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동네 익선동의 맛있는 돈까스집 경양식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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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돈까스는 가난한 연인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다른 메뉴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도 칼과 포크를 사용하는 경양식 분위기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도 좋았다. 아무리 돈까스가 맛있다 한들 스테이크에 비할 수 있겠냐마는 어쨌든 적은 비용(?)으로 그럴듯한 분위기에서 칼질하는 기분을 내기에는 돈까스만한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2~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돈까스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 되었다. 모처럼 경양식집에 가서 기분을 내던 가난한 연인들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 메뉴가 된 것이다. 남산에는 왕돈까스집이 즐비하고 심지어 분식집에서도 취급하는 메뉴가 되었다. 심지어 7,000원이면 돈까스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는 돈까스 뷔페까지 생기기도 했다.

요즘 뜨는 동네로 유명한 익선동에는 경양식1920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흔하디흔한 돈까스 전문점이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익선동이라는 동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음식점 자체가 특이한 이유가 크다고 하겠다. 한옥이 늘어서 있는 곳에서 맛보는 돈까스. 왠지 21세기 서울이 아니라 20세기 경성일 것만 같다.

이 집의 메뉴는 단촐하다. 돈까스(11,000원)와 1920함박 스테이크(15,000원)로 딱 2가지다. 여기에 매큼 토마토 돈까스와 매콤 토마토 1920함박 스테이크가 더 있다. 매콤이라는 단어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매운 편은 아니다. 오히려 토마토소스와 버무려져 돈까스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그냥 돈까스는 오히려 심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경양식1920은 분위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맛으로도 인정받는 집이다. 평소 돈까스를 좋아한다는 지인은 그동안 여러 곳에서 돈까스를 먹어보았지만 이 집이 제일 맛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식전 수프는 따로 나오지 않고 큰 사발에 담아주는 데일리 수프는 6천 원인데 너무 많다. 빙수 정도 사이즈로 보이는 멕시칸 사라다(8,000원)는 좀 작고 맛도 별로다. 고로 메인 메뉴만 먹는 게 좋겠다.

작년 여름에는 앙증맞게 조그마한 잔에 와인도 주더니만 이번에 갔을 때는 와인은 없었다. 별도로 주문해도 좋지만 그러기에는 와인 가격이 좀 쎄다. 9천 원짜리 다다핑크라는 와인을 주문해봤는데 스파클링 와인으로 와인이라기보다는 음료수에 가까웠다. 그래도 다른 와인의 가격이 5만 원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렴하게 분위기 내기에는 차라리 다다핑크가 낫겠다.

한옥 카페인지라 분위기는 최고다. 앞에서 말했듯이 현대가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길가 쪽으로 커다란 통유리가 나있어 좁지 않고 시원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실내가 비좁다 보니 2인용 테이블이 대부분이다. 가방 같은 짐이 있어도 올려놓을 데가 없고 외투 역시 벗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경양식1920이라는 이름에 붙은 1920의 의미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익선동 한옥마을이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에 의해 개발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북촌보다 앞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을 강조하는 뜻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돈까스가 일본에서 1925년에 개발되었다고 하니 우연 치고는 재미있는 일이다.

익선동 골목에는 식당은 물론이고 찻집도 있고 술집도 있고 가맥집(가게맥주집)도 있다. 어찌 보면 없는 게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비좁은 곳이고 가게 수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대기인원이 그야말로 무지막지하다. 다른 데로 가버릴까 하는 유혹이 수도 없이 밀려올 것이다. 어쨌든 참는 자에게는 복이 오리니 기다리든지 말든지 선택할지어다.

3 Comments

  1. ss8000

    2017년 5월 18일 at 3:52 오후

    익선동 참 정다운 이름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하나인 교동 초등학교가 있는 곳, 덕성여대가 자리한 운현궁(정확히는 운니동이지만…)이 있는 동네, 좀 더 어른이 된 후 자주 드나 들었던 요정이 많았던 곳. 또 한 편으론 홍등가의 일부였던 한옥촌. 지금은 그렇게 변모 했군요.

    • journeyman

      2017년 5월 18일 at 6:05 오후

      저도 기사로만 보고 찾아가본 곳인데 아기자기 하더군요.
      아직은 개발 과정인지라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듯합니다.
      갈 때마다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더군요.
      그 좁은 골목길에서 벗어나면 거대한 모텔촌과 만나게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2. ss8000

    2017년 5월 19일 at 1:03 오전

    그게 다 요정 골목 그리고 홍등가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80년 대 들어서며 그 동네에 모텔들이 들어 서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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