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문학관

어릴적자주접한광야,청포도등좋은시를많이쓰신시인이자독립운동가였던이육사선생.

안동호뒷편경치좋은산허리에이육사문학관을찾았습니다.

깔끔하게단장되어있어서관람하기아주편한곳이였습니다.

이육사선생(1904.4.4(음)~1944.1.16)은본명원록.1921년결혼후9개월간교편을잡다가,

일본유학중일제에의한조선인에대한처참한핍박을목격한후귀국하여대구에서조양회관을중심으로

문학활동을하던중1926년부터광동성광주중산대학에서이활이란이름으로유월한국혁명동지회에참가해

조직활동을시작,1927년장진홍의조선은행대구지점폭파사건에연류되어대구형무소에서1년7개월간옥고를

치르면서그때의죄수번호264번을따서호를육사라고지었습니다.중외일보기자로재직하면서조선일보에

첫시"말"을발표,1931년대구격문사건으로다시수감,이듬해에북경과남경에머물면서의열단에서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1기로졸업,1943년북경으로갔다가귀국,체포되어북경으로압송되어

1944.1.16마흔의나이로북경주재일본영사관감옥에서순국..(이육사문학관자료발췌,아래사진)

이육사선생의다양한자료들을구경할수있는그런곳이였습니다.

그의생애와그의시..지인들의시..남겨진책들..

국가를배신하지않은진정한문학인으로서그의발자취를감명깊게

음미해볼수있습니다.

이육사문학관을나와서퇴계종택가는길에

도암종택과하계마을독립운동기적비도같이구경하심좋을듯하더군요.

퇴계선생의손자동암이영도선생을계승하여450년역사를자랑하는하계마을은

무려20명의독립유공자를배출했다고합니다.

안동댐으로인해하계마을이수몰되어그옛터에기념비를..

안동호주변에의외로많은기념지가있어서아주흥미로운여행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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