 다른 관광지도 즐비해 서방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구 대다수가 아랍계이고 이슬람 교도들이지만, 중동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도 요르단 내에선 간혹 구호만 가득찬 시위들이 일어날 뿐 별다른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중동에 전운(戰雲)이 감돌면 경제적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나라가 요르단이다. 따라서 공연히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아갈수록 그만큼 자신들의 손해를 자초하는 결과를 빚을 뿐이다.

요르단은 로마에 이어 오스만 터키의 오랜 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무력해진 터키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다시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가 1946년에 이르러서야 런던협정으로 완전히 독립한다.

이후 요르단을 통치하던 압둘라(Abdullah) 국왕이 1951년 피살되고 후세인(Hussein)이 즉위해 199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50년을 다스렸고, 압둘라 2세가 왕위를 이어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국인 고문(顧問) 장교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아랍인들에게 터키에 맞서 싸울 것을 독려하며 낙타를 타고 누비던 땅, 요르단. 당시 터키 제국을 밀어내고 독립을 쟁취했던 그 곳이 다시 21세기의 제국(帝國) 미국과 맞닥뜨려 있다. 그들을 도와줄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어디에도 없다.

4 Comments

  1. 문복록

    2011년 4월 6일 at 1:07 오후

    아랍민족은 동일신으로 합중국이 될만도 한데 ..부족국가처럼 현대을 살고 있는 것은 부럽다 할만하다..한민족도 여러개의 지역단위 자체국가로 발전되면 지역감정이란 소리 없고 능력대로 형편대로 살고 북조선도 신경 안써도 좋고..연구 문제다..국방비 누굴위한 혈세인가.. 액수나 적은가..영세 중립국가로 발전 을 할수는 없는가..억울하고 억울하다.. 국빙비가 문제다..그돈이면 한민족 고기국에 이밥은 충분하다..   

  2. 김규용

    2011년 4월 19일 at 11:54 오전

    알라를 구심점으로 합중국을 만들면 큰재앙으로 돌아올것입니다 !! 문님은 너무 환상적으로 생각하시는듯합니다 !! 일제말기의 무정부 주의자같은 말씀처럼 !!   

  3. 정인우

    2012년 7월 11일 at 6:37 오후

    우리나라의 제인 폭포 라는 폭포가 생각 아네요 ..   

  4. 정인우

    2012년 7월 13일 at 10:43 오전

    여러가지로 마음 아픈 그런 글 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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