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조선을 구하다

칠천량해전의참담한패배로조선의운명은다한듯보였습니다.임진왜란6년동안그나마바다에서의승리를바탕으로사직을보존했던조선이란나라도이제역사에서사라질위기에처했습니다.

그나마다행인것은이순신이당쟁의회오리속에서목숨을부지한것입니다.당황한조선조정은이순신을다시삼도수군통제사로임명했고,이순신은장흥의회령포에서배설이대피시킨12척의전함을인계받았습니다.그러고나서배설은탈영한것으로기록되어있습니다.어쩌면칠천량에서의기민한탈주로결과적으로조선을구한장수로인정받을수있었던배설의탈영은참안타깝습니다.전후배설은탈영죄로도원수권율에게죽임을당합니다.

칠천량에서의공포는허용되었지만그이상은허용되지않았습니다.전함을인계받은이순신은수군본진을해남으로이동시켰다합니다.불과몇달전한산도의견내량을틀어막고있었던조선수군이이제남해의끝자락해남으로까지밀려나마지막일전을준비하고있는것입니다.

<사진출처:네이버지도서비스>

떨어질대로떨어진군사들의사기를추스린후이순신은서진하는왜수군을막을장소로명량해협을선택합니다.이곳은지금은진도대교가놓여져있는곳입니다.물살이거세바닷물이암초에부딪혀나는소리가매우커바위가우는것같다고해서울돌목이라고도불리어지는곳입니다.

<진도대교,사진출처:두산백과사전>

13:130명량에서맞붙은조선수군과왜수군의전선수입니다.이때가1597년음력9월16일이라고합니다.칠천량해전이후딱두달만입니다.그어수선한와중에도이순신은12척의전함을인수한후1척의배를더건조한것으로역사는기록하고있습니다.

"필사즉생,필생즉사",즉"죽고자하면살것이요,살고자하면죽을것이다",이유명한말로병사들을독려하였지만전투초반의분위기는사실상이순신장군이탄대장선과왜수군의1:130의전투였던것으로보여집니다.현명한지휘관을가진군대는쉽게무너지지않는법입니다.이순신장군의솔선수범,이에사기를얻은조선수군의죽기를각오한응전,명량해협의거센물살,그리고여기에깃든행운덕에조선수군은기적적인승리를거두고한숨을돌리게됩니다.

역사에서가정은허용되지않지만,명량에서왜수군을막지못했다면,칠천량해전에서12척의전함마저보전하지못했다면어떠했을까하는생각은어쩔수없이해보게됩니다.명량대첩에서승리한이순신장군은본진을더욱후퇴시켜목포앞고하도에서그해겨울을보냈다고합니다.기적적인승리를거두었으나힘의열세를인정하고오히려후퇴하여힘을보충하려한것입니다.쉬어보이지만쉽지않은길,지휘관의길입니다.

심히불경스러운이야기입니다만,명량해전전조선의가치는바닥이아니었을까요.만약이때누군가조선에투자했다면크게성공하지않았을까요?지금도이와비슷한이야기는금융시장이라는전쟁터에서자주일어나고있습니다.헛된일확천금의망상에기대지말고가치와현재를똑바로주시한다면말입니다.

마지막순간에도탈출구는있다고합니다.지금마지막순간이라고생각한다면지금의고통보다세배정도까지견딜수있다고합니다.어쩌면그이상일지도모릅니다.그말인즉슨지금딱세배의용기와힘을낸다면지금의위기를극복할수있다는말입니다.피비린내나는역사는그렇게우리가다감당하기어려운무거운교훈을주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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