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월의 어느 멋진 날에

월의 어느 멋진 날에

 

봄 향기가 한가득 가슴팍을 밀고 들어온다. 꽃샘추위가 물러가자 움츠리고 있던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길 한다.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 절개 있는 매화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거나 사라지는 과정에 있으며, 진달래 개나리 철쭉들이 기지개를 펴며 한껏 자태를 뽐내어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길 한다. 벚꽃은 이미 절정에 다달아 대개의 이곳저곳이 벌인 벚꽃축제를 마무리 중이기도 하다. 뻥튀기에서 옥수수가 튀겨져 우르르 쏟아지듯 바람맞은 벚꽃 잎들이 허공을 헤매다 땅으로 떨어져 이제는 포도(鋪道) 위를 누추하게 물들이고 있다. 그만큼 봄은 우리가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벌써 저만치 내닫고 있어 붙잡으려 좇아가자면 허덕허덕 숨 가쁨을 느껴야 한다.

 

봄날씨는 마치 처녀처럼 변덕이 심하다. 이번 주에도 수요일 밤과 목요일 오전에 걸쳐 비가 내렸었다. 추웠다가 풀렸다가 바람 불고 비 내리고, 흐린가 하면 어느 새 화창하게 푸른 하늘과 따뜻한 기온으로 전형적인 봄 날씨가 펼쳐진다. 정말이지 변화무상하고 천변만화로 기상은 요동친다. 그러함에도 역시 봄은 몸을 사리거나 위축됨이 없이 역사적 소명을 다하려는 양 버적버적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음을 어느새 의식하게 된다.

 

도시철도 3호선이 구포철교를 지나자 왼쪽 창밖으로 노오란 황금벌이 광활히 전개되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황금벌 사이로 무리 지은 사람들이 화폭에 수를 놓듯 무늬를 그려댄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쏟아진다. 「와아, 유채꽃이다. 너무 좋다야!」

그랬다. 오늘(9일)은 「5회 부산 낙동강 유채꽃 축제」가 강서구 대저생태공원에서 개최되는 날이다. 강서구청역에 열차가 닿자 많은 사람들이 물결에 휩쓸리듯 열린 문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역사 내 곳곳에 유채꽃축제장으로 가는 알림 표지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의 종종걸음이 내딛어지는 것이었다.

 

기왕의 안내를 통해서 나는 오늘 이 축제가 어떠한 내용으로 전개되리란 걸 얼마만큼은 숙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물경(勿驚) 76만㎡ 에 이르는 유채꽃 대전원(大田園) 행사장에는 ‘자연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유채꽃 탐방로와 포토존이 마련된다. 또 농업체험전과 승마 체험, 연날리기전, 캐리커쳐 그리기 등 참여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버스킹도 운영된다. 이와 더불어 이번 축제가 더욱 뜻 깊은 것은, 그간 개인 사정으로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13쌍의 커플이 유채꽃밭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이란 너무나 다양하게 희로애락을 안겨주는 바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고통이나 좌절을 안겨주는 법이어서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다 거쳐 간 과정을 고스란히 답습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난만큼 우리를 가장 슬프게 눈물짓게 하는 것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치는 과정이라 하여 그것이 인생에 절대적이거나 따라야 할 철칙일 수는 더욱 없다. 지극히 사연은 개별적이며 삶의 형태는 천층만층이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에 특별히 지켜야 할 규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하나의 기념할 만한 추억을 가지지 못한 채 상실감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는 건 정말이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1년 뒤, 3년 뒤, 5년 뒤 하면서 미루기만 하던 결혼식이 영영 무위로 끝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우리의 삶에도 행운이 따를 때가 있음을 안다. 오늘 「유채꽃 결혼식」을 올리게 된 13쌍의 대상자야 말로 기막힌 행운을 거머쥔 커플이라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험난하기만 한 인생을 그래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시시때때로 쥐구멍에도 볕이 들 때가 있음을 믿는 까닭에서이리라.

수백만 원을 들여서 꽃 장식을 하고,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서 예물을 장만하며, 마치도 돈을 도배하듯 결혼식에 처발라도 그 끝이 어떠하겠는 지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 행복이 반드시 소유한 물질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본 사람들은 깨닫고 있는 법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결혼식인가. 황금빛 유채꽃이 커플들을 에워싸고, 아무 연고도 없는 시민들이 스스로 다가와 축하해주며, 이름난 명사들이 하객으로 들러리를 썼고, 시립합창단원이 축가를 불러주는 결혼식이면 적어도 지상에선 가장 아름답고 축복 받는 결혼식일 수 있는 것이다. 늦게나마 그토록 소원이었을 면사포를 쓴 신부와 연미복으로 갈아입은 신랑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은 울컥 감동에 젖어 눈물을 쏟아낼 뻔하였다. 그리고 이상도 했다. 왜 나는 결혼식장에 올 때마다 나도 다시 한 번 새로이 결혼식을 올려봤으면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될까. 오늘따라 황금빛 유채꽃 밭이 금광인 양 행복을 풍부하게 안겨주는 것 같아 온종일 기분이 즐거움에 젖어 보낼 수 있었다.

四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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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이처럼 두 사람이 손목을 껴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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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에 바빠 식을 올리지 못하고 자식 낳고 살다보니, 먼 이웃나라 신랑 신부를 맞다보니 관습에 익숙해지느라, 서러운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어, 가지가지 사연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커플들이 연미복에 면사포를 쓰고 가슴 설레는 늦깎이 결혼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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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가수들의 다이나믹한 축하 공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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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들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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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눈에 이슬을 머금도록 감동을 준 장애우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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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합창단원의 축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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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 제 포스트의 경우 새글이 올라가는 첫날엔 글과 사진이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이튿날이 되면 글만 남고 사진은 모두 배꼽으로 변하고 맙니다. 왜 그렇죠? 제가 사용을 제대로 못해서인가요? 아시는 분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사진이 남들처럼 선명치를 못합니다. 함께 원인을 알았으면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블은 정말 사용하기 번거로워요.

5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4월 10일 at 4:04 오후

    사진을 일단 파일 올리기에 올려놓고
    글 쓰기 할때 가져 오시는지요?
    어떻게 올리시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라고 포스팅한후 원본 사진은 파기 하는지
    보관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운영자가 하라는대로 하면 괜찮을텐데요.

    오늘 사진은 아주 선명하고 좋은데요.

    • 靑睦

      2016년 4월 10일 at 8:25 오후

      남의 사진을 가져오면 그렇게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러지는 않으며, 저는 사진을 포토스케이프에서 줄여 다른 USB에 저장해 놨다가 포스팅이 끝나면 줄여진 사진을 폐기하길 합니다. 혹 그래서 그럴지도…그렇지만 포털에서는 그것관 무관하게 포스팅이 잘 살아있거든요. 하여튼 운영자님께서도 메일을 보내와 왜 사진을 삭제했느냐고 물으시던데, 그게 아니라고 답변 드렸고 원인을 좀 찾아 개선 시켜 주길 기대한다 했습니다.
      사진의 선명도는 제 블로그에서는 여전히 흐릿하게 나타납니다. 아무튼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데레사

        2016년 4월 10일 at 9:34 오후

        줄여진 사진 폐기하면 포스트의 사진들도
        시라집니다.
        그러니까 포토스케이프로 줄여서 저장해둔
        사진은 그낭두세요.

        • 靑睦

          2016년 4월 11일 at 4:26 오후

          데레사님, 감사합니다. 역시 데레사님의 관심과 배려는 조블 뿐만아니라 위블에서도 짱입니다.

  2. 데레사

    2016년 4월 10일 at 4:07 오후

    며칠전 포스팅은 사진이 다 없어졌네요.
    경험에 의하면 원본시진읕 없애거나 다른곳에
    올린걸 복사했을땨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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