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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카이로 쓰레기 치우는 기독교도 - 인도야 놀자
카이로 쓰레기 치우는 기독교도

카이로 쓰레기 치우는 기독교도들

최준석 조선일보 카이로 특파원 jschoi@chosun.com 2008년 3월 20일

이슬람국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기독교도가 가장 몰려 사는 동네는 만쉬엣 낫세르. 주민 수는 약 3만명. 하는 일은 잡발린(Zabbalin)이라고 불리는 넝마주이다. 동네는 시내 한복판의 살라딘 성 인근 모카땀 산 아래 자락에 있다. 살라딘 성을 뒤로 하고, 샤리아 살레흐살렘 도로를 지나 모카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자 마자 왼편으로 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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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쉬옛 낫세르의 골목)

택시를 타고 들어서니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좁은 골목이 길게 뻗어 있는데, 온통 쓰레기다. 분류를 해놓은 쓰레기들이 길 옆 플라스틱 포대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집안에도 쓰레기를 분류해놓은 포대가 가득하다. 온 동네가 분류해놓은 재활용 쓰레기에 푹 파묻혀 있다. 어떻게 이런 데서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 길가에 카페가 있고, 사람들이 길을 보고 의자에 앉아 물담배(시샤)를 피고 있다. 먼저 구덩이를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가고 있다. 이들은 보니 인간의 적응력이 어디까지 인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길거리 상점에 예수 그리스도 초상화가 보이고, 건물안을 들여다보니 예수의 대형 그림이 벽에 보인다. 주민들이 기독교도가 분명하다. 이집트 콥트교회 신자들이다. 이집트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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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쓰레기)

1987년에는 인구 1만5000명이었으나 지금은 곱절로 늘어난 주민은 카이로의 쓰레기 60%를 이들이 수거한다. 유리, 폐지, 옷, 쇠 등을 가려내 재활용시키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만쉬엣 낫세르 1969년에 생겼다. 당시 주지사가 카이로에 흩어져 있던 넝마주이들을 모아, 모카땀 끝 자락의 채석장에 함께 거주하도록 했다고 알려진다. 모카땀은 카이로에서 가장 지대가 높아 고대부터 돌을 캐는 곳으로 사용됐다. 나일강 저편 기자의 피라미드 축조에도 모카땀 돌이 들어갔다.

넝마주이 동네의 주민들은 카이로의 최빈곤층이다. 이들은 두고 대대로 쓰레기 분류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일거리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에게 차를 태워준 30대의 이집트 남자는 대학 다닐 때 이 동네 출신 친구 둘이 있었다면서 상당히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적지 않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부인도 맞장구를 쳤다.

1970년대 양철 집이 따닥따닥했다는 만쉬엣 낫세르 동네는 지금은 3,4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빼곡했다. 악취를 폐부를 찌르고, 주변 환경은 끔찍하지만 건물 그 자체는 이집트 기준으로 멀쩡했다. 한 때 세계 최대의 빈민가로 불리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까지 말할 수는 없다고 보였다(인도 뭄바이의 빈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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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교회)

만쉬엣 낫세르 마을을 통과해 모카땀 쪽 끝으로 가니 또다른 놀라운 공간이 나왔다. 흔히 동굴교회로 불리는 성 시몬 사원(Monastery of Saint Simon)이다. 호흡하는 공기가 다르고, 주변 환경이 만쉬엣 낫세르와 천지 차이다. 절벽을 따라 7개의 교회와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 못지 않게 눈을 끄는 건 절벽에 새겨진 성서 속 이야기 장면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구유간을 찾아 경배하는 동방박사 세 명의 모습부터, 아기 예수의 가족이 이집트로 유대왕의 박해를 피해 여행하는 대목도 보인다. 폴란드 출신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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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앞에는 기독교도 100여명이 앉아 소풍을 나온듯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자들중 히갑(이집트선 히잡이라고 하지 않고, 히갑이라고 부른다)을 쓴 이가 없다. 기독교도인게 분명하다. 이집트의 콥트 기독교도는 히갑을 머리에 쓰지 않는다. 올해 3월 20일은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신일이다. 이집트는 이날을 국경일로 삼아, 쉰다. 사람들은 공휴일인 이날 교회를 찾아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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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_가족_벽의_부조(작은_크기).jpg

동굴교회의 주인공은 사마안 성인이다. 교회는 1989년 콥트교 성인인 가죽을 무두질하는 사람 사마안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지 발음으로 사마안 알 하라즈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Simon the Tanner라고 불리는 사마안 성인이 기적을 일으킨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했다.

콥트 신자들에 따르면 사마안은 가죽으로 구두를 만드는 사람으로 10세기 후반 지금의 올드 카이로인 바빌론에 살았다. 당시 이집트의 지배자는 파티마 왕조의 알 무잇즈 칼리프였고, 콥트교회교황은 안바 아브람이었다. 사마안은 독실한 기독교도였다. 알 무잇즈 칼리프는 계몽된 사람으로 토론을 즐겼다. 979년 어느 날 칼리프는 교황 아브람과, 아쉬메네인 주교인 안바 사위리스를 초청했다. 제이콥 이븐 킬리스라는 이름의 한 유대인도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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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안 성인과 당시의 콥트교황 그림. 가운데가 교황이고, 양쪽 그림이 사마안 성인이다.)

서로간에 공격이 있었으나 안바 사위리스가 토론을 압도했다. 이븐 킬리스는 상황을 뒤집기 위한 카드를 뽑았다.칼리프에게 예수가 겨자씨와 같은 작은 정도의 신앙만 갖고 있다면 산을 움직일 수 있다. 옮겨라. 그러면 너를 위해 산이 움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븐 킬리스는 그들이 산을 움직일 없다면 기독교는 순수한 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설에 따르면 칼리프는 눈에 거슬리던 모카땀 산의 끝자락을 옮길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콥트교황에게 산을 움직이던지, 아니면 그럴 없다고 인정하라고 말했다.

교황은 사흘의 말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인구의 절반이던 콥트기독교도들에게 단식하라고 요구했다(이를 기념하기 위해 콥트교도들은 40일간의 크리스마스 단식에 3일을 단식한다). 사흘의 기도가 끝난뒤 교황은 사마안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마안의 안내에 따라 기독교도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산을 허물었다고 한다. 지진이 가라앉았을 사마안 성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구 90% 무슬림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해 그것으로 먹고사는 이집트의 콥트교도들. 이집트 사회내 콥트들의 사회적 위상을 반영한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집트 최고 부자가 콥트교도라는 예외적인 모습이 있기도 하다. 이동통신회사 모비닐의 오너인 나깁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은 콥트교도다.

3 Comments

  1. 그냥

    2008년 3월 21일 at 5:31 오후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 이전 오래 전부터
    이집트에서 하층 작업을 수행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엑소더스를 이끈 모세를 민족의 영웅으로 숭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에서 비롯된 기독교적 합리와 경쟁력은 막강 로마에 접속 되면서
    거대한 로마문명을 형성하게 되고 이후 중세와 현대 유럽을 만들어
    찬란했던 이집트를 박물관으로 집어넣은 것이지요?

    "무슬림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해 그것으로 먹고사는 이집트의 콥트교도들"은
    기독교적 경쟁력에 의해서 어쩌면 미래 이집트의 상위 5%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

    의미 있고 좋은 기사에 감사 드립니다.

       

  2. 정민

    2012년 11월 24일 at 4:29 오전

    안녕하세요? 정사범 아내되는 사람입니다.
    카이로한인교회에서 쓰레기 마을에 있는 장애인센터를 돕기 위해 자선 바자를 열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글 스크렙해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일년 동안 만든 퀼트 작품과 한국음식을 내 놓고 수익금 전액 기부하려고 한답니다.   

  3. 최준석

    2012년 12월 16일 at 3:27 오후

    사모님, 안녕하세요.
    댓글을 늦게 봤네요. 반갑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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